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세이

[今酒일기] 썰(11.29) 을 풀자면 끝이 없다.다만 타이밍이 문제다. 세 시간 수많은 이름과 기억을 헤집었지만정작 '그'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스핀오프' 술자리라도 마련해야 할 판. 둘이서 맥스 4병과 참이슬 후레시 3병을 마셨다. 마지막 세 잔을 제외하고는 모두 섞어마셨다. 안주는 닭도리탕과 골뱅이소면. 닭도리탕은 절반을 남겼고 골뱅이소면은 거의 입에 안 댔다. 집에서 호로요이 한 캔을 마셨다. by 벼 더보기
[今酒일기] 미쳐가지고(11.28) 새벽 2시에 양말 10켤레를 주문했다.하얀색 5켤레, 검은색 5켤레. 발목을 겨우 덮을 만한 길이.회색 5켤레는 장바구니에 넣자마자 뺐다. 술끊자. 둘이서 2차까지. 충무로 서래에서 참이슬 후레시 두 병을 마셨다. 안주는 모듬고기로. 1만5000원이었나.나름 단골이 된 하얀집에서 복분자주 세 병을 마셨다. 두부김치를 안주로 시켰는데 두부가 너무 적었다. 볶음김치는 맛있었다. 아사이 맥주 혼술로 마무리. by 벼 더보기
[문장을 그리다] #3 안희연, "라파엘" by 리카 우리가 한 송이 장미를 이해하게 된다면 우주를 이해하게 될 거예요 생각하면 할수록 고개를 숙이게 되는 벤치에서. 장미는 남김없이 흩어졌지만 어디에도 빛은 없었다. 더보기
[푸디세이아] 6. “말아 먹는” 대신, 따로 운수가 나쁜 날이다. 마음먹고 밤을 새려다가 애매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잠만 못 잤다. 2박 3일 혼자 잠까지 줄여가며 끙끙대며 준비한 글은 방향이 틀렸으니 오는 금요일까지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는 얘기나 들었다. 마음이 급하니 캔 커피 하나가 점심이 됐고, 그 사이 트럼프는 대통령이 됐다. 뜬금없이 세계의 끝을 생각하며 지쳐 집에 가는 길, 하필이면 노트북을 버스에 놓고 내리는 바람에 다시 추운 가을 밤 타고 온 버스를 찾아 한참을 헤맨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만 같은 하루가 지나간다. 피곤에 절어 집에 가는 길, 간만에 마음이 동해서 긴긴 귀로 중간을 끊어 밥집에 간다. 정말 좋아했던 국밥집이 사라진 지금, 항상 그대로일 것이라 기대하며 갈 수 있는 식당은 이제 몇 개 .. 더보기
[푸디세이아] 5. 학교 앞 멸치국수, 오뎅 추가 벌써부터 머릿속이 온통 낯선 경제학자들과 정치학자, 정당 관련 이론들과 제도경제학적, 정치인류학적 내용들로 포화가 되기 시작한 한 달이다. 바빠져야겠다고 스스로 무덤을 판 결과라 어디 누구한테 딱히 하소연할 곳도 없다. 공부를 하고 지식을 쌓는 일은 빠져들면 진심으로 재밌는 일이지만 부끄럽게도 꾸준히 앉아 뭔가를 공부해본지가 너무 오래된 일이라 사실 사는 것이 영 만만하지가 않다. 지금의 삶과는 달리, 머릿속에서 딱딱 정리가 깔끔하게 돼 있는 기분을 선호하는데, 뭔가를 정리하기도 전에 책장이 와르르 쏟아져 내려오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그 때문일까. 아침 수업이라 아침을 먹고 출발해도 수업을 다 듣고 나면 배가 고파 꼭 빵을 한두 개를 사먹는데, 오늘은 그럼에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 설상가상으로 망중한이.. 더보기
[푸디세이아] 4. 나는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채로 독일. 맥주. 혼자. 항상 마음속의 이상향을 그리며 어디론가 떠나려고 하지만 정작 몸이 묶여 있을 때가 많다. 대개는 금전적 문제였지만, 금전적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자 이제는 마음이 닿는 목적지가 없다. 답답할 때마다 내일로 티켓을 끊고 어디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일 없이 바삐 몸을 놀려 기어코 반도를 이리저리 헤집어 놓는 방식으로 여행을 가는 것 역시 채울 수 없는 방랑벽이 주는 헛헛함, 그 때문이다. 반도인(半島人)은 외롭다. 김연수가 말한 ‘국경’의 정의 아래의 나는 제대로 된 일탈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진정한 의미의 ‘여행’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후일담을 들어보니) 출장차 워싱턴과 멕시코와 쿠바로 떠나셨던 교수님이 시험을 한 주 빨리 보신 탓에 주.. 더보기
[푸디세이아] 3. 유진과 낙원 안국에서 낙원상가, 명동까지 이어지는 길은 묘한 분위기들이 서로 중첩돼 있는 공간이다. 자본주의 문명의 정점과 철 지난 과거 사이로 수많은 시간이 지나간다. 천도교 본당과 운현궁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대로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가면 그 어디서도 보기 힘든 풍경들이 펼쳐진다. 거리를 걷는 대부분의 이들이 노인들이다. 장기 두는 이들과 서예 글씨를 쓰는 사람들 주위로 수많은 노인들이 모인다. 노인들이 다른 연령층보다 월등히 많은, 이 다소 기이한 풍경은 어쩌면 내가 아는 낙원의 매우 작은 조각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 특수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낙원상가 주변은 주변의 비싼 물가를 감안해보면 상당히 저렴한 편. 송해 ‘선생님’이 자주 들린다는 2,000원 남짓 국밥집들이 좁은 골목길을 끼고 쪼르르 모여 앉아있다.. 더보기
[3인의 현상범들] #번외 모(부)성 [호래.txt] 나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고양이는 나를 싫어한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만나 온 고양이는 그랬다. 후미진 골목이나 길가에서 마주친 고양이들은 모두 내게 관심이 없거나 나를 무서워했다. 집에서 고양이를 한 번도 길러본 적이 없는 나는 고양이를 만나면 어쩔 줄 몰라 했고 고양이들은 그런 내가 어색한지 나를 항상 피했다. 그런데 바로 어제, 편의점에 가려고 밖으로 나섰다가 복도에서 작고 귀여운 고양이를 발견했다. 그 고양이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지 내게 먼저 다가와 다리에 얼굴을 비비며 애처롭게 울었다. 나는 고양이가 배가 고파서 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른 집으로 뛰어 들어가 고양이한테 줄 만한 것을 찾았다. 하지만 나도 먹을 것을 사러 편의점에 가려던 참이라 고양이가 먹을 .. 더보기
[푸디세이아] 2. 필사의 계절, 따뜻한 빵이 건네는 위로 게으르고 머리 나쁜 이가 결과물에는 항상 마음이 쫓겨서 시험기간에는 으레 중세의 민머리 수도사들 마냥 뻘뻘거리며 필사를 한다. 눈이 글을 담지 못하니 손으로나마 우겨넣을 뿐이다. 불안한 만큼 꾹꾹 눌러 담느라 샤프심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항상 똑, 하고 부러져 책상 주변엔 그 잔상들이 항상 포연 뒤 빈 탄피마냥 가득하다. 조급한 마음이 터질 듯해서 바람을 쐬러 나갈 때면 팔뚝과 손가락 마디가 욱신거린다. 벌겋게 달아오른 손가락이 똑 마음을 닮았다. 항상 턱에 받쳐야 폭식하듯 하니 공부가 어느 정도 됐단 것을 깨닫는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되어버렸다. 백야와도 같은, 망각과 기억 사이의 불안이 오히려 안심할 수 있는 척도가 된 역설적 상황에 시험기간은 항상 서릿발 같다... 더보기
[푸디세이아] 1. 지치고 힘들 땐 라멘 생각해보면 뭣도 모르는 아이였을 때부터 사골국을 좋아했다. 그 어린 나이 때부터 애늙은이였던 나는 - 집 형편에 맞게 대부분 잡뼈였지만 - 그게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두 사발씩, 세 사발씩 들이켰다. 한 번에 푹 끓여 일주일을 내내 놓고 먹어도 딱히 질린다는 생각마저 안 들었다. 그때는 왠지 모르겠지만 뼛국에는 칼슘이 많다는 말이 정설처럼 여겨질 때였으니, 알게 모르게 마실수록 뼈도 튼튼해진다는 플라시보 효과도 알게 모르게 있었던 것 같다. (슬프게도 곰국에는 단백질과 지방 밖에 없다는 것이 정설.) 사실 사골국을 좋아한 가장 큰 이유는 먹고 나서 느껴지는 든든함, 이라는 느낌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 푹 삶아낸 뽀얀 국물은 왠지 모르게 먹고 나면 기운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 곰탕집에서 내주는 아삭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