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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크롤러>(나이트)의 내러티브는 명확했다. 다른 말로 하면 <나이트>의 내러티브에 대한 의문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인과관계는 뚜렷했고, 기-승-전-결의 전형적인 구조도 거의 완벽했다.

<나이트>는 마치 한 편의 첩보물 같았다. 사실상 영화는 한 민간 촬영기사에 대한 내용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위에서 말한 내러티브뿐만 아니라, 영화 내내 이어지는 긴장감도 그러했다. 이에 대한 의문은 감독에 대한 정보를 찾아본 뒤 해소되었다. 댄 길로이(Dan Gilroy)는 각본가 출신이다. <리얼 스틸>(숀 레비, 2011), <본 레거시>(토니 길로이, 2012)같이 잘 알려진 영화 외에도 6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쓴 경력이 있다. 그리고 <나이트>는 그가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영화다. 그는 이 영화에서 각본과 연출을 동시에 맡았다. 즉, 각본가 출신인 길로이는 <나이트>에서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누구보다 ‘있는 그대로’ 영상화하고자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에겐 영상보다 시나리오가 우선했을 지도 모르겠다.  

 

길로이가 앞서 쓴 6편의 시나리오 중 대부분이 스릴러였다. 스릴러에서 시나리오의 역할은 여타 장르보다 훨씬 중요할 것이다.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은 카메라, 음악에 의존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별다른 의문 없이 빠져들 수 있는 내러티브가 중요하다. 그래서일까. 대부분 스릴러에서 인물은 내러티브에 휩쓸린다. 내러티브가 먼저 주어지고, 인물은 그에 반응할 뿐이다. 소위 아무리 ‘센캐’라고 해도 주어진 내러티브의 손 안에 있을 뿐이다.

 

길로이는 처음으로 자신이 연출한 스릴러에서 무엇보다 내러티브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리라. 더구나 그는 각본가 출신이 아닌가. 아마 연출가 길로이의 최우선 과제는 각본의 내러티브를 최대한 그대로 영화에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런지 영화는, 좋게 말해서 빈틈이 없다. 영화는 순탄히 감독의 의도대로, 각본대로 흘러간다. 그런데 이런 방향은 자칫 최악의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영화는 영화니까. 영화가 시나리오에 충실하는 게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영화는 시나리오에 충실해야 한다. <야곱의 사다리>(애드리안 라인, 1990)의 실수를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분명 시나리오와 다르다. 기본적으로 전자는 영상이고 후자는 활자다. 그러므로 시나리오가 곧 영화화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둘 사이에서 충돌은 불가피하며, 오히려 충돌의 과정에서 생산되는 새로운 의미는 건강한 영화의 전제다. 충돌을 회피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반대로 일관되고 뚜렷한 담론 밖의 어떠한 잠재적 가능성도 억누르는 것과 같다. 같은 맥락에서, 연출과 각본이 분리된 구조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연출자는 각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보다는, 영상 속에 각본을 어떻게 드러낼 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건 어쩌면 각본가의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각본가가 ‘새로이’ 만들어진 영상 앞에서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이트>는 자칫 끔찍한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티끌하나 없이 일목요연하게 전개되는 내러티브는 사실상 우려가 어느 정도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반영했다. 그러나 다행이도,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던 영화를 멈추게 하고, 더 나아가 잡아 올린 두 인물이 있었다. 하나는 촬영감독 로버트 엘스윗(Robert Elswit)이고 다른 하나는 루이스 블룸 역을 맡은 제이크 질렌할(Jake Gyllenhaal)이다.

 

엘스윗은 80년대부터 수많은 영화들을 찍어왔다. 그중에서 눈여겨볼만한 점은 거장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이 연출한 거의 모든 영화의 촬영 감독을 엘스윗이 맡았다는 것이다. 그의 유려한 카메라 워크와 앵글은 자칫 시나리오에 함몰될 뻔한 영화를 바로잡아주었다. 덕분에 내러티브 중심으로 흘러가는 영화에서 영상이 돋보일 수 있었고, 영화가 영화다움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제이크 질렌할의 신들린 연기도 한몫했다. 그가 연기했던 블룸은 잘짜여진 내러티브를 마냥 좇기만 해도 본전은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질렌할의 연기는 블룸이라는 캐릭터 자체를 전면화했다. 가히 그의 연기력으로 인해 블룸은 내러티브의 무게와 맞먹는 위치에 설 수 있었다. 만약 내가 감독이었다면, 영화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넣지 않았을까 싶다.

 

‘이 영화를 로버트 엘스윗과 제이크 질렌할에게 바칩니다.’

 

*사진출처: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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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하호호 2015.02.27 22:00

    글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저도 제이크질렌할의 연기보고 ㅎㄷㄷ하다고 느꼈네요ㅋ

  2. singenv 2015.03.01 18:23 신고

    이 영화 재밌게 보았어요. 내일 리뷰 올라갈 예정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