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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주말이다 영화야

같음과 다름에 관한 영화, <뷰티 인사이드>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모든 사랑에는 과정이 있다. 처음 손을 마주잡을 때의 짜릿함과 첫 키스의 달콤함은 연인 간의 심리적 거리마저 허물어 버린다. 마치 원래부터 함께 했던 사람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달콤함 다음은 익숙함이다. 너무나 익숙해져 버려서 그 사람의 마음이 항상 나랑 같을 것이라 생각하고, 상대방의 사소한 신호는 으레 무시해버리는…. 그런 과정에서 연인들은 서로에게 실망하고 다투고, 심할 경우 이별하기도 한다.

 

개성 가득한 사랑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전형적인 사랑 영화다. 하지만 동시에 기존의 멜로물과는 조금 다른 특색이 있다. 특이점은 소재에서 찾을 수 있다. 주인공 우진(김대명 등)은 자고 나면 몸이 변한다. 얼굴만 변하는 게 아니라 나이도, 성도, 국적도 변하기 때문에 더 혼란스럽다. 처음 외모가 변한 날 충격에 휩싸여 눈물 흘리는 우진을 본 그의 어머니(오경숙 분)는 그를 단번에 알아본다. 그리고 말없이 그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사랑에 대한 감독의 철학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변화를 처음 지각한 후 우진은 소심한 성격을 갖게 되었지만 나름대로 그는 사는 법을 터득한다. 그에게는 어머니 말고도 모든 것을 믿고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상백(이동휘 분)도 있다. 상백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영화 분위기를 코믹하게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유쾌한 농담으로 초지일관 진지한 우진을 풀어주고 때로는 조언도 서슴지 않고 해주는 상백은 이 영화의 꼭 필요한 감초다. 어쩌면 상백은 우리가 이상향으로 바라는 친구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우진의 직업은 가구 디자이너다. 그는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가구를 만든다. 이 설정은 역설이다. 그의 겉모습은 늘 변하지만 그의 성격이나 능력은 같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작 자신을 위한 맞춤형 가구는 만들 수 없지만 누군가에게 꼭 맞는 가구를 만들고 싶은 그의 마음과 바람이 그의 가구들에는 깃들어 있다.

 

남자가 사랑할 때를 묘사한 디테일

 

그런 우진의 눈앞에 우연히 이수(한효주 분)가 들어온다. 그가 항상 들렀던 가구 도매점에서 이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첫눈에 반하기라도 한 듯, 우진은 항상 다른 모습으로 도매점을 들러 그녀를 관찰한다. 그리고 가장 멋있는 인물(박서준 분)이 됐을 때 이수에게 마음을 건넨다. 이 점은 일반적인 연애와 달라 보이지만 또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우리는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니 말이다. 어쨌든 우진의 고백은 나름 성공한다. 일부러 잠을 참아가며 우진은 3일 동안 외모를 유지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참 달달한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끝내 우진은 잠에 들고 머리가 벗겨진 남자(김상호 분)로 일어나면서 그는 좌절한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하는 슬픔과 안타까움이 얼마나 애절한지 알기 때문에 우진의 좌절은 지극히 공감이 되는 부분이었다. 우진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대로 이수를 포기하거나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거나. 그리고 그는 또 다른 모습(천우희 분)이 되어 최선의 선택을 한다. 솔직해지기로 한 것이다.

이수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연애를 시작하면서 영화의 달달함은 배가 되었다. 파티에서 만나기로 한 날 할머니로 일어나게 되어 다시 잠에 들어 멋진 남자(이진욱 분)로 변신하는 우진의 모습에서 나는 또다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우진의 처지에 비교할 수준은 아니지만 남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많은 공을 들인다. 평소에는 바르지도 않았던 왁스를 바르고 헤어스프레이를 뿌렸다가 머리 스타일이 망가졌던 것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디테일의 힘이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속마음은 같은 사람

 

하지만 세상의 모든 연애가 그렇듯 갈등은 언제든 생기기 마련이다. 우진은 이수와 좀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결혼 이야기를 꺼낸다. 이수는 그런 우진의 마음은 이해하면서도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진의 시선에서는 항상 같은 모습의 이수지만, 이수의 시선은 항상 낯선 모습의 우진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매일 새로운 모습을 만나는 건 아픈 일이다. 어제의 그와 오늘의 그가 다르게 기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수는 우진을 만나면서 경미한 정신분열 증세까지 경험한다. 우진은 이수가 아프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자신의 무심함과 이기심을 후회한다. 그리고 그는 또 다시 선택을 한다. 그녀에게서 떠나기로. 이번에는 어쩌면 자신에게 최악일지도 모를 선택을 한다.

 

다시 일상이다. 이수는 생각한다. 우진이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을 때 슬프면서도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한 자신을. 우진은 항상 겉모습이 달랐지만 마음은 항상 그대로였다. 반대로 이수는 정작 겉모습만 같을 뿐 매일 다른 마음을 가졌던 건 아닌지 돌이켜보기도 한다. 우진이 오직 이수만을 위해 만든 커플 의자를 바라보며 이수는 눈물 흘린다. 항상 변하는 모습 탓에 정작 우진만을 위한 의자는 만들 수 없었던 우진을 생각하며. 그리고 이제는 이수의 선택만이 남았다.

영화는 기쁨과 슬픔이 절묘하게 버무려져 있었고 그 덕분에 시원하게 웃을 수도 또 흐느끼며 울 수도 없었다. 소재는 판타지에 가까웠지만 장르가 멜로였기 때문에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또 이 영화의 장점 중의 하나는 자연스러움이었다. 무려 123명의 우진들은 겉만 다르고 속은 같은 연기를 귀신같이 해냈다. 어딘지 모르게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소심하지만 순수한 우진의 모습이 명확하게 기억나는 이유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애정 씬의 대부분이 잘생기고 멋진 배우들이라는 점일 것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지만 포옹하고 키스하는 장면의 대다수가 미남들이다 보니 기왕이면 겉모습이 멋진 게 낫구나, 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했던 것 같다. 어쨌든 겉과 속 중 굳이 하나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다면 나는 속마음을 선택할 것이다. “아플 때보다 너가 없는 지금이 더 힘들다”는 이수의 말에서 ‘너’는 우진의 각기 다른 외모가 아닌 우진의 마음일 테니 말이다. 겉과 속 모두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건 결국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다.

 

by 락

 

*사진 출처: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