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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아아, 호구가 여기 있었습니다. <호구의 사랑> 첫 회

아,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이 감탄사의 종류는 쓰라림과 공감이 뒤섞인 감탄이다. 갑을 로맨스, 모태 솔로 연애 호구남의 사랑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언어들로 뒤섞인 <호구의 사랑> 첫 방송을 보고 난 소감이다.

방영 전 열린 제작 발표회에서 출연자 이수경의 발언 논란으로 이미 홍역을 겪어 노이즈 마케팅을 한 상황이었다. 그런 부분을 차치하고서라도 멋진 재벌 남자가 아닌 평범하고 소심한 남자의 로맨스라는 설정 덕에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관심을 두었다. (사실 내가 그런 남자라 그랬다.) 관심과 우려가 뒤섞인 상황에서 첫 방이 끝난 지금,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갈 것 같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남부럽지 않은 호구남 중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확실히 공감했다. 아주 웃프게 말이다.

먼저 PD와 작가의 이름을 보고 놀랬다. 나는 드라마를 보고 나름대로의 판단을 내릴 때 출연진보다 연출가와 작가의 역할에 더 힘을 싣는 편이다. 기존 작품을 통해 신뢰를 얻은 PD와 작가라면 믿고 첫 방송을 꼭 사수하곤 한다. <호구의 사랑>의 연출 조합을 보니 표민수 PD와 윤난중 작가, 믿고 보는 이들이었다.

 

연출을 맡은 표민수 PD는 멜로드라마의 진수로 꼽는 <그들이 사는 세상>의 연출자다. 이전에 <풀하우스>, <아이리스2> 등 다른 성공적인 드라마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사세’에서 대부분의 팬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대본은 윤난중 작가가 맡았다. 단막극 드라마 스페셜 중에 <위대한 계춘빈>으로 데뷔해 김혜수가 뛰어난 연기를 펼친 <직장의 신>에서 이름을 확실히 알렸다. 표민수 PD와는 <꽃미남 라면가게>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멜로드라마를 좋아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합이다. 이미 검증된 제작진이 만들어가는 <호구의 사랑>이라니 더욱 첫 방송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낭비하는 장면 없이 내용을 물 흐르듯 진행하면서 호구(최우식 분)가 전에 하지 않던 선택, 도희(유이 분)에게 바다를 가자고 하는 결정까지 내용을 빠르게 전개했다. 중간에 카메오로 <미생>의 오상식 과장님이 자신의 명대사를 그대로 장면에 녹아낸다던가, 최덕문, 이시언, 최재환으로 이어지는 적절한 코믹스러운 장면은 덤이었다.

 

강호구의 답답한 모습에 가슴을 치면서 어떤 순간에는 ‘나도 저랬는데’라며 공감하며 내용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제작 발표회 때 강호구를 연기한 최우식이 너무 강호구 같다는 발언 때문에 꽤 문제가 되었는데, 그의 연기를 보고 있자니 표현이 잘못되었긴 했어도 그 생각이 이해는 되었다.

 

최우식이라는 배우를 새로 발견했다. 기존에 최다니엘, 송새벽과 같이 찌질한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있었는데 그 뒤를 이을 수 있는 배우의 등장이었다. 자신감도 잃고 용기를 잃어버린 요즘 연약한 남자들을 대변하는 그의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어쩌면 그에게서 나의 표정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드라마의 내용에서는 거절당할까 두려워 한 발짝 더 다가서지 못하는 요즘 남자들, 서로 너무 똑똑해서 계산할 수밖에 없는 서로의 연애, 연애인지 썸인지도 모르겠는 가벼워진 만남처럼 요즘의 모든 연애 세태를 모아서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느껴졌다. 실제로 드라마에서 보인 부분이 꽤 들어맞는 것도 있었다. 저런 남자들이 은근히 지구 곳곳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내가 그렇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어쨌든 드라마의 방향은 확실하다. 순수하고 착하지만 호구라고 놀림 받는 남자(그의 엄마마저 그의 중요한 그것이 왜 달려있는지 물을 정도)의 이야기다. 그 남자는 신호등이 깜빡이는 순간에도 사랑에 빠져서 앞뒤 안 재고 달려들고 싶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 드라마는 앞으로 이 남자의 순수한 사랑이 어떻게 이뤄질지 차근히 보여줄 것이다.

 

새로운 주연 배우의 발견, 탄탄한 조연, 그리고 반가운 카메오(2회에서는 <응답하라 1994>의 주역 손호준, 도희가 출연) 덕에 <호구의 사랑>은 논란을 딛고 다시 순항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걱정되는 부분은 내용상 앞으로도 쭉 비호감 이미지로 가야하는 이수경에 대한 시청자들의 인식과 아이돌 출신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한 피할 수 없는 논란이다. 이 부분들은 앞으로 <호구의 사랑> 제작진이 헤쳐 나가야 할 또 하나의 산이다.

 

그래도 난 대한민국 어딘가에 숨어 있던 또 하나의 호구남으로서 철저히 강호구의 마음에 공감하며 재미있게 드라마를 봤다. 그래서 이렇게 내용 분석보다 나의 감상을 구구절절하게 늘어놓으며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간만에 현실에 있을 법하면서도 판타지가 섞인 현실 판타지 로맨스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사진 출처 :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