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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

[푸디세이아] 10. 꿈길, 오뒷세이아, 잃어버린 나의 서사 0. 이건 말하자면 연말의 술주정, 혹은 청승과도 같은 겁니다. 희망찬 새해를 바라신다면 접어두시길. 다만 한 이야기의 초라한 끝이 궁금하다면, 계속. 1. 9는 미완의 수(數)다. 한 자리 숫자 중 가장 크지만, 결국 두 자리는 아닌 그런 것. 항상 완성을 꿈꾸지만 그건 결코 완성될 수 없는 환상. 수많은 좌절들에 잠깐 체념 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건, 이미 잃어버린 것들로 가득한 삶에 작은 죄 하나 더 얹어진다고 한들 인생이 무거워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생(未生). 항상 결국 완성될 수 없는 나날들. 그렇게 이름의 업보는 끝나지 않는다. 2. 광화문에도 지점을 하나 더 낸 것으로 보이는 ‘꿈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집이지만, 얄궂게도 그곳을 찾아간 것은 이번을 포함 두 번에 지나지 않는다.. 더보기
[금주일기] 강요(12.29) 강요는 폭력이다. 당신이 왜 이곳에 있는가. 이곳은 우리면 충분하니,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거기 당신의 자리로 돌아가라. 웃으며 안녕. 점심. 설렁탕집에 갔다. 연이은 낮술. 네명이서 '처음처럼' 1병을 마셨다. 특대설렁탕과 그냥 설렁탕의 차이는 도가니의 유무였다. 저녁에는 사당에서 중학교 3학년 8반 동창들을 만났다. 동창회라기보단 송년회에 가까웠다. '전주집'에서 우선 4명이 만났다. 모둠과 입가심거리(김치찌개)에 '밤막걸리' 6통을 마셨다. 뒤늦게 합류한 J의 몫까지 더한 것이다. '통통 새우전'을 추가로 시켰다. 2차로 'BHC'에 갔다. 뿌링클치킨에 '사민주의의 주스' 500cc 2잔을 마셨다. 마지막으로 C까지 합류했다. 맵스터치킨을 시키고 '절제의 무기' 500cc를 더 마셨다. by 벼 더보기
[今酒일기] 사랑(12.28) 사랑을 말하다 어느새 얘기가 알랭 바디우로 빠진다. "불가능성의 가능성이라는 것이 있다. 그건 말하자면 거대한 '과일' 진열장에 개구리 한 마리가 들어가는 순간이다. 사과, 배, 감, 딸기 가운데 청개구리 한 마리가 뛰어드는 찰나다. 모든 것이 가능한 순간이자 모든 것이 무너지는 그런 순간이다." "아니, 그건 그렇고. 그래서 니 생각이 뭐냐고." 누군가 잘라 묻자, 나는 되묻는다. "니 생각이 아닌 건 뭔데." 3년 전 얘기다. 부끄럽다. R이 운영하는 편의점. 온갖 물품으로 가득찬 창고에서 셋이 술판을 벌였다. '타이완 카스테라'에서 사간 치즈 카스테라를 메인 안주로 '와인' 1병과 '샹그리아' 1병을 마셨다. 막판에는 여기에 '맥키스'를 섞어마셨다. 편의점에서 파는 닭가슴살 튀김과 치즈, 오뎅 등이.. 더보기
[今酒일기] 중간점검(12.27) 지난달 28일 '금주일기'를 시작한 지 오늘로 만 한 달이다. 중간점검. 총 30일 중 '음주' 22일, '금주' 8일. 일주일에 이틀 꼴로 금주한 셈. 성공적. 점심에 '참이슬 후레시' 5잔 정도 마셨다. 매운탕 중에는 생태찌개가 젤 맛없는듯. "이제 맨날 송별회다"라는 말을 들었다. 나쁠 건 없겠다. '희래등반점'에서 대학원생 S를 만나 '칭따오 주스' 1병을 마셨다. 꿔바로와 양고기요리를 시켰다. 여자친구 사진을 보여주며 S가 "누구 닮지 않았냐"고 물었다. 도무지 생각이 안 났다. "정답이 있냐"고 되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오기가 생겨 힌트나 좀 달라고 했다.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콩깍지가 제대로 씌였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연애는 둘이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러니 잠자코 박수를... 더보기
[今酒일기] 생각보다(12.26) 생각보다 끝이 짧지 않겠다. 클라우디아의 희미한 목소리처럼 "사랑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 일까. 아니면 게르투르드의 단언처럼 "아니, 나는 사랑했"기 때문일까. 좀처럼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나는 한 번쯤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는 편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한다. 사랑의 언저리를 서성이다보면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될 테니까. 그러나 그때까지 여기에 남아있을 당신은 그 어디에도 없고, 그 사실을 잘 아는 나는 언제까지나 당신들 곁에 충실히 남아있을 것이다. 이기적인 생각. 내일을 생각하니 조금은 쓸쓸해진다. J의 공연에 가지 못했다. 나 하나 이기지 못해 기어코 미안함을 남기고야마는 사람들이 많다. 수입맥주를 몇 캔 마셨다. by 벼 더보기
<쿼바디스> '맞춤제작'된 신앙이란 * 개봉한 지 2년이 넘은 영화지만 전혀 위화감은 들지 않았다. 영화 속 한국교회의 현실은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한국교회는 지속적으로 크고 작은 논란의 중심에 있어왔다. 다른 종교와의 비교, 여러 교단 간의 비교 등 다양한 논쟁들은 내게 꽤나 흥미로운 주제였다. 나는 종교를 소명의식이나 믿음보단, 사회학적인 비판내지는 사고의 차원에서 보는 편이기 때문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기독교 인구는 약 967만 명이다. 대략적으로 국민 5명중 1명은 기독교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기독교는 어마어마한 규모와 그에 따르는 영향력과 책임감이 따르게 되었지만 책임감은 잊혀진지 오래고 일부 대형교회를 주축으로 한 영향력은 일종의 권력이 되었다. 나아가 이 권력은 교회에 그치지 않고 자본, 정치.. 더보기
[今酒일기] 교훈 2&3(12.25) 교훈 2&3 2. 페이스북을 함부로 지우지 말 것. 당신이 페이스북 아이디로 가입한 사이트가 꽤 많다는 것을 잊지 말라. 3. 백업은 필수. 컴퓨터가 고장났다. 자칫 애써 찍은 필름사진들 다 날아갈 판. 연이은 성공. by 벼 더보기
[今酒일기] 푸른(12.24) 푸른 눈의 소년과 친구가 되는 꿈을 꾼다. 하얀 눈으로 가득한 세계. 푸른 눈들의 세상. 졸지에 이방인이 된 나는 내내 깔깔거리는 그와 낄낄대며 축구를 한다. 그러고보니 소년의 얼굴은 호날두와 닮았다. 러시아의 한 대형교회쯤으로 보이는 건물 안에서 소년의 가족으로 보이는 한 무리와 마주앉는다. 마침 식사 시간이다. 갖가지 음식이 식탁에 오른다. 칠면조 요리에 군침을 삼킨다. 식전 종교의식. 책상 아래에서 몸통만한 종을 건네받은 이방인이 일어선다. 그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들. 산타 클로스마냥 새아햔 수염을 덮수룩하게 기른 한 노인이 노래를 시작한다. 그는 소년의 아버지인가, 할아버지인가. 차라리 노인은 이방인의 아버지를 닮은 것도 같다. 정작 호날두를 닮은 소년은 그 자리 어디에도 없다. 이방.. 더보기
[푸디세이아] 9. 우동집에서 우동을 팔지 않았다 한동안 마음의 빚처럼 묵혀뒀던 감정들이 걸려 낮잠을 자고 광장에 간다. 공기는 쌀쌀하고 인파는 예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끝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참 타오를 때는 가보지 못 했던 효자동을 찍고 광화문을 돌아 안국으로 간다. 매번 익숙한 그 길들이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행진의 서두에서 사람들은 캐럴을 부르고, 여기저기서 산타 모자를 쓰고 다닌다. 생각해보니 크리스마스이브다. 이브 저녁 이곳저곳을 쏘다니니 저녁때를 놓친다. 안국에는 좋아하는 우동집과 냉면집이 있고, 제법 괜찮다 생각하는 만둣국 집과, 무난한 라면집과 해장국집이 있다. 날이 추워 눈앞의 냉면집을 지나치며 라면이나 먹으려다, 갑자기 카레 우동이 끌려 발걸음을 옮긴다. 이미 18000보 가까이 걷고 난 뒤다. 작은 우동.. 더보기
[今酒일기] 무기력(12.23) 무기력하게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지나치고나서 고개를 돌리게 되는 것들, 이를테면 앙상한 나뭇가지와 그 아래 떨어진 낙엽들, 혹은 황정은과 박준, 그리고 박형준의 문장들이 그렇다. 한숨과 후회로만 남을 나날과 그럼에도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있기를, 그런 기대로나마 끝끝내 버티는 삶들도 마찬가지이며 무엇보다 이젠 단 한번도 반복될 일 없는 2016년 12월 23일의 당산과, 그날 그곳에서 어둠의 빛으로 남을 당신들이 그렇다. 당산에서 3명이 먼저 만났다. '당산 양꼬치'에 갔다. 양꼬치 3인분, 즉 30개와 옥수수국수, 볶음밥을 먹었다. '하얼빈 주스'와 '칭따오 주스'를 1병씩 시켰다. 뒤늦게 9가 합류했다. 옥수수국수를 하나 더 시키고 '칭따오주스'도 하나 더 주문했다. 고량주가 눈에 밟히긴 했지만 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