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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냉장고를 부탁해는 좀 별론데?

category 예능 2015. 1. 20. 07:00

흔한 요리 프로그램으로 치부하기에는 신선한 점이 많다. 음식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JTBC의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 대한 이야기다. 10회까지 방영한 가운데, 황금 시간대에 편성된 냉장고를 부탁해는 지상파 드라마들 틈바구니에서 조용한 강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냉장고를 부탁해의 월요일 밤 10시 시간대의 편성은 순전히 전략적이다. 이 시간대 지상파 드라마들이 예전만큼 파워를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JTBC는 야식 시간에 맞춰 요리 예능을 선택했다. 그리고 예능 뒤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가 끝나면 바로 비정상회담이 연이어 방송한다. 이미 11시에 일부 시청자들을 확보한 상황에서 JTBC는 황금 시간대에 점령을 위해서 연속 예능 편성 카드를 선택했다. 이것은 일요일 저녁 지상파에서 취한 슈퍼맨이 돌아왔다 이후 1박2일이 시작하고, K팝스타 이후 런닝맨이 시작하는 것과 방식이 동일하다.


그렇지만 전략은 전략일 뿐이다. 전략은 프로그램이 재미없다면 무용지물이다. JTBC는 충분히 그것을 숙지했고 프로그램에 대한 탐구를 열심히 한 것으로 보였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신선한 기획이 프로그램을 이끌고 탄탄한 구성이 프로그램을 뒷받침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프로그램은 안정궤도의 올랐고, 흔들림 없이 시청자들의 오감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냉장고를 부탁해의 가장 큰 매력은 스타들의 냉장고가 우리 집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점이다. 냉장고의 민낯 공개는 참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여타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스타들의 냉장고의 모습은 화려했다. 광고 효과를 노리는 회사들의 협찬 세례를 받아 새 냉장고가 그들의 진짜 냉장고를 대신하고 있거나 혹은 촬영 전에 급하게 냉장고 속을 미리 세팅해놓아 연출된 냉장고를 내놓았다. 주인의 손때 묻은 냉장고를 보기는 쉽지 않았고, 꼭 모델 하우스 안에 냉장고를 보는 것 같았다.


반면 냉장고를 부탁해의 등장하는 냉장고는 친근했다. MC들이 냉장고 속을 구경하면서 유통 기한이 지나거나 곰팡이가 슨 식재료들을 폭로하는데, 이는 우리 집 냉장고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다 청소하고 나면 식재료들은 별반 남지 않았고, 그마저도 각종 냉동식품과 먹다 남은 반찬들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셰프들은 볼품 없는 식재료로 군침을 삼키게 하는 요리로 탄생시켰다. 붓을 탓하지 않는 명필처럼, 15분의 주어진 시간 동안 바삐 움직이며 명품 요리를 선보였다. 처치 곤란 천덕꾸러기 냉장고의 신분상승 프로젝트라는 기획 의도가 요리와 함께 완성된 순간이었다.



그런데 10회 출연한 셰프의 아내 소유진의 냉장고는 기획 의도와 전혀 맞지 않았다. 이미 그녀의 냉장고의 신분은 오를 곳이 없었다. 구경하는 셰프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소유진의 냉장고는 화려했다.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재료들이 즐비했고 대형마트와 비견될 만큼 없는 것이 없었다. 세계 3대 진미 중의 하나인 송로버섯, 숭어 알 어란, 켜켜이 쌓여 있는 각종 고기류들, 세계 각지의 향신료 및 소스들까지 대결을 앞둔 셰프들에게는 천국이었다.


셰프들이 대결에 임하는 자세도 사뭇 여유로웠다. 재료가 풍성하기 때문에 본디 자신이 정말 잘하는 요리를 유감없이 뽐낼 수 있었다. 대결 시간 15분은 왠지 셰프들에게 충분한 인상이었다. 그런데 냉장고를 부탁해가 이토록 평화로운 방송이었나? 없는 재료들을 가지고 아웅다웅 싸워가며 묘한 신경전을 벌이다 그만 실수 연발의 셰프들의 행동에서 웃음을 뿜었는데, 웃음은 노다지 같은 냉장고 앞에서 모두 숨어버렸다.


화려하고 거대한 냉장고가 기존의 웃음 유발 통로를 막아버렸다. 또한 소유진의 화려한 냉장고 에 비해 우리집 냉장고는 초라해 보였고 기존의 냉장고를 부탁해를 봤었을 적  스타들의 냉장고를 구경하면서 공감했던 부분은 사라졌다. 그녀의 냉장고가 되기엔 우리집 냉장고의 갈 길은 멀어 보였다. 냉장고의 신분 상승 프로젝트는 그녀의 냉장고에는 어쩐지 불필요해 보였다.


프로그램의 흥행을 위한 소유진의 냉장고 섭외는 기획 의도를 망각한 처사였다. 화려한 재료들과 멋진 요리의 향연은 이미 다른 요리 프로그램에서 많이 봤다. 다시 기획 의도로 돌아와서, 허름한 냉장고 속 별 볼 일 없는 재료들로 멋진 요리로 탄생시키면서 그 와중에 셰프들이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들추는 고군분투 요리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고 싶다. 아니 부탁한다.


사진 출처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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