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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딱히 위로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가끔은 위로라는 말이 버거울 때가 있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슬픔이 닥쳤을 때가 그렇다. 시간이 흐르는 것만이 약인 그 순간, 어설픈 위로는 외려 독이 된다. 그럴 때 나는 침묵을 선택한다. 하지만 힘들어 하는 그 누군가의 옆에 머무른다. 그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이 내 임무라고 생각하니까. 속 주인공 자매들은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딱히 건네지 않는다. 후반부에서 둘째는 첫째에게 맨 정신으로는 오글거리는 말을 못하겠다는 말도 한다. 낯간지러운 위로를 하기 어려운 사이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상적인 말들이 어찌나 편안함을 안겨주던지. 는 만들어낸 위로 대신 자연스러운 평안을 전하는 영화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고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남겨진 세 자매는 다행스럽게도 건강히.. 더보기
지극히 주관적인 2015년 하반기 영화 BEST & WORST 5 * 2015년 하반기 영화 BEST 5와 WORST 5를 게시하려 합니다. 저희가 리뷰를 남긴 작품들만 포함했습니다. 재개봉이나 단편 영화는 제외했습니다. 다음은 올해 하반기 개봉작 기준으로 지금까지 저희가 본 영화 22편의 리스트입니다. (장건재), (김성제), (소노 시온), (데스틴 다니엘 크레톤), (김광태), (피트 닥터), (사이먼 커티스), (최동훈), (류승완), (김휘), (난니 모레티), (백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 (이준익), (홍상수), (허종호), (리들리 스콧), (요르고스 란티모스), (사피 야즈다니안), (우민호), (조나단 글래이저), (자크 오디아르) **BEST 및 WORST는 단지 (한글) 이름순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2015년 상반기 개봉 영화 BEST 5).. 더보기
지극히 주관적인 11개봉 기대작 세 편 같은 시간을 함께했던 이들과의 모임에는 남다른 기억력을 뽐내는 사람이 꼭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7년 만에 만난 재수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유달리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더듬더듬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왜 걔 있잖냐. 맨날 잠자고, 자습 빼먹고 피시방 가던 놈. 하, 누구더라...” 다들 조용히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때, 뒤늦게 합류한 A가 치고 들어온다. “아, X 말하는 건가? 자습이 뭐냐. 수업도 빼먹고 피시방 돌아다니느라 바빴지. 걔네 무리가 있었어. Z, W, U랑... 맞다, S. 이렇게 넷이서 같이 다녔잖아. 아, 그리고 니네 그거 아냐? Y랑 X랑 잠깐 사귀었던 거.” 하나 더 있다. 연례행사처럼 모이는 중학교 동창(회라기엔 초라하지만 어쨌든)회. 술이 한두 잔 들어가면.. 더보기
<지아장커: 펜양에서 온 사나이> 중국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 박성원이 단편 「댈러웨이의 창」에 담았던 문제의식은 같은 작품이 실린 소설집 『나를 훔쳐라』(문학과지성사) 전반을 가로지른다.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어려운 용어가 거북스럽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보자. 여기 어두운 암실에는 사방이 하얀 천으로 둘러싸인 작은 상자가 있다. 상자 속에 들어 있는 촛불만이 유일하게 빛을 밝힌다. 상자 안에는 미지의 물체가 들어 있는데, 우리는 하얀 천에 맺힌 그림자를 통해서 그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 형태는 대략적으로 보건대 토끼의 모양이다. 자, 그렇다면 질문. 상자를 둘러싼 천은 토끼라고 추측되는 대상을 보여주는가, 아니면 가리는가? 대답 하나, 보여준다. 정말? 우리는 그저 토끼처럼 보일 뿐인 그림자를 볼 뿐이다. 정말 그 안에 토끼가 들어 있다고 확신할.. 더보기
<비거 스플래쉬> 그대의 욕망을 욕망하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는 영화를 깊게 읽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름대로 서사에 대해 고민하고, 그 흐름을 찾아내는 걸 즐긴다. 그렇기에 영화나 드라마 모두 나에게 즐거운 이야기들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내가 처음으로 혼자 본 영화는 틸다 스윈튼이 출연하고, 그녀가 다시 한 번 내한한 계기가 된 작품, 였다. 직역하면 ‘더 큰 물살’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한국 팬들과 친숙한 틸다 스윈튼이 나온다는 것 하나만으로 영화는 예매 때부터 금세 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그녀를 직접 볼 수 있었던 GV 행사는 덤이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오자면, 는 1969년 탐정 스릴러물 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다. 탐정 스릴러물을 기반으로 만들었다기에 음산한 분위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긴장하게 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 더보기
화두를 던진 영화 ‘디판’, 이것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첫 영화다. 별밤 3인(락,별,건)은 첫 방문을 기념해 한 작품을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우리의 이야기는 쉬이 끝날 줄 몰랐다. 영화를 보고 함께 나눈 40분의 대화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각자가 느꼈던 부분들, 혼자였다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이야기들. 제68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작품, 디판을 해부해봤다. 영화 소개 (네이버 영화 소개 참고) 부산국제영화제 2일차, 오전 10시 30분, 롯데시네마 6관에서 관람. 자크 오디아르 감독, 2015년 10월 22일 개봉 예정. “이제부터 당신들이 그 가족이요” 내전을 피해 망명하기로 한 주인공은 브로커에게 ‘디판’이란 남자의 신분증을 산다. 처음 만난 여자와 소녀를 자신의 가족인 양 꾸민 뒤 위험을 .. 더보기
<침묵의 시선>이 <액트 오브 킬링>에 비해 아쉬운 까닭 별 시답잖은 얘기부터. 내 책장에 몇 권 꽂혀있는 들뢰즈나 푸코, 지젝 등을 본 뒤로 나를 포스트모더니즘에 경도된 ‘확신범’이라고 확신한 친구가 있었다. 언젠가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친구가 내게 사소한 실수를 했고, 속이 좁았‘던’ 나는 쉽게 화를 풀지 않았다. 몇 번이고 나를 달래던 그 친구는 마침내 그 특유의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진심으로 미안해. 진심이야.” ‘진심’이라는 단어 하나에 풀릴 속이었다면 진즉에 풀렸을 터. 그럼에도 잠자코 있던 내게 지쳤는지 그놈이 이어 내뱉은 말은 조롱에 가까웠다. “아, 맞네. 요새는 진심을 믿을 수 없는 시대지.” 진심을 믿지 못하는 시대. 그 비아냥은 나를 향하면서도, 사실상 나와 그 친구를 둘러싼 포스트모던, 혹은 포스트모더니스트.. 더보기
지극히 주관적인 9월 개봉 기대작 네 편 또 다시 개강이다. 벌써 9번째. 그러니까 내게 이번 가을 학기는 4년 동안 채우지 못한 학점을 따기 위한, ‘추가학기’다. 단 2학점이 모자랐다. 여름 계절 학기에 들어야지, 했는데 몇 개 개설되지도 않은 강좌들을 노리는 수많은 경쟁자들을 따돌리지 못하고 그만... 여기까진 대외적인 변명이다. 솔직히, 아니 더 엄밀히는 무의식적으로, 막연한 ‘백수’생활에 대한 불안이 컸다. 취준생은 노력이야 가상하다 하더라도 어쨌든 백수고, 백수는 곧 낙오자니까. 아직까지 학생이라는 편안한 신분을 놓치고 싶지 않았나보다. 다행이 2학점을 들으면 학비의 1/6만 내면 되었다. 그 정도 돈이면 반 년 동안 알바로 모은 알바비로 충당할 수 있었다. 계절학기 수강신청 날, 나는 이상하리만치 게을렀고 예상보다 빨리 수강 정원은.. 더보기
<휴고>, 결국은 영화로 (1976), (1980), (1988), (2002), (2010). 마틴 스콜세지의 필모그래피를 따라오다 보면 (2011)는 왠지 ‘갑툭튀’라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다. 분위기부터 그렇다. 어딘지 음울하고 정신병적이고 지리멸렬한 흐름 와중에 는 기본적으로 발랄하다. 차라리 의 세계는 웨스 앤더슨이 만들어낸 동화적 세계에 가깝다. 거기다 영화는 일종의 주인공 휴고(아사 버터필드)라는 꼬맹이의 성장기다. 스콜세지와 아이, 그리고 성장기라는 소재의 만남은 낯설기 그지없다. 더 나아가 는 영화에 대한 영화다. 이게 핵심이다. 결국 스콜세지는 그의 영화사에서 돌연변이 같은 영화를 통해 어떤 ‘멈춤’의 순간을 노렸던 것은 아닐까. 이를테면 수많은 영화를 찍어온 자기의 나날, 더 나아가 100년이 넘은 영화의 시.. 더보기
<암살>, 오락물과 시대극의 만남이란 아니나 다를까, 에 대해서도 수많은 상업적 걱정과 염려가 앞섰다. 심지어 어떤 기사에서는 지금까지 ‘일제시대’를 다룬 영화들의 저조한 흥행실적을 일일이 나열하며, 최동훈의 ‘천만’ 기록에 혹여 누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물론 상업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 (2004), (2006), (2009), 그리고 (2012)의 최동훈과 시대극의 만남이 어떻게 펼쳐질지 좀처럼 가늠하기 어려운 점은 있었다. 굉장히 개성적인 캐릭터들, 자극적이고 흥미를 유발하는 이야기. 이를테면 지금까지 최동훈의 영화는 철저히 만화적 상상력에 기반을 둔 오락물에 가까웠다. 그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캐릭터와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와 그의 영화를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동훈은 오로지 캐릭터와 이야기만으로 영화를 유려하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