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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금주일기2] Prologue 나는 그곳에 없었고, 그곳으로부터 나는 도망쳐나오고 있다. 이곳을 향한 여정. 그 어디로도 떠나지 않는 여행이 시작됐다. 그 이름하야 술여행. by 벼 더보기
[3인의 현상범들] #7 위대한 허구 [호래.txt] 사진가는 창문을 찍을 수 없다. 만약 낮-실내에서 창문을 찍으면 창문 밖 풍경이 카메라에 담길 것이고, 사람들은 그 풍경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창문을 통과한 이미지라는 것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만약 창문에 찍힌 지문이라든지, 창문에 비친 형광등을 사진에 담아 이것이 창문을 통과한 이미지라는 것을 알아채게 만든다면 사람들은 직접 현장에 뛰어들지 않고 안전한 실내에서 사물을 담으려는 작가의 태도를 질책할 것이다. 반대로 밤-실내에서 창문을 찍으면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찍힐 것이고, 사람들은 이를 자화상이란 의미로 해석할 것이다. 그렇다면 불투명한 창문은 대안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불투명한 창문이란 그 자체로 창문이 아니다. 그렇다면 ‘창문’ 그 자체를 사진에 담.. 더보기
[3인의 현상범들] #6 세계의 끝 [학곰군.txt] 넌 놓치고 있어.뭐를?사진에서 뭐가 보이느냔 말이야.말했잖아. 또라에몽.그것 뿐이야?뭐 쌓인 책들도 있고 오묘한 나무 그림도 있고.그뿐이냐고!왜 갑자기 지랄인데. 뭐 어쩌란거야.정말로 그것밖에 안 보여?응. 귀신이라도 보이냐 너는?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뭔데 그럼.그을렸잖아.그게 뭐.그게 뭐라니. 그을렸대두?아니 그게 뭐 어쨌다고.이게 안 보인다며!그깟 그을음이 뭐가 중요한데?뭐가 중요한 지도 모르는 건 너야.미친놈이. 개소리 할 거면 말 걸지마.볼 수 있는 것도 못 보면서 뭐가 잘났다고 큰 소리 치는 거야.그깟 그을린 자국 때문에 이 지랄을 하는거야? 뭔데 썅. 들어나보자.봐. 잘 들어봐 알겠니?설명이나 해.알았어. 봐. 사진은 누가 자를 대고 자른 것처럼 똑바르게 그을린 자국이 .. 더보기
[3인의 현상범들] #4 이름 없는 화가 [호래.txt] 술을 마셔서 정신이 조금 멍한 상태로 나는 지금 눈앞에 있는 그림을 보고 있다. 그림에는 검은 선이 몇 개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그린 건지 모르겠다. 섬 같기도 하고 산 같기도 하고. 바다 같기도 하고 육지 같기도 하다. 화장실을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나는 그 그림 앞에 멈춰 섰다. 굉장히 관심 있는 사람처럼 그림을 보고 있지만 사실 그림엔 별로 관심이 없다. 무엇을 그린 지도 알 수 없는 그림 따위 봐서 무얼 하나. 그냥 술자리엔 바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데 분위기 맞추며 앉아 있는 건 고역이다. 개새끼들 그냥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술을 마시면 나는 조금 더 감정에 솔직해 진다. 아니다. 지금 이 감정은 어딘가 과장된 면이 있다. 사실 걔네들은 나한테 .. 더보기
[3인의 현상범들] #3 말하자면 말입니다 [학곰군.txt]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아버지였다. 나는 짐짓 슬픈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잘 되고 있니? 네? 그냥 그렇죠. 일부러 고개를 떨구었다. 아버지의 그림자가 보인다. 검은색. 아니 그보다는 흐린, 너무 많은 붓이 오고가서 이제는 수심을 알 수 없는 물통의 색 같은 그의 얼굴이 있었다. 너의 쓰임이 있을 곳이 있을 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머리가 아버지의 그림자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영영 나오지 못할 것처럼 그대로 멈춰버렸다. 벗어날 수 있을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세상에 쓰임이 있는 곳이 있을까. 아버지도 한 때는 가슴에 광활한 대지를 품고 무작정 앞으로만 달려가던 때가 있었다고 말한다. 네 나이 때는 하늘을 품어도 모자라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러나 잘 될 것이라는 말을 하며.. 더보기
[3인의 현상범들] #2 아버지를 위하여 [소르피자.txt] “이제 선택해야 할 시간이야.”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얀색의 폰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수백 수천 게임을 치러왔다. 많은 선택들이 그의 머리를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시작한 지 세 번째 순서 만에 E7칸에서 나이트에게 잡혔던 기억, 자신을 희생하면서 상대방의 흑색 퀸이 잡혔던 일, 상대편 진영에 끝가지 가서 백색 퀸으로 승급한 자신의 동료를 본 기억도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게임을 치러오면서 그는 지쳐버렸던 것이다. 게임을 이겨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기사를 위해, 주교를 위해, 여왕에게 길을 터주고 왕을 지키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승급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 순서는 그에게까지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늘 게임에서 그는 드디어 상대방 진영에 도달한 것이었다. “어떤 것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