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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삐딱하게 영화보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솔라리스>(1972) 키워드: (반)과학, 예술, 사랑, 기억, 여성, 아버지 1. 과학? 예술! 는 외계 솔라리스 바다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되므로 외형상 SF 혹은 과학 영화의 컨셉을 취한다. 그래서 그런지 (크리스토퍼 놀란, 2014) 혹은 (로버트 저메키스, 1997)의 원형을 로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두 영화와 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전자가 SF, 그러니까 과학적 합리성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세계관에 의존하는 반면 후자는 그와 전혀 무관하고 차라리 반대. 예를 들어 에 대한 과학적 타당성 논쟁, 비난은 가능하지만 에 대해서 그런 논쟁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는 판타지이며, 그것도 철저히 과학적 맹신을 부정하는 반과학적 판타지다. 는 한 마디로, 오로지 사실로서 과학만을 인정하던 크리.. 더보기
<소크>, 우연과 기억이 만날 때 *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AISFF에서 봤던 단편영화 제이미 도나휴, 에 대한 리뷰입니다. AISFF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나는 막장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에는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막장 여부를 가르는 기준은 ‘우연’의 수위일 텐데, 일단 우연과 필연의 이분법적 구별에 회의적이기도 하며, 만약 우연이 지나칠지라도 극적인 측면에선 오히려 긴장감을 유지·증폭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에도 우연적 요소가 있다. 이는 서늘한 음악, 창백한 화면, 짧게 이어지는 쇼트들과 더불어 영화의 긴장을 극대화한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오키(Oki)가 하필 그때 거기서 빼앗긴 자전거를 마주하는 순간 이후 영화는, 그리고 그걸 보는 관객은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진다. 하지만 의 우연에는 .. 더보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이반의 어린 시절>(1962) 키워드: 소년, 성인, 전쟁, 기억, 복수, 꿈 1. 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장편 데뷔작이자 베니스 그랑프리를 탄 은 블라디미르 보고몰로프의 소설 을 각색한 작품. 그렇다면 원작의 제목에 굳이 ‘어린 시절’이라는 제목을 덧붙인 까닭은? 과 달리 은 분명히 과거 시점을 가리킴. 그러니까 영화에서 진행되는 현재는 이반(니콜라이 부릴야예프)의 ‘어린 시절’ 이후일 수밖에 없으며, 자연스레 ‘그렇다면 이반의 어린 시절은 무엇인가?’라는 혼란에 빠지게 됨. 왜냐하면 12살 이반은 겉보기엔 이미 어리기 때문. 12살 이반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는 것은 곧 어리지 않은 현재 이반의 성숙함을 절감하게 되는 순간. 말하자면 영화는 제목의 아이러니를 통해 이반의 성숙함을 극적으로 강조. 2. 세 번의 꿈과, 이반의 ‘어.. 더보기
끝내 털어내지 못할 기억, <먼지아이> 먼지와 기억은 닮았다. 털어내려 해도 완전히 털어지지 않는다. 정유미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2009)는 털어버려야 할 것들을 끝내 털어내지 못하는 개인(혹은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다. 감독이 연출의도에서 밝히듯 고독은 근심과 고민을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은 쌓인 먼지가 산발적으로 일어나듯 발생한다. 는 2009년 미쟝센 단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박찬욱 감독은 본인의 영화 DVD의 Director’s choice로 이 영화를 담아내기도 했다. 영화를 연출한 정유미 감독은 채색 없이 연필만으로 작업하는 작가다. 이후에도 (2010), (2012) 같은 작품을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해 내놓았다. 는 발견과 제거가 주를 이루는 영화다. 마치 처럼 주인공과 먼지아이는 쫓고.. 더보기
뤽 베송, <그랑블루>(1988) 키워드: 아버지, 우정, 경쟁, 바다, 돌고래, 사랑? 1. 음악과 카메라의 독특함 음악이 굉장히 두드러진다. 뤽 베송과의 찰떡궁합 에릭 세라 음악감독.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꼼꼼히 살피면서 음악을 작곡한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의 흐름과 발맞추는 음악. 초반 가벼운 분위기에는 끊임없이 경쾌하고, 산뜻한 노래가 흐르다가 후반부 진지해질수록 음악의 비중은 줄어듦. 그렇다고 음악 풍 자체가 바뀌진 않는다. 거기다 카메라도 계속해서 로우앵글. 이물감? 로우앵글의 기본적인 속성은 대상을 위압적이고 권위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 하지만 가벼운 분위기(음악을 포함하여) 때문에, 대상이 위압적으로 보이진 않고 반대로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듯. 돈키호테 같달까. 2. 헐리우드 70년대 프랑스에는 자타공인 두 명의 영화광이.. 더보기
<폭스캐처> 원운동에서 직선운동으로 혹시나 를 안 봤지만, 그래도 이 글을 읽고 싶은 이들을 위한 개략적인 줄거리부터. 데이브 슐츠(마크 러팔로)와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 형제는 올림픽 영웅이다. 둘은 1984년 LA올림픽 레슬링 종목 금메달리스트다. 그런데 왠지 마크는 형 데이브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동시에 열등감에 빠져있다. 어느 날 명망 있는 듀폰 가문의 존 듀폰이 마크를 불러들여 ‘폭스캐처’ 레슬링 팀을 꾸린다. 세계선수권대회, 더 나아가 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훈련에 매진한다. 그런데 별안간 존은 데이브를 레슬링 코치로 섭외하고, 이후 존과 마크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는데...(스포 방지를 위해 여기까지) 영화는 물론 존과 마크를 중심으로 다룬다. 그런데 둘의 관계는 모호하다. 우선 둘의 상황은 유사하다. 존은 노쇠한 어.. 더보기
<언더 더 스킨> 거울 앞에 선 자의 불안=안도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심보선이 시에서 청춘을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을 때’()라고 정의한 것에 대해, 그걸 말 그대로 ‘마조히스트’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거울은 내가 아니니까. 누워서 침 뱉기가 아닌 이상, 힘껏 뱉은 타액이 내 얼굴을 향하기란 불가능하다. 일그러지는 건 내 표정이 아니라, 거울 표면의 점액질을 통과하며 굴절된 빛일 뿐이다. 하지만 ‘크게 웃’는 그 쾌감은 어디서 오는가. 단지 거울이라는 물질에서일리는 없다. 나의 침이 거울에 반사된 내 얼굴을 향하지 않는다면 그 쾌감은 설명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청춘은 위선을 벗어나지 못하는 위악이다. 청춘은 자기를 학대하고 부정하지만(제 얼굴에 침을 뱉지만), 그 대상은 어디까지나 자기를 벗어나 있.. 더보기
<휴고>, 결국은 영화로 (1976), (1980), (1988), (2002), (2010). 마틴 스콜세지의 필모그래피를 따라오다 보면 (2011)는 왠지 ‘갑툭튀’라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다. 분위기부터 그렇다. 어딘지 음울하고 정신병적이고 지리멸렬한 흐름 와중에 는 기본적으로 발랄하다. 차라리 의 세계는 웨스 앤더슨이 만들어낸 동화적 세계에 가깝다. 거기다 영화는 일종의 주인공 휴고(아사 버터필드)라는 꼬맹이의 성장기다. 스콜세지와 아이, 그리고 성장기라는 소재의 만남은 낯설기 그지없다. 더 나아가 는 영화에 대한 영화다. 이게 핵심이다. 결국 스콜세지는 그의 영화사에서 돌연변이 같은 영화를 통해 어떤 ‘멈춤’의 순간을 노렸던 것은 아닐까. 이를테면 수많은 영화를 찍어온 자기의 나날, 더 나아가 100년이 넘은 영화의 시.. 더보기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에 대한 세 가지 키워드 모처럼 토마스(요하네스 쿤케 분)는 휴가를 내고 가족과 함께 프랑스의 스키장으로 놀러간다. 다음 날, 설경으로 둘러싸인 전망을 즐기며 그들은 야외 테라스에서 식사를 한다. 갑자기 퍼펑! 하는 소리와 함께 눈사태가 발생한다. “다 통제되었다.”며 토마스는 가족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좀처럼 눈사태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결국 테라스를 뒤덮는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아내 에바(리사 로벤 콩슬리 역)는 두 아이를 품에 안아 보호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토마스가 없다. 그는 눈사태가 막 테라스를 덮치기 이전에 ‘혼자’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눈사태는 가짜였다. 사실은 눈사태가 아니라 눈 먼지에 불과했던 것. 도망쳤던 사람들이 우왕좌왕 테라스로 돌아오고 뒤늦게 토마스도 가족에게 돌아간다. 여기서부터 (이후.. 더보기
<모스트 바이어런트> 바보야, 문제는 year이야 (그랜트 헤스로브, 2009)이라는 영화를 본 적 있는가.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정확히 세 번 놀랐다. 우선, 가벼운 단순 코미디 정도로 예상했던 기대와는 달리 영화는 꽤나 무거웠고 나름대로 현실에 대한 유비로 충만해 있었다. 두 번째로 놀란 건 원제를 보고난 다음이었다. The Men Who Stare At Goats. 번역하면 ‘염소를 응시하는 남자들’ 정도가 되겠다. 원제와 한국어판 제목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마지막으로 놀란 것은 한국어판 제목과 달리, 원제는 영화의 내용에 충실했다는 데 있었다. 그야말로 ‘강남의 귤이 강북에서는 탱자가 된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지 싶다. 굳이 번역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싶진 않다. 원제의 발음을 그대로 따서 한국어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