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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정치

총선론 : 본격 4.13 총선 판세 읽기

0. 들어가며

 

그 어느 때보다 예열 과정이 뜨거웠던 4.13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3월 31일부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여당도, 야당도 이해를 따질 필요가 없을 만큼 각자 충분히 내홍을 겪었고, 크게 번져나갈 것 같은 불길들은 ‘일단은’ 진화된 것처럼 보인다. 필리버스터 정국과 비례대표 논란, 공천 갈등, 친박 대 비박의 대결, ‘옥새투쟁’과 (언론에 의해 야기된) 김종인-문재인 간 노선 논쟁 등 굵직굵직한 정치적 이슈들이 빠르게 소비됐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 이제 큰 변수로 좌우할 요소인 야권 연대만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갈등 속에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 그 와중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본인마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독야청청, 야권연대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과연, 이번 총선은 어떻게 될 것인가.

 

 

1. 새누리당 -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총선보다 무서운, 총선 이후의 숙제

 

공식적으로는 갈등은 진화된 것으로 ‘보인다.’ 쇼맨십이 투철한 ‘영도다리의 남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그의 주특기로 판명 난 언론 플레이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며 어쨌든 총선 정국으로 돌아오는 데에 성공했다. 비록 여전히 지도부 내에서 합의되지 않은 의견들이 정제되지 않은 상태로 쏟아져 나오고는 있지만, 심각했던 갈등에 적응됐던 국민들에게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듯싶다. 명목적으로는, 목표했던 180석까지는 아니더라도 150석 이상의 의석 확보가 안정적으로 가능해보인다.

 

그러나 그 숨겨진 발언의 이면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잔불이 타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존영논란’은, 모든 새누리당 갈등의 원인이었던 친박(진박) 대 비박의 갈등이 정전이 아닌 휴전 상태임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원유철 원내대표에 의해 공식적으로 무소속 출마 의원들의 복당마저 일단 거부된 상태.

 

문제는 총선의 승리조차 관심 없다는 듯 ‘피의 숙청’을 벌인 친박계가 만족스럽지 못한 총선 결과를 가지고도 지금과 같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수 있을지의 여부다. 현재 ‘권력’인 김무성이 총선 이후 사퇴를 예고하며 본격적 세 불리기를 시도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친박계 세력이 ‘힘의 근원’의 레임덕 현상마저 이겨내고 정치적 주도권을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

 

한편 총선에서의 레토릭 싸움 역시 만만치 않다. 북풍의 위력이 예전만 못한 현 상황에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의 의도대로 경제 대결의 구도로 프레임은 구축됐다. 이에 대응하는 전 야권 인사였던 강봉균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의 경제 정책 관련 발언들은 아직까지 큰 ‘한 방’이 보이지 않는 상황. 경제 민주화 화두에 맞설 대안으로 ‘양적 완화’와 같은 수준의 정책들만 제시한다면 프레임 싸움에서는 밀릴 가능성마저 농후하다. 

 

여론조사 우위에 서 있는 오세훈 후보와, 열세지만 당선될 경우 파급력이 세질 것으로 보이는 이정현 의원, 텃밭이지만 텃밭 같지 않게 돼 버린 수성구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당선 여부 역시 향후 새누리당의 개편에 있어 영향력을 줄 변수들이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역시 무소속 태풍의 핵이자 차기 대권주자를 꿈꾸는 유승민 의원의 복귀 문제가 될 것이다.

 

당장 노출한 갈등으로 인해 지지율 급락을 경험한 새누리당. 선거 때는 그 누구보다 강하다는 기존 인식대로 여유롭게 150석 이상의 의석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캐스팅보트’는 새누리당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 총선 승리의 향방은 기존의 새누리당이 보여줬던 주도적 모습과는 다르게 야권연대라는 변수에 좌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2. 더불어민주당 - 김종인의 미래는? 꿈틀되는 잠룡들과 총선 이후 몰아칠 반격들

 

더불어민주당은 그 수많은 내홍들에도 불구 역설적이게도 현재까지 가장 안정적인 형태의 총선 전략을 세웠고 이를 착실히 진행 중이다. 모든 반대와 갈등과 대내외적 공세에도 불구 비례대표 ‘2번’을 꿰찰 정도로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다. 우향우 개편을 통해 정체성과 이념 논쟁에서 빗겨났고, 김종인 본인이 얘기한대로 경제 문제로 총선의 키워드는 결정됐다. 호불호를 떠나서 본다면, 정치력(혹은 정치공학적 구상력) 자체는 의심을 넘어 경탄까지 불러일으킬 정도.

 

다만 강경정책의 반작용으로 지지부진한 상황에 빠진 야권연대 문제가 역시 총선 구도에 있어 큰 변수로 작용 중이다. 공식적 루트를 거부한 상황에서, 후보별 연합의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큰 위험요인이다. 새누리당이 지지율 하락에도 불구 내부 대결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야권 분열 정국이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정도다. 수도권 참패설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위기를 타개할 비책을 낼 수 있을지가 관건.

 

선거운동을 일찌감치 시작한 문재인 전 대표에 이어 한동안 칩거했던 손학규 전 대표까지 총선 정국에 끼어들 조짐을 보이는 등 더불어민주당의 ‘잠룡’들의 행보 역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김부겸 전 의원이 대구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와, 박원순 서울시장 계열의 후보자들이 생환에 성공할 경우 세력화 될 수 있는 ‘박원순계’ 역시 고려해야 할 변수.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수는, 어쩌면 총선 이후 진면모를 드러낼 것으로 예상되는 김종인의 미래 행보다. 이번 총선의 결과는 그 결과의 긍정부정을 떠나서 향후 대선까지 이어지는 더불어민주당 내부 세력개편의 큰 축으로 자리 잡을 공산이 크다.

 

현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기존 더불어민주당 세력들의 반격 역시 총선 이후 본격화 될 가능성이 크고, 이 또한 총선 결과에 따라 그 파급력과 파괴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과 마찬가지로, 총선 이후 나타날 더불어민주당의 혼란 역시 현재로선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의 규모가 예상된다. 

 

3. 국민의당 - "꿈꾸는 강철수"는 현실을 넘어설 수 있을까?

 

김한길과 천정배 세력의 견제마저 이겨내며 결국 본인의 의도대로 국민의당을 이끌기 시작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비례대표 1,2번을 모두 과학자에게 배분하는 등 양당 체제와 차별화된 컨셉을 가지고 현재의 정국의 구도를 타개하며 제 3의 길을 모색 중이다.

 

이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하게 내세우고 있는 야권연대 반대 전략은, 그러나 동시에 자기 자신마저 위협하는 양날의 칼로 작용하고 있다. 당장 자신의 지역구인 노원 병에서조차 야권의 분열로 인해 이준석 새누리당 후보와 오차범위 내에 접전 중이다. 만일 이번 총선의 결과가 야권 분열의 결과로 인해 야권 세력의 참패로 끝나고, 본인마저 낙선하는 최악의 결과가 현실이 될 경우, 빗발치는 책임론 속에서 안철수의 정치 생명은 회복 불가능한 수준의 타격을 입을 공산이 매우 크다.

 

그 어느 때보다 커 보이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멘토” 안철수가 “정치인” 안철수로 거듭나는 길은 아직까지 멀고도 험난하다. 여당 지지 세력도, 야당 지지 세력도 지지하지 않는 제 3의 길에서, 정치 공학적 타협 대신 원칙적 ‘마이웨이’는 과연 유권자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까. 안철수의 제 3의 길 ‘실험’은, 그 결과를 떠나서 총선은 물론 이후 향후 대선 정국까지 한국 정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아직 그 중요성은 유효해 보인다.

 

4. 정의당 - 반사이익과 위기 사이의 줄타기

 

이번 총선 정국의 대혼란 속에서 유일하게 이익을 본 (것으로 보이는) 정당은 정의당이다. 이념적 선명성과 안정적 정책을 기반으로 한 정의당의 행보는, 더불어민주당 내 좌파적 세력의 이탈로 인한 반사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주목받지 못한 제3당 이미지에서 거의 유일한 ‘좌파’ 정당으로 거듭나면서, 정의당의 지지율은 계속해서 오르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다만 야권연대의 가장 핵심적인 축이자 동시에 가장 크게 영향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기에, 그 실질적 효과는 현재로선 여전히 물음표다. 노회찬 전 의원의 (국민의 당을 제외한) 야권연대 성공에도 불구 심상정, 정진후 등 현역 의원들의 지역구마저 야권 연대가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이들의 당선 가능성마저 위협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명목적 이익은 얻었지만, 그것이 실질적 성과로까지는 아직까지는 이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 정국의 혼란에서 이익을 얻고 있지만, 동시에 정당의 존립 자체마저 위협할 정도의 위기 역시 같이 진행 중이다.

 

결국 관건은 야권연대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스스로 다리들을 잘라내고 있는 상황 속에서, 야권연대의 마지노선은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만일 연대에 실패할 경우, 자생적 생존을 위한 ‘신의 한 수’가 정의당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

 

5. 마치며 - 혐오의 정치, 그럼에도 우리가 지켜봐야 하는 이유

 

 

물론 한국 정치의 복잡성이 심화됨에 따라, 총선 정국을 예측하는 것도, 총선 정국 이후를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다. 당장 총선과 관련된 여론조사마저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향후 미래의 정치적 상황을 논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 어느 때보다 복잡다단하며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번 총선이 그럼에도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총선을 넘어 개헌과 대선 등 향후의 한국 미래에 있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들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4.13 총선.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을 놓고 총 942명의 후보자들과 약 27명의 정당이 국민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혼란과 정쟁을 반복했으면서도,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주요 정당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유권자들에게 열렬히 한 표를 호소 중이다. 이외에도 노동당, 녹색당, 민중연합당, 친반연대 등 이번 총선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정치 세력들이 후보들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과 색깔을 드러내며 열심히 활동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그러한 정치세력들의 뜨거운 열망과는 반대로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와 불신이 극에 달하면서 국민들의 기대가 싸늘하게 식고 있는 정치 냉소 현장의 중심이기도 하다. 선거가 중요하다는 얘기는 언제나 강조돼 왔지만, 그것이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회의 역시 한국 정치와 선거에 있어 항상 함께했고, 이것은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정쟁과 갈등으로 얼룩진 이번 총선 정국은, 설상가상 그러한 국민들의 실망에 기름을 부었다. 정치 불신으로 인해 역대 최저의 투표율이 기록될지도 모른다는 전문가들의 예측 역시 위와 같은 상황들에 기반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혐오의 정치, 정치의 혐오는 분명 극복되기 어려운 과제임은 분명하다. 이를 극복해야 할 정당정치는 노력 대신 의도적 방조와 조장을 통해 혐오를 극대화해왔고, 이는 국민 내부의 갈등을 야기하는 결과들까지 초래해 국민들마저 갈등의 주체가 되었다. 평소엔 관심 없다가 선거 때만 국민을 찾는다고 분통을 터뜨리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항상 나왔음에도, 아직까지 변하지 않은 것 역시도 정치 세력들 스스로 의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 총선을 통해, 혹은 이번 총선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통해 이러한 모순들이 모두 극복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그렇기에 오산이다. 지지하는 어느 정치세력이 우위를 점하던 간에, 그로인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열릴 것임을 기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변화의 시작은, 정치가 아니다. 절망과 고통에 대한 해답 역시, 정치가 아니다. 우리가 정치에 대한 기대심리를 키울수록, 그에 대한 환멸 역시 비례해서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투표를 해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건, 역설적으로 스스로 할 수 있게 남은 몇 안 되는 일이 투표이기 때문이다. 차악을 고를 수밖에 없는, 혹은 필요에 의한 투표로밖에 현실이 전락할지 몰라도, 선거만이 국민이 유권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 판단이 설혹 잘못됐거나 오류가 있을지 몰라도, 그와 같은 이유로 선거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는 일은 벌어져서는 안 된다.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지켜봐야 한다. 그것밖에 할 수 없으면, 그것만이라도 해야 한다. 얼마 전 막 내린 드라마 대사처럼, “살아있으면 무엇이라도 해봐야하지” 않을까. 선거는 슬프게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몇 남지 않은 유일한 구명조끼다. 미미한 신호가 언젠가 응답으로 돌아올 때까지, 살아서 버텨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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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페이스북/블로그, 뉴시스, 머니투데이, 한국일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