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큐멘터리

삶과 기억을 지탱하는 ‘도시의 맛’ [리뷰] 트빌리시 조지아는 굴곡의 땅이다. 몽골부터 러시아에 이르는, 수많은 시간으로 반복된 외침 속에서 그들이 겪었을 고통의 무게를 우리는 감히 체감할 수 없다. 트빌리시, 낯선 이국의 먼 도시의 이름은, 그렇게 아픔으로 쓰인 채 우리 앞에 베일을 벗는다. 그러나 그 무한의 고통은 그들의 삶을 파헤치지도,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들은 오히려 그 삶을 꿋꿋이 버티고 이겨내, 낯선 이국의 우리 앞에 고통을 넘어선 삶의 무게를 보여준다. 바로, 그들의 요리를 통해서. 이 담아낸 낯선 도시 트빌리시는 생각보다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스스로를 ‘코스모폴리탄’적이라고 칭하는 그들의 삶에는, 먼 몽골로부터 묻어온 동양의 향취와 이방인들이 그토록 지우려고 했던 그들 자신의 무게가 함께 담겨있다. 조지아는 수많.. 더보기
뉴욕의 맛, 이욱정의 ‘피카레스크’ [리뷰] 뉴욕편 2016년 한 해만 편성이 두 번이나 밀린 우여곡절 끝에 이 2017년 2부작의 형태로 공개됐다. 이례로 10여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음식’이라는 통일된 주제를 통해 스스로를 브랜드화 한 이욱정 PD의 최신작은, 쌓아온 시간 동안 PD 스스로가 ‘콘텐츠’가 된 진면모를 보여준다. 라는 제목만 놓고 볼 때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을 기대하게 되지만, 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분명 ‘음식’이 가장 중요한 소재이자 주제인 건 사실이지만, 은 음식과 사람, 그리고 그를 담는 공간으로써의 도시라는 큰 흐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피카레스크 소설에 가깝다. 가장 미국적인 크랜베리가 생산되는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주며 깔리는 내레이션이 이를 잘 드러낸다. 크랜베리를 통해 조우한 이민자와 원주민, 이민자와 공.. 더보기
<내추럴 디스오더>가 정상성을 해체하는 방식(下) 2. 양방통행길에서 일방통행하는 카메라 - 옙센의 시선 이제부터는 앞서 살핀, 영화의 밑바탕 위에서 감독이 영화에 개입하는 지점을 살펴보겠다. 사실상 옙센의 손을 거쳐 탄생한 ‘완성작’으로서 는 여러모로 전형적이다. 편집방식뿐만 아니라 기-승-전-결의 무난한 전개방식, 그리고 영화가 최종적으로 다다르는 지점(연극)의 포맷을 영화 전반에 덧씌우는 방식 등. 특히 옙센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가리키고 무너뜨리려는 과정에서 앞선 작품들이 취했던 방법론을 그대로 가져오는 우를 범한다. 야코브의 불편해보이는 걸음, 움직임 등을 담은 컷과 ‘정상인’들의 버퍼링 걸린 듯한 움직임을 접합하는 구성도 그렇고 야코브가 직접 사람들에게 ‘정상성’을 묻거나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가 이런.. 더보기
<내추럴 디스오더>가 정상성을 해체하는 방식(上) 는 불도저같다. 뚜렷한 의도를 견지한 채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 간다. ‘정상이란 무엇인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등 정상성을 둘러싼 질문들이 영화 곳곳에서 은연중에 드러날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건 너무 고리타분한 게 아닌가. 문학·영화·미술·음악 등 비스무리한 주제의식을 담은 작품들은 이미 곳곳에 너무 많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에는 ‘이 영화가 아니면 성취해내지 못했을 지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 이토록 빛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응시-시선’의 뫼비우스띠적 구조와 야코브 노셀의 ‘非시선(시선의 불가능성)’ 속에서 드러나는 중층성 덕이다. 그러나 이는 달리 말하면 이런 ‘상찬’에 감독 크리스티안 쇤더비 옙센이 끼어들 지점은 거의 .. 더보기
날카로운 구위, 약간 아쉬운 제구 [리뷰] 다큐멘터리 : SBS 스페셜.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 2016년 6월 청년실업률 10.3%.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별로 놀랍지도 않은 청년 실업률은 지금의 대한민국 청년들이 처한 상황을 말해주는 가장 직관적인 수치다. 열심히 살고 싶어도 열심히 할 자리를 찾는 것마저 쉽지 않은 현실에서, ‘헬조선’과 ‘흙수저’란 충격적인 단어들도 이젠 철 지난 식상한 말들로 들릴 정도다. ‘노오력’을 말하는 이들은, 그런 청년들에게 어려운 여건과 환경 속에서도 선망의 직장에서 척척 합격하는 청년들을 들이대며 청년들의 ‘노오력’ 부족을 탓했다. SBS 스페셜 는, 그에 대한 답이라고도 볼 수 있다. S나 HM 같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회사, 높은 연봉과 최고 수준의 복지. 모두가 꿈꾸는 “워너비(Wanna.. 더보기
사랑이란 이름의 콩깍지와 끝. 그리고 <내 여친은 지식인 3부> 시리즈의 대망의 피날레. 미국 유학을 가는 것에 마냥 심란해하던 공대남 김문하는 여자친구 인문녀 임채영의 집 앞에서 혼자 5도짜리 과일소주를 마시며 기다린다. 한참을 심란해하는 문하 앞에 나타난 것은 전 여자 친구였던 4살 누나인 선배. 오랜만에 본 그는 직장인이 돼 있었고, 헤어질 때만 해도 세상이 무너지고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문하는 그 이별 후에도 자신이 생각보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그가 떠나고 그 장면을 지켜보던 채영과 문하는 살짝 티격태격. 하지만 주요한 갈등은 여전히 채영의 미국 유학 문제다. 문하는 다시 한 번 채영을 잡고, 그런 채영은 마음 속으로 흔들리면서도 단호하게 미국에 갈 의사를 밝힌다. 결국 소원 들어주기라는 다소 뻔한 연애 드라마적 전개를 보여주는 커플. 첫 .. 더보기
엇박자가 주는 즐거움 <내 여친은 지식인 2부> 1부 막바지 급작스런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고 ‘선언’하듯 말하는 인문녀 임채영의 말에 공대남 김문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어지는 2부 초반 미국에 가게 되어도 영상통화도, SNS도 있다는 채영의 말에 마지못해 설득 당한 문하는 일단은 좋게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살면서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일의 원흉이 되어버리는 친구는 그의 불안을 휘저어놓는다. 이후 드라마에서는, 김문하와 임채영의 작은 공성전의 반복이 이어진다. 처음으로 잘 드러나지 않던 공대남 김문하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부분 역시 계속되는 드라마에서의 공방 부분에서다. 왜 굳이 미국까지 가서 공부를 해야 하냐는 문하의 말에 채영은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지만, 이는 그에게 납득이 잘 되지 않는 말.. 더보기
‘이것은 연애 드라마가 아니다’ <내 여친은 지식인 1부> 7월 14일 EBS1에서 방영한 시사/교양 프로그램 은 공대남과 인문녀의 연애라는 큰 줄거리 아래서 ‘지하철’이라는 인문학 스터디 모임의 이야기가 주축이 되는 드라마다. 공대남으로 대표되는 현대 ‘철알못’(철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기본적 철학 소양을 전달하는 것이 목표로 보이는 이 드라마는, 여자친구를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하려 한다는 극적 장치를 통해 극의 중심으로 인문학을 가져온다. 사실 극적 구성이나 캐릭터성의 측면에서 있어 은 잘 짜여진 드라마의 형태라고 보긴 어렵다. 공대남과 인문녀라는 캐릭터를 부여했음에도 이는 극적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 인문녀는 동기 부여의 모델임에도 불구 롤랑 바르트 등을 그저 ‘인용’하는 것 정도의 수준에 그치고, 두 주인공 남녀의 역할이 드라.. 더보기
[셰프의 테이블] 1. 마시모 보투라 – 전통과 도전 사이 The Restaurant Magazine(http://www.theworlds50best.com)에서 발간한 2016년 세계 50대 식당 순위에 이탈리아 시골 모데나에 있는 마시모 보투라의 Osteria Francescana가 첫 순위에 올랐다. 2015년에 제작된, 넷플릭스의 다큐 시리즈 이 맨 처음 다뤘던 셰프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인 시즌 1은 ‘요리’라는 거대한 주제를 토대로 세계 각지에서 인정받고 있는 셰프들의 요리와 삶, 인생의 이야기를 담아 우리에게 보여준다. 다소 개인적인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많고,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 대신 요리 평론가들의 입을 빌어 ‘찬양’조의 논조로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다소 감상적인 특성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다큐멘터리가 가지는 의의가 없다고는 .. 더보기
<셰프의 테이블> 리뷰 Intro : 우리는 ‘무엇’을 먹는가 인생의 즐거움을 먹는 것에서 찾는 사람들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대다수의 자영업자들이 요식업에 종사하는 나라답게, 어느 동네나 카페와 치킨집 등이 없는 곳이 없다. 대세인 쿡방 덕에 TV를 요리조리 돌려봐도 어디에나 음식이 나오고, 그 어느 때보다 ‘쉐프’의 명성이 높아져 흡사 연예인의 인기를 방불케 한다.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 비슷비슷한 체인점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순식간에 사그라진다. ‘먹고사니즘’의 고민이 이뤄지는 다른 한 편에서는 한 끼에 20~30만원에 육박하는 식당들을 예약하기조차 힘들다. TV에서는 집밥이란 이름으로 식당의 조리법을 가르치고,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한 이들은 밤늦게 종로의 요리학원들을 찾는다. 식(食)의 전성시대다. 먹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