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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 이슬람을 이슬람의 언어로 상대하다 올해 1월 프랑스에서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가 괴한 3명으로부터 공격당했다. 피습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고, 괴한 3명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알려지면서 프랑스 곳곳에서는 이들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Je suis Charlie"(“나는 샤를리다”)라는 슬로건 아래 파리 광장에 결집했다. 지젝이 보기엔 이 장면이 아주 우스꽝스러워 보였던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프랑스 경찰은 시민들에게 조롱과 욕설의 대상이었다. 테러 이후 프랑스 경찰과 시민은 공동의 적(이슬람)을 두고 하나 된 모습을 보였는데, 지젝은 이를 위선과 허상에 가까운 현상이라 단언한다. 대신 그는 “우리는 샤를리 에브도에서 벌어진 살인을 분명하게 정죄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자유를 유지시키는 근간을.. 더보기
빅브라더보다 무서운 빅데이터에 대한 경고, 한병철의 <심리정치> 한병철은 내게 낯선 비평가였다. 그가 이전에 집필한 , 에 대한 호평은 익히 들었지만 접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는 짧은 분량이었음에도 쉽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결코 아니었다. 그가 책 첫머리에서 “자유는 결국 에피소드로 끝날 것”(9쪽)이라는 말이 이 책의 주제라는 걸 깨닫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자유주의의 자유,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그는 우리가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 달리 온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자유 자체가 강제를 생성하는 특수한 역사적 시기를 살고 있다.”(10쪽) 자유 자체가 강제를 생성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해야 함’과 ‘할 수 있음’의 차이다. 과거에는 해야 한다는 규율의 언어가 작동했다면 현재에는 할 수 .. 더보기
<별들의 고향> 문오의 서사와 경아의 서사가 이토록 다른 이유 고향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우선 소설의 제목부터가 『별들의 고향』이며, 문오와 경아의 서사에 있어서 고향이란 비유하자면 어떤 분수령의 지점과도 같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단순히 고향의 있음/없음이 그 둘의 서사를 가르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하나마나 한 말이 되겠지만, 고향은 분명히 그 둘에게 존재했다. 경아에게 있어 고향은 ‘강원도 어느 시골 역’(1, 49)이었으며, 문오의 고향은 ‘바다가 보이는’ ‘부두 연변’(2, 317)의 한산한 어촌이었다. 문오의 고향과 경아의 고향 사이를 가로지르는 변별점은, 철학적인 용어를 끌어와 보면 ‘존재론적’인 차원이 아니라 ‘인식론적’ 차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에두르지 않고 말해서 문오와는.. 더보기
곧 찾아올 미래, 당신은 마주할 준비가 되었는가? 스마트폰을 처음 쓰게 된 건 2013년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만 쓰지 않는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남의 불편까지 감수하며 고집을 부릴 만큼 용기가 있지는 않았다. 그렇게 뒤늦게 접한 스마트폰은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그 전까지 전혀 사용하지 못했던 어플리케이션(앱)이 신세계를 선사해줬다. 불필요한 대기시간은 버스 앱 덕분에 사라졌고, 심심한 시간도 웹툰 앱이 채워줬다. 그러나 잃은 것도 있었다.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사라졌고, 스마트폰이 손에 없으면 불안해지는 노모포비아도 증후군도 일상적으로 겪게 됐다. 불과 2년 전의 경험을 들춰내는 까닭은 를 소개하기 위함이다. 솔직히 나는 이런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래는 이렇게 설계되어 있으니 그 환경에 잘 적응해보렴’ 같은 뉘앙스를 .. 더보기
킬미힐미와 닮은 듯 다른 <A씨에 관하여> (하) 꽤나 괜찮은 반전, 두 번째 Chapter는 기억을 찾는 연인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야기가 앞의 보다 짜임새 있었고, 후미에 반전까지 있어 앞선 이야기보다 흥미롭게 느껴졌다. 오후가 되면 기억이 과거로 돌아가는 유소현과 그런 그녀를 돌보는 이안의 일상은 곧 터지기 전의 폭탄과 다름없다. 과거의 기억으로 살아가는 여자와 그런 그를 돌보는 남자 사이의 갈등은 치유의 과정에서 심화되고 폭발한다. 소현의 하루는 다층적이다. 오전에는 스물넷, 오후에는 스물셋, 저녁에는 고등학생으로 살아간다. 부모가 모두 사고로 세상을 떠났기에 소현을 돌봐줄 이는 그녀의 연인 이안밖에는 없다. 이안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 소현의 병을 고치려 하지만 소용없다. 기실 그녀의 병은 트라우마에서 비롯됐다. 부모가 교통사고를 당한 .. 더보기
신과 인간, 그리고 비틀린 희생양. 장강명, <표백> 세연이 자살하고 5년 뒤, 잇달아 발생한 사건들. ‘와이두유리브닷컴’의 적잖은 흥행과 ‘제자’ 세 명의 자살. 그리고 기대했지만 의도하지 않았던 또 다른 표백세대들의 자살. 사회적 이슈가 되긴 하지만, 간편히 수치화되어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수(자살 사망률)는 (중략) 전년보다 1.1명 더’ 는 정도로, 혹은 ‘OECD 평균의 5배가 넘는’ ‘60세 이상의 자살률’(337)에 묻히는 정도로 끝맺음 될 것 같은 사건들. 세연이라면 죽음 이후의 사건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아마 반은 성공이고 반은 실패? 아니면 ‘실명제’까지 신경 썼던 그녀는 이 모든 것들을 예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걸 세연에게 묻는다는 게 의미가 있을까? 정말로 세연은 죽음 이후에 무엇을 바랐던 걸까? 소설은 끊임없이 세연.. 더보기
킬미힐미와 닮은 듯 다른 <A씨에 관하여> (상) 솔직히 고백하겠다. 오랜만에 읽은 소설 치고는 꽤 괜찮았다. 그러나 걸작으로 꼽을 만큼 좋지도 않았다. 하지만 책을 쓴 저자의 나이는 열일곱. 소설을 쓸 당시 나이가 열여섯이란다. 도대체 뭘 하는 친구일까. 10년 전의 나는 책을 쓰기는커녕 읽지도 않았는데…. 갖은 생각을 뒤로 한 채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를 재차 곱씹는다. 는 치유의 이야기다. 소설은 크게 3가지 Chapter로 나뉜다.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고통 받는 한 소녀의 이야기인 ,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 무언가에 쫓기듯 열차에 올라야만 하는 한 남자가 등장하는 . 3가지 이야기는 독립적이면서 유기적이다. 모두 개별적인 사건이지만 동시에 A씨가 등장한다. A씨의 정체는 수수께끼다. 에필로그에서 그 정체는 드러나지만 독자들은 아리송할.. 더보기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 김학철, 그는 누구인가? 지난 3월 1일 방영된 SBS 스페셜을 보고 반가웠다. 김학철이었다. 지난해 과제를 이유로 마음에도 없던 두꺼운 책을 구입해 읽었던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당시 수업을 진행하던 강사 분은 “어쩌면 백범 김구보다도 더 여러분이 알아야 할 인물”이라고 강조했던 기억이 있다. 오랜만에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책이란 읽을수록 깊어지고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니까. 내게 은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도 기억해야만 하는 책이다. “우리 조선의용군은 일본이 투항하는 날까지 끊임없이 무장투쟁을 견지했습니다. (중략) 누구처럼 팔짱을 끼고 앉아서 남이 해방을 시켜줄 때만을 기다리지는 않았습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않았단 말입니다.” 김학철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몰랐던 채 책을 읽던 도중 이 부분을 읽으며 놀랄 .. 더보기
주진우가 소송을 맞이하는 자세 처음 책을 펼치게 된 동기는 ‘애국소년단’이 컸다. 우연히 들었던 방송은 2~3회가 넘어가자 활력소가 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시사IN의 주진우 기자가 누군지도 잘 몰랐다(어렴풋이 그가 우리 학교 국문과 선배라는 사실만 들었다). 무엇보다 그가 왜 소송전문기자인지도 알지 못했다(처음엔 법률전문기자인 줄 알았다). 그럼에도 책을 산 이유는 2가지였다. 첫 번째는 주진우 기자 개인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고, 두 번째는 혹시 모를 소송에 도움이 될 실용서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다(사실 첫째 이유가 더 컸던 것 같다). 무작정 책을 펼치고 읽어보니 처음 접하는 사실들이 많았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5촌 사건에 대해 무지했다. 언론사 입사 준비를 하면서도 그런 일에 대해 상세하게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신.. 더보기
나는 불안하다, 고로 존재한다. 알랭 드 보통 <불안>을 읽고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겨 우리 자신과 비교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질투할 사람도 늘어난다. (58쪽) 우리는 언제나 불안을 안고 산다. 그런데 이 불안감의 원인은 일차원적이지 않다. 나만 해도 불안을 느끼게 되는 상황이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선 나는 언론사 준비생 신분이다. 가고 싶은 언론사를 가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가능성이 불확실하다는 데 있다. 날고 기는 경쟁자들을 제쳐 두고 원하는 곳을 가면 좋겠지만 그런 언시생(언론사 시험 준비생)들이 대다수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서 나 역시 가고 싶은 언론사가 (있지만 사실상) 없다. 얼마 전 학교 언론사 준비반을 나왔다. 1년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각기 다른 개성의 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