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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지극히 주관적인

지극히 주관적인 5월 개봉 기대작 네 편

5월이다. 일단 반갑다. 5월의 첫날부터 고속도로나 공항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걸 보니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지 싶다. 나 같은 대학생에게 그리 큰 의미는 없지만 노동자의 날이 있고, 어린이날이 머지않았으며, 석가탄신일이 기다리고 있다. 더구나 올해엔 이들 모두가 주중에 포진되어 있다. 거기다가 중간고사는 막 끝났고, 아직 기말고사까지는 많이 남았다. 이 얼마나 좋은 달인가!

5월에도 어김없이 기대작들을 추려봤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지극히 주관적’으로. 뭔가 객관적인 정보나 수치를 기대하고 온 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이미 이러한 선포는 ‘지극히 주관적’인 시리지를 시작할 때 했었다. 벌써 4개월여가 지났다. 시간 참 빠르다. 5월만큼은 좀 느리게 가길. 하여간 내가 택한 네 편의 영화는 다음과 같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조지 밀러), <위아영>(노아 바움백), <모두의 천사 가디>(아민 도라), <산다>(박정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5월 14일 개봉) – 스타일리쉬의 끝을 보여줄 것인가?

 

조지 밀러 하면 무엇보다 장르를 넘나드는 스타일리쉬함이 떠오른다. 개인적으로 속도감 있는 액션 장르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매드맥스>에 기대를 거는 까닭이다. 영화에서 독창성을 중시하는 나로선, 조지 밀러 특유의 유려한 연출이 어떻게 발휘될지 기대하고 있다.

 

그러한 기대는 예고편을 본 뒤로 한층 더 커졌다. 짧은 영상 몇 편이 전부였지만, 인물 설정, 외양, 의상, 배경뿐만 아니라, 카메라의 움직임, 굉장한 속도감 등 나를 설레게 한 요소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엄밀히 말해, 그건 설렘이기보다는 공포감에 가까웠지만. 그게 무엇이든 무슨 상관이랴. 나에게 큰 울림을 주기만 한다면 그만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람포인트)

 

1. 끝내주는 속도감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인가?

 

 

‘분노의 도로’라는 부제와, 예고편의 상당수가 도로 위에서의 추격씬이라는 점으로 미뤄 봤을 때, <매드맥스>의 성패는 ‘속도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속도감이라는 게 단순히 빠르다고 해서 장땡은 아니라는 데에 있다. 중요한 것은 속도의 완급조절이다. 예를 들어, 나같은 경우 마냥 달리고 싸우고 쫓고 쫓기는 씬에서는 (조금만 그 씬이 길어져도) 상당히 지루해진다. <매드맥스>는 과연 유려한 리듬으로 최상의 속도감을 구현해낼 수 있을까.


2. 캐릭터들은 얼마나 압도적일 것인가?

 

<매드맥스>는 핵전쟁 이후의 22세기를 다룬다. 말하자면 판타지인 셈이다. (아무래도 SF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판타지에서는 그 세계에 대한 철저한 정초 작업이 필수적이다. 즉,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 <매드맥스>의 세계는 그다지 엄정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 같진 않다. 오히려 그 세계 혹은 상황에 대한 설명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각 인물들의 대응 방식이 영화 서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되면, <매드맥스>에서 불가피하게 중요해지는 요소는 캐릭터다. 이미 ‘주어진’ 세계의 불친절함을 메우기 위해서 강렬한 캐릭터가 필요하다. 예고편만으로도 충분히 개성적이고 압도적인 캐릭터를 암시하고 있었다. 과연 영화에서는 캐릭터들이 어떻게 구축되어 있을지 기대된다.

 

 


<위아영> (5월 14일 개봉) - 아니, 노아 바움백과 벤 스틸러의 조합이란?

 

사실 내가 <위아영>에서 매력을 느낄만한 요소들은 별로 없다. 노아 바움백의 전작 <프란시스 하>(2012)를 꽤 인상 깊게 보긴 했으나, 또 그렇게까지 감명 깊진 않았다. 벤 스틸러는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 등을 통해 많이 접했지만, 그건 벤 스틸러에 대한 애착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차라리, 종종 지극히 킬링타임용(별 생각 없이 볼 만한) 영화를 보고 싶어졌을 때 종종 거기에 그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의 연기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진지빠는 연기란! 물론 나오미 왓츠와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언제나 환영이지만!

 

서사도 마찬가지다. “당신에게 젊음이란, 현재진행형? 과거완료형?” 영화의 카피인데, 이건 그냥 자기계발 서적 홍보 문구로 써도 딱 들어맞지 않은가. 내용을 한 마디로 줄이면, 청춘을 잃어버린 이들이 청춘을 되찾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 (아마) 사랑이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어떻게 서사가 전개될지 눈에 선하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람포인트)

 

언밸런스를 한 번 믿어보자!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에 기대를 거는 이유는, 노아 바움백(엄밀히는 <프랜시스 하>)과 벤 스틸러 사이의 거리감 때문이다. 나는 도저히 <프랜시스 하>에서 벤 스틸러를, 벤 스틸러에서 <프랜시스 하>를 연상은커녕 상상할 수도 없다. 비유컨대 전자가 먹다 버린 사과라면, 후자는 버리다 먹는 사과랄까. 어쨌든, 이 둘 사이의 언밸런스함이 이 영화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될지 그게 궁금하다. 그건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어긋남의 연속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기묘한 방식으로 둘의 접점이 형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영화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거기서 오는 쾌감이야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모두의 천사 가디> (5월 7일 개봉) vs. <산다> (5월 21일 개봉) - 숨겨지거나 파헤쳐지거나

 

 

<모두의 천사 가디>(<가디>)와 <산다>는 한데 묶어 다뤄야겠다. 왜냐하면 둘은 모두 비극에서 출발하지만 서사의 진행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에서 비극은 환상 속에 철저하게 숨겨지며, 후자에서 비극은 집요하게 파헤쳐진다. 그런 의미에서 두 영화 모두 리얼리즘으로부터 출발하나, 실제로 리얼리즘과는 다른 쪽을 향하고 있다. 굳이 나눠보자면, 전자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며, 후자는 하이퍼 리얼리즘(혹은 극사실주의)이라고 할 수 있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람포인트)

 

어떠한 접근이 더 효과적일까?

 

비극적 현실에서 <가디>는 환상을 향하고, <산다>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그래서 비현실적인) 현실에 천착한다. 이 둘은 모두 리얼리즘에 기반하고 있다고 했을 때, 나는 이 영화들을 통해 둘 중 어떤 방식이 효과적으로 ‘현실’을 재현해낼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다. 효과적이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겠지만, 여기서는 관객들에게 비극적 현실을 전달할 때의 충실도나 충격도(혹은 감정적 울림)의 정도를 의미한다.

 

얼핏 보면 <산다>가 훨씬 효과적이리라 짐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산다>는 분명 비극적인 현실을 더욱 더 비극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관객은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끔찍하다고 곧 효과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예컨대, 사진작가 살가두가 아프리카 등지에서 내전 등으로 죽은 이들을 담은 끔찍한 사진들을 봤을 때, 그 충격이야 엄청나겠지만, 꼭 그만큼 그러한 참상을 외면하고 피하고자 하는 욕구도 클 것이다.

 

반대로 어쩌면 <가디>는 단지 환상으로 비극적 현실을 아슬아슬 치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소위 그러한 ‘환상의 기만술’이 효과적이지 않으리란 법도 없지 않을까. 알랭 바디우가 ‘위대한 허구’를 주창했듯이, 혹은 지젝이 ‘피상적인 만남’의 중요성을 인식했듯이 말이다. 확실히 <산다>보다 <가디>를 본 관객들은 감동 혹은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에두르나마 그러한 비극적 현실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지 않을까.

 

참 난감한 문제다. 마음속으로 둘 중 하나의 방식을 미리 택해놓은 뒤, 영화를 보면서 직접 그 효과를 체감하는 것도 재미있는 관람의 한 방법이겠다.

 

* 사진출처: 다음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