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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이 넘은 남자가 죽었다. 자살은 아니다. 살인 사건이 명백하다. 그에게는 젊은 베트남 아내가 있다. 외국인 아내들은 나이든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한국에서 자리를 잡은 뒤 돈을 들고 빈번하게 도망간다. 남편은 두려웠다. 남편은 아내를 때리기도 했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외국인 등록증과 아내의 여권을 주지 않았다. 아내는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편을 죽였다. 아내는 아이와 함께 고향으로 도망치려다 공항에서 발견된다. 모든 정황이 완벽하다.

단막극 <비밀>은 앞 문단에서 설명한 대로 살인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용의자도 확실했다. 하지만 용의자는 외국인이지만 한국말을 아주 잘하며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한다. 더욱 의심이 커지는 상황이다. 드라마는 사건에 대한 의심과 과거의 실제 상황이 교차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수사가 깊어지면서 비밀은 조금씩 드러난다. 그러면서 우리들이 매매혼을 했다는 사실 하나로 용의자를 죄인 취급했다는 점이 밝혀진다.

 

베트남여자 응우엔 투이 띠엔(서은아 분)은 20대 꽃다운 처녀지만 목 부근에 화상 흉터가 있다는 것 하나로 아름다움의 범주에서 밀려나 있다. 빚 때문에 하게 된 매매혼에서도 그는 알선업자에 의해 우선순위에서 밀려 난다. 하지만 50대의 한국 남자, 김철주(김태한 분)가 그녀를 선택한다. 한 번의 데이트를 끝내고 두 사람은 결혼한다.  

한국에 온 후 모든 것이 두려운 띠엔이지만 철주가 나름대로 표현하는 것에 적응하고, 진취적으로 가정을 건사하는 일에 애를 쓴다. 오죽하면 무능한 철주가 저렇게 참하고 싹싹한 아가씨를 얻었을까 하는 평을 사람들에게 들을 정도다. 띠엔은 최선을 다해 한국어를 배우고, 50대가 되어 더 이상 건설노동자를 할 수 없을 철주를 대신해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에게는 아이도 생겼고, 어엿한 가족의 형태를 꾸린다.

 

하지만 띠엔의 발목을 잡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매매혼을 하게 된 원인인 빚이었다. 알선업자는 띠엔에게 계속 철주의 돈과 여권, 외국인등록증을 훔쳐 도망치라고 한다. 띠엔은 거절하지만 그 모습을 본 철주는 오히려 띠엔이 도망치는 것이 아닌가 오해를 한다. 결국 남과 여는 각자의 방식대로 서로를 지키기 위한 방법들을 쓴다.

 

띠엔은 한국에서 정식으로 공무원이 되려고 애를 쓰고, 철주는 건설 노동자를 그만두고 전에 같이 일하던 건설현장 시공 대리 한재민(허지원 분)을 찾아 간다. 재민은 띠엔을 참 좋아했다. 이성적 감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재민도 띠엔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며 베트남여자와 결혼했다. 하지만 재민은 아내에게 배신을 당한다. 폐인이 된 재민을 찾아간 철주는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에 이야기한 돈 버는 방법을 묻는다. 모든 것이 억울하고 화가 났던 재민은 띠엔의 여권과 외국인 등록증을 이용해 온갖 대포폰, 대포통장을 만들어버린다.

 

띠엔이 공무원이 되기 직전, 계좌 정보를 조회하는 과정에서 띠엔이 모든 비밀을 알아 버린다. 눈앞에 기회가 물거품이 된 것을 확인한 띠엔은 철주를 원망한다. 이제 나는 오빠(띠엔은 철주를 항상 오빠라 불렀다)를 믿을 수 없다고 말이다.

 

모든 것을 되찾겠다던 철주, 재민을 찾아가 돈을 돌려받는다. 물론 폭력을 써서였다. 재민은 순순히 모든 걸 넘겨주겠다는 척 한다. 띠엔의 여권과 외국인등록증까지 되찾은 철주가 천천히 뒤를 돌아 걷는 순간, 눈이 돌아가 버린 재민은 철주를 흉기로 찌르고, 철주는 그 자리에서 무참히 살해된다. 그렇게 띠엔과 철주의 노력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된다.  

진범이 잡히고 띠엔은 명예를 되찾았지만, 그녀에게 남은 건 없었다. 철주는 돌아올 수 없었다. 오히려 그녀가 발견한 건, 철주가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띠엔이 글을 알려달라고 할 때마다 화를 내고, 아이의 글인 줄만 알았던 그의 쪽지가 모두 철주의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만다. 또 첫 만남에서 그녀의 흉터를 보며 괜찮다며 스카프를 선물했다는 사실까지 한꺼번에 말이다. 띠엔은 오랫동안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드라마는 비극으로 끝난다. 대신 70분 내내 한 가지의 물음을 던졌다. 우리는 외국인 매매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우리는 매매혼으로 온 사람들을 언제 도망갈지 모르는 위험 분자로 취급하는 것은 아닌가.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숨겨내야만 이들과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계약적인 관계인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슬프지만 마음을 찌르는 이야기를 통해 외국인 매매혼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이야기는 평범한 반전이 숨어 있는 슬픈 사랑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소재가 외국인 매매혼이라는 점에서 특별해졌다. 분명 우리는 우리 사회 한 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문제를 생각해야만 한다. 드라마는 이 사람들을 기억하자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움직여야 한다고 띠엔의 울음으로 말을 건넨다.  

한 가지 더, 띠엔의 연기를 맡은 배우는 베트남 출신이 아니었다. 영화 내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톤으로 베트남어를 구사했고,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을 잘 묘사했던 그녀는 한예종 출신의 배우, 서은아였다. 데뷔작이 전신 노출을 했던 <짓>이어서 그녀의 이미지가 한정적일 수 있으나 서은아는 이번 드라마를 계기로 확실히 자신의 연기력과 매력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줬다. 적어도 연기력 논란을 일으킬 사람은 절대 아니라는 신뢰를 주는 신인이 등장하는 것, 이것이 KBS 드라마 스페셜이라는 단막극이 해야 할 역할이기도 하다. 여러 모로 반갑기도 하고, 마음을 울리는 <비밀>이었다.

 

- by 건

 

사진 출처 : 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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