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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삐딱하게 영화보기

<쿼바디스> '맞춤제작'된 신앙이란 * 개봉한 지 2년이 넘은 영화지만 전혀 위화감은 들지 않았다. 영화 속 한국교회의 현실은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한국교회는 지속적으로 크고 작은 논란의 중심에 있어왔다. 다른 종교와의 비교, 여러 교단 간의 비교 등 다양한 논쟁들은 내게 꽤나 흥미로운 주제였다. 나는 종교를 소명의식이나 믿음보단, 사회학적인 비판내지는 사고의 차원에서 보는 편이기 때문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기독교 인구는 약 967만 명이다. 대략적으로 국민 5명중 1명은 기독교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기독교는 어마어마한 규모와 그에 따르는 영향력과 책임감이 따르게 되었지만 책임감은 잊혀진지 오래고 일부 대형교회를 주축으로 한 영향력은 일종의 권력이 되었다. 나아가 이 권력은 교회에 그치지 않고 자본, 정치.. 더보기
<고산자> 가능성만의 향연, ‘국뽕’ 판타지는 이제 그만 잘 다뤄지지 않는 참신한 소재, 유명한 감독, 안정적인 원작 소설 기반, 탄탄한 배우진. 차려놓은 밥상만 놓고 봤을 때 영화 (이하 )는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을 작품이었다. 구성이 다소 평범했음에도 자연을 담은 씬들 중에서는 탁월함의 가능성이 내비치는 듯한 아름다움 역시 존재했다. 섞어놓은 유머들이 거슬렸지만 그저 우스개꺼리로만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영화 에는 수많은 펼쳐지지 않은 많은 가능성들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모든 가능성을 접고 스스로 평범 이하의 한국 영화로 전락해버렸다. 는 도입부부터 스스로의 색깔을 명확히 하는 영화다. 김정호(차승원 분) 위로 펼쳐지는 자연환경을 담아내는 카메라는 마치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광활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지만, 그 탁월함의 경계에서 모든 것이.. 더보기
영화 <트루스>, 그리고 우병우 의혹 조금 위험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온 나라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님 때문에 시끄럽다. 아들 병역특혜, 공금횡령, 공무집행방해 등 열거하기도 어려운 의혹들로 인해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넘어 검찰의 특별수사팀이 꾸려지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민정수석의 비리를 파헤치는 건 좋다. 국가의 요직에 있는 이가 품고 있는 의혹을 짚고 넘어가는 건 필요하다. 그런데 그를 수사하는 과정이 심상치 않다. 그를 감찰했던 특별감찰관도 함께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어찌 된 일일까. 다음은 기사의 한 부분이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검찰에 수사의뢰한 데 대해 청와대가 ‘이석수 흔들기’로 ‘우병우 살리기’에 나섰다. 청와대는 19일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감찰 내용 ‘누설’ 의혹을 제기하며 “특별감찰관.. 더보기
불편해서 고마웠던 영화, <터널> ※영화 ‘터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경찰 수사결과 겉보기에 멀쩡한 터널 안에 지반붕괴를 막아주는 '록볼트'가 수천 개나 빠진 채 시공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밖에도 진전과 갈평 터널 등 모두 7곳에서 설계 수량인 10만7천여개 가운데 30%인 3만4천여개의 록볼트가 누락됐다. 이렇게 해서 빼돌린 공사비가 20억 원이 넘는다” 영화 터널을 봤다면 익숙한 단어 몇 개가 보일 것이다. 터널과 록볼트, 빼돌린 공사비와 같은 것들 말이다. 앞의 문단에서 언급한 내용은 실제로 지난 2월 17일 KBS를 통해 방송된 뉴스 리포트다. 터널 부실시공은 하루 이틀 보도된 문제가 아니었다. 예전부터 설계도대로 시공되지 않은 터널이 발견돼 꾸준하게 부실 논란이 제기됐다. 어쩌면 영화 을 제작한 김성훈 감독은 이런 뉴스를 접.. 더보기
<스틸 플라워>下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세계서 울려퍼지는 몸부림 강렬한 잔상이 남아있는 세 장면. 끊어질 듯 이어지는 탭댄스. ‘창녀’라는 오해에 “일하고 싶어요.” 기묘하게 되돌아오는 대답, 그리고 그 아래 처절하기 울려 퍼지는 발소리. 마지막 쇼트에서 웃음과 울음을 알 수 없는 리듬으로 반복하는 하담(정하담)의 얼굴. 띄엄띄엄 이어지는 이 세 장면은 영화의 혼란스러운 서사를 강하게 떠받치며, 무엇보다 ‘외계인이 될 뻔한 내부인’으로서 하담의 불안정한 위치를 부연한다. 1. ‘들은 대로 움직여봐. 그럼 들을 수 있을 거야.’ 우선 탭댄스부터. 뭐 하나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는 하담은 집(아닌 집)을 향하는 길에 우연히 탭댄스의 경쾌한 소리를 듣고 멈춰 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리다. 왜인지 모르게 하담은 탭댄스가 내는 ‘소리’에 빠져든다. 이후 고생 끝에 벌고 .. 더보기
<스틸 플라워>上 외계인이 될 뻔한 내부인 를 관통하는 질문. 왜 하담(정하담)은 그렇게까지 살고자 애쓰는가. 그가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가. 해답은 놀랍게도 도입부에 이미 짜여있다. 나만의 답변. 영화에서 하담은 얼핏 외계인의 처지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결코 외계인이 아니다. 차라리 하담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외계로 내던져졌지만 어찌어찌해서 다시 돌아온, 말하자면 ‘외계인이 될 뻔한 내부인’이다. 여기에 해답이 있다. 아리송한 결론을 맨 앞에 두었다. 여기서 끝내면 혼잣말과 다르지 않으니 이제부터는 같은 말을 다만 길게 늘려보겠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하는 말은 다 부연이자, 혹 첫 문단에서 ‘아’ 느낌이 왔다면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며, 결정적으로는 아래 이어지는 내용이 고리타분할 가능성이 농후하리라.. 더보기
<her> 그것=그녀와 그=그것 사이의 그것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이 영화는 전적으로 '그녀'에 대한 영화이다. 그녀란 OS, 즉 컴퓨터 운영체계이다. 'it'이자 'it'이 아닌 'her'. (알튀세 식으로) 이 두 '호명' 사이의 흔들리는 긴장관계가 영화의 서사 전체를 관통한다. 이 지점에서 눈여겨 본 장면이 있다. 남자와 여자(그것)의 자기고백=위로, 그리고 불가능하지만 기묘한 최초의 (성)관계. 영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이 씬은 컴퓨터 운영 체제(일 뿐)인 '그것'이 '그녀'가 되는(엄밀히는, 자기-인식하는) 거울의 방이자, 또한 '그'가 왜 '그것'이 아닌 '그'여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뿌얘진 밀실이다. '그'가 '그녀'에게 말한다. 나의 모든 감정들을 이미 모두 경험해버린 것 같다고. '그녀'는 '그'에게 말한다. '나의 모든 감.. 더보기
<아메리칸 스나이퍼>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단편적 정보란 얼마나 치명적인가. 그걸 무턱대고 받아들인 나는 또 얼마나 바보 같았던가. 뜬금없지만 자기고백으로 글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고선 도저히 에 대한 글을 쓸 수 없었으니까. ‘애국주의와 소영웅주의가 뒤범벅된 영화가 또 하나 나왔구나.’ 전설의 스나이퍼 크리스 카일을 다룬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리 잠정적(이라 쓰고 확고한) 결론이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짧은 평가들을 보며 나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대중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명확히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어 영화를 칭송, 또는 비난했다. 어느새 나는 에 대해서라면 적극적인 안티가 되어 있었다. 영화는 그 자체로 ‘이라크=악, 미국=선(혹은 피해자)’라는 이분법에 대한 나의 혐오를 표상했다. 그러니까 사촌동생이 “ 봤어? .. 더보기
스티븐 프리어스, <리틀 빅 히어로>(1992) 키워드: 영웅, 의도/비의도, 우연, 진심, 복잡계 1. VS. 1994년 4월 10일 한국에서 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의 원제는 였다. 한국어로 쓰자면 전자는 , 후자는 쯤이 되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 더 적확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둘 다 영화의 핵심을 담은 것은 맞다. 또한 제목이 결코 영화 자체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영화의 일부만을 반영할 수 있기에, 어떤 제목이 옳거나 그르거나 하는 판단은 적절하지 않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상대적인 차원에서 ‘보다’ 나은 제목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빅 리틀 히어로’와 ‘엑시덴탈 히어로’의 결정적인 차이는 ‘콘텍스트에 대한 고려의 여부’에 있다. ‘작고 크다’는 수식은 형식논리상 모순이기에 하나의 명확한 이미지로 나타내긴 어렵다, 그럼에도 ‘작.. 더보기
<카트>, 또는 하이픈 노동자의 비애 용돈 벌이를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외진 곳이라 손님이 별로 없었고, 일도 어렵지 않았다. 일 년 정도 일을 하면서 다양한 손님을 만났다. 불친절한 손님, 친절한 손님, 깎아 달라는 손님, 괜히 시비 걸고 욕하는 손님 등. 그 중에서도 나를 불쾌하게 하는 손님들을 대할 땐 늘 난감했다. 화를 내야 하나. 만약에 화를 내서 저 손님이 다신 안 온다면 우리 사장님은 손해를 입을 텐데. 아니다. 이 편의점이 내 소유도 아닌데 뭔 상관이랴. 저 손님이 안 온다고 해서 내 수입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닌데……. 결국 나는 늘 꾹 참곤 했다. 마음이 약했던 것 보단, 수를 계산하며 갈팡질팡하는 와중에 손님들이 떠나곤 했다. 이렇게 고용자와 손님 사이에서 서비스 노동자들의 위치가 난감한 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