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별밤, 세상을 쓰다

[푸디세이아] 9. 우동집에서 우동을 팔지 않았다 한동안 마음의 빚처럼 묵혀뒀던 감정들이 걸려 낮잠을 자고 광장에 간다. 공기는 쌀쌀하고 인파는 예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끝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참 타오를 때는 가보지 못 했던 효자동을 찍고 광화문을 돌아 안국으로 간다. 매번 익숙한 그 길들이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행진의 서두에서 사람들은 캐럴을 부르고, 여기저기서 산타 모자를 쓰고 다닌다. 생각해보니 크리스마스이브다. 이브 저녁 이곳저곳을 쏘다니니 저녁때를 놓친다. 안국에는 좋아하는 우동집과 냉면집이 있고, 제법 괜찮다 생각하는 만둣국 집과, 무난한 라면집과 해장국집이 있다. 날이 추워 눈앞의 냉면집을 지나치며 라면이나 먹으려다, 갑자기 카레 우동이 끌려 발걸음을 옮긴다. 이미 18000보 가까이 걷고 난 뒤다. 작은 우동.. 더보기
[今酒일기] 무기력(12.23) 무기력하게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지나치고나서 고개를 돌리게 되는 것들, 이를테면 앙상한 나뭇가지와 그 아래 떨어진 낙엽들, 혹은 황정은과 박준, 그리고 박형준의 문장들이 그렇다. 한숨과 후회로만 남을 나날과 그럼에도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있기를, 그런 기대로나마 끝끝내 버티는 삶들도 마찬가지이며 무엇보다 이젠 단 한번도 반복될 일 없는 2016년 12월 23일의 당산과, 그날 그곳에서 어둠의 빛으로 남을 당신들이 그렇다. 당산에서 3명이 먼저 만났다. '당산 양꼬치'에 갔다. 양꼬치 3인분, 즉 30개와 옥수수국수, 볶음밥을 먹었다. '하얼빈 주스'와 '칭따오 주스'를 1병씩 시켰다. 뒤늦게 9가 합류했다. 옥수수국수를 하나 더 시키고 '칭따오주스'도 하나 더 주문했다. 고량주가 눈에 밟히긴 했지만 주.. 더보기
[今酒일기] 교훈(12.22) 교훈 하나. 끝을 말하려거든 공식적인 자리는 피하라. 방산시장 근처 '보건옥'에서 소고기를 꿔먹었다. 술을 무진장 섞었다. 열나게 퍼마셨다. 어느정도 전략적 심산이었는데, 정작 목적했던 바를 이루지 못했다. '비어할레'에서 '사민주의의 주스'를 마셨다. 치킨 가라아게를 시켰는데 이때 나는 이미 만ㅡ취 상태. 종로3가쪽 어디 맥주집에 갔다. '밀러' 1병을 마셨다. 듣기로는 원샷을 했단다. 미쳤다, 정말. by 벼 더보기
<나, 다니엘 블레이크> 켄 로치가 삶의 무게를 말하는 방법 ‘영알못(영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2016년 칸 황금종려상까지 받은 영화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희극에 가까울 수는 있으나, 엄밀히 말해 영화 는 영화의 영상미나 극적 구성 측면에서 새롭거나 참신한 시도를 보여준 것이 없다. 으레 그랬듯이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 - 더 자세한 확인은 힘들지만, 아마도 신인들 - 을 쓰고, 플롯 자체가 확 튀는 구성도 아니다. 몇몇 움찔하게 만드는 부분들은, 사실 클리셰에 가까운 무엇. 다만 를 보면서 든 생각은, 이 영화에 다큐 3일이나 인간극장의 자막에 깔려도 크게 이상하게 여겨지진 않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영화지만, 어쩌면 저 멀리 영국 뉴캐슬 어디에서 실제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별로 위화감이 없을 것만 같은 영화, 다. 영화와.. 더보기
[今酒일기] 내일(12.21) 내일 이후의 세계가 아득하다. 오랜만에 별밤 멤버와의 벙개. 대학로에서 9와 만나 '더 후라이팬'에 갔다. 세 번 허탕친 뒤였다. 그래도 연말은 연말이었다. 회사에서 좀처럼 놓아주지 않은 건은 조금 늦게 합류했다. 오리지널 안심 곱빼기에 '사민주의의 주스' 큰 사이즈를 한 잔씩 마셨다. 손님이 하나도 없어 혹시 조류독감때문인지 물었는데 사장인지 종업원인지는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아직 시험이 안 끝나서"라고 덧붙였는데 마침 오늘은 성균관대학교 기말고사 마지막 날. "많이 파세요"라고 말하며 가게를 나섰다. 2차로 '홍콩반점'에 갔다. 꿔바로우와 '칭따오 주스' 2병으로 이뤄진 세트를 시켰다. 집 가는 길에 친애하는 고시생과 '오징어나라'에서 잠깐 회동했다. 우럭회와 '청포도에이슬'.. 더보기
[푸디세이아] 8. 종강 후의 치맥은 달다 사소한 일로 아침부터 한바탕 설전을 벌이고 1시간에 걸쳐 공연을 (비록 좋진 않은 자리지만) 예매를 하고 시험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를 봤더니 기분이 어린왕자 속 보아뱀 - 혹은 모자로 보이는 무엇 - 마냥 유려한 곡선을 따라 오간다. 끝났으니 행복해야겠지만, 영화관을 나서니 역설적으로 이젠 진짜 비빌 언덕이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연말까지 읽겠다고 빌린 책은 가방을 채우다 못해 터질 것만 같은데, 설상가상 영화를 보고 나오니 처량하게 비까지 온다. 뭔가 쏟아질 것 같은 날이다.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벼 형을 만난다. 무한리필 삼겹살집 2곳과 양꼬치집을 갔지만 어딜가나 사람은 바글바글하기에 우리가 머물 ‘자리’가 없다. 사람에 치여 치맥이나 하자고 찾아간 치킨집은 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 더보기
[今酒일기] J(12.20) J가 대뜸 "술 마시지?"라며 전화를 건다. "아니"라고 답하자 그렇다면 내일은 글 안 올리는 거냐, 재차 묻는다. 이쯤되면 이 글의 효용가치는 '0'를 넘어 '마이너스'가 된 셈. 이건 '금주'일기란 말이닷! 다음주엔 홍대에서 그의 노래를 보고 들을 계획이다. 오랜만이다. 성공. 더보기
[今酒일기] 가끔(12.19) 가끔 이것 때문에 오히려 술을 더 마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하여간 무진장 마셨다. 골이야.. 삼겹살은 맛있었다. 분위기도 좋고. 서촌에서 삼겹살 먹고싶어지(거나 누군가 그렇다)면 또 찾을듯. by 벼 더보기
[今酒일기] 아이(12.18) 아이가 노부(老父)의 손을 놓는다. 늙은 아비는 등에 멘 가방을 내린다. 아이의 것이다. 건너편 친구들이 손을 흔든다. 어물쩍 화답하고, 아이는 길을 건넌다. 사랑하는 '구탕마라탕'에 갔다. N은 "벌써 세 번째"라며 불평 아닌 불평을 짧게 뱉고는 군말 없이 들어갔다. 맛있긴 하지, 라고 N이 덧붙였다. 셋이서 양꼬치튀김 하나와 마라탕을 시켰다. 양꼬치는 양념이 잘 배긴 했지만 너무 질겼다. 비린내도 약간. 즈란을 듬뿍 찍었다. 마라탕은 역시 '존맛'. 처음 보는 '연경맥주' 1병을 시켰다. 단맛이 강했다. 특히 뒷맛이. 마무리는 '칭따오' 1병. 세븐일레븐에서 와인을 6000원에 할인판매하고 있었다. 사지 않았다. by 벼 더보기
[今酒일기] 우리(12.17) 우리는 승리했다. 고생했다, 그러'니' 이제 시작이다. 곱씹을수록 끝난 건 아무것도 없다. '마침표'는 한 문장을 종결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다음 '마침표'를 위한 들숨이기도 하다.숨을 깊이 들이키자. 다음에 올 문장은 생각보다 길지도 모른다. 헌법재판소 앞에서 막힌 행렬이 광화문으로 돌아가는 길. 지난주 이르게 찾아가 허탕쳤던 '누룩나무'를 찾았다. 넷이서 '개도막걸리'와 '송병섭막걸리'를 한 병씩 마셨다. 해물파전과 석쇠떡갈비를 먹었다. 시중가보다 최소 2000가량 비쌌다. 해물파전은 무려 2만원. 다신 안 갈듯. "이제 광장으로 가자." 나는 물었다. "그 광장이란 것이 광화문 광장을 말하는 거냐 광장시장을 말하는 거냐." 광장시장에는 온갖 손팻말로 가득했다. 순희네 빈대떡에서 모둠과 '대박막걸리'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