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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Love>, 이토록 파괴적인 ‘사랑’ 제 17회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이자 재상영 중인 가스파 노에의 영화 . 겉으로 보이는 것들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는 2시간 30분 동안 반복되는 ‘포르노’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배경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도입부터 펼쳐지는 침묵의 정사가, 영화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적 필터링과 같은 가감 없이 거의 모든 걸 보여주는 는, 오히려 그 반복되는 외설 속에서 관객이 스스로 지쳐 중반부에는 그 모든 ‘야한’ 장면들에 감흥이 없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 횡횡한 모래폭풍 뒤에 남는 건 ‘사랑’이 가진 파괴성에 대한 상념과 같은, 보다 근원적인 ‘사랑’에 대한 물음이다. 영화로써 가 보여주는 플롯 그 자체는 기시감을 들게 하는 부분이 많다. 점점 자극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연인, 과거의.. 더보기
‘싱 스트리트’, 소년이 음악과 함께 성장하며 반짝인 그 찰나의 기록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따금 좋은 영화, 드라마를 보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안달이 날 때가 있다. 머릿속을 휘젓는 생각과 마음에 오고가는 감정들이 너무 많아 타자 속도로 그것을 따라갈 수 없는 그런 영화 말이다. 내게도 그런 영화가 몇 개 있다. ‘비포 선라이즈’, ‘어바웃 타임’, ‘그녀’(Her)가 떠오른다. 언뜻 비슷해 보이는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에 나는 주로 흔들렸다. 그리고 오늘, 그 기록에 남길 영화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싱 스트리트’. 1980년대 경제 위기에 빠진 아일랜드 더블린을 배경으로 고등학생 ‘코너’의 첫사랑과 성장, 음악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싱 스트리트는 음악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원스’, ‘비긴 어게인’의 존 카니 감독의 네 번째 작품이다. 비긴.. 더보기
<곡성>, '무엇'을 '믿을' 것인가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믿을’ 것인가? *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곡성(哭聲) : 슬피 우는 소리 1. 을 ‘봤다.’ 솔직히는, 무엇을 봤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인지조차 모르겠다. 분명 하나의 큰 흐름이 있지만, 그 플롯이 내가 ‘직접 본’ ‘플롯’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조차 불분명하다. 어디까지가 (영화속에서의)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 수많은 맥거핀들이 마치 잘린 손발처럼 나뒹구는 처참한 폐가 속에서, 그 누구도 주인공이라고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경찰 종구(곽도원 분)은 주인공이지만, 어쩌면 관객보다도 더 못한 처지에 놓인, 너비를 상상할 수 없는 연극 속에서 그 자신조차도 거대한 체스판 속에서 손쉽게 소모되는 폰처럼 하나의 맥거.. 더보기
<her> 그것=그녀와 그=그것 사이의 그것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이 영화는 전적으로 '그녀'에 대한 영화이다. 그녀란 OS, 즉 컴퓨터 운영체계이다. 'it'이자 'it'이 아닌 'her'. (알튀세 식으로) 이 두 '호명' 사이의 흔들리는 긴장관계가 영화의 서사 전체를 관통한다. 이 지점에서 눈여겨 본 장면이 있다. 남자와 여자(그것)의 자기고백=위로, 그리고 불가능하지만 기묘한 최초의 (성)관계. 영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이 씬은 컴퓨터 운영 체제(일 뿐)인 '그것'이 '그녀'가 되는(엄밀히는, 자기-인식하는) 거울의 방이자, 또한 '그'가 왜 '그것'이 아닌 '그'여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뿌얘진 밀실이다. '그'가 '그녀'에게 말한다. 나의 모든 감정들을 이미 모두 경험해버린 것 같다고. '그녀'는 '그'에게 말한다. '나의 모든 감.. 더보기
지금의, 비평은 무엇입니까? - 영화 <동주>에 부쳐 “선생님, 비평가란 무엇입니까?”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당돌한 질문에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답했다. “쓰레기죠. 비평가는 쓰레기입니다. 굉장히 위험한 쓰레기들이죠. 이들은 역사가 지나간 다음에 남아 있는 걸 뜯어먹고 사는 쓰레기들이죠.” 이 말을 비평이 사후적(事後的)이라는 의미라고 해석해도 괜찮다면, 나는 바르트의 저 대답에 반만 동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비평이란 무엇인가? 나쁘게 말하면, 비평이란 자기놀음이다. 문화라는 폐쇄적인 공간을 발판삼아 휘도는 원운동이랄까. 절대로 비평은 원의 가장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지독하게 말해, 비평은 비유컨대 문화라는 숙주에 기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문학 비평에 한정 지어 보자면, 비평이 아무리 문학이라.. 더보기
<아버지의 초상>, 아버지보다는 초상에 방점을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래의 제목은 La loi du marche(시장의 법칙), 영어 제목은 The Measure of a Man(인간의 척도)다.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도대체 감이 오지 않는 단어들이 붙었다. 특히 ‘아버지’라는 지극히 감성적인 단어는 , 으로 이어지는 한국 특유의 신파적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것이 아니었나 의심했다. 영화를 보면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은 도무지 이 제목으로 부를 수 없을 만큼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영화다. 주인공 티에리(뱅상 랭동 분)은 아버지다. 처음에 이 남자를 수식하기 위해 ‘아버지’라는 단어를 붙여 준 것 말고는 더 이상 그 역할을 강조할 필요가 없겠다. 영화의 내용은 다른 부분에 집중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인간의 초상을 다루고 있다. 즉,.. 더보기
<파리의 한국남자> 불편함에 대한 변명 프랑스 파리에서 행방불명된 아내를 찾아다니는 남자가 있다. 도대체 왜 그는 그녀를 찾아 헤매는 걸까? 가 던지는 질문이다. 부재는 곧 존재의 없음이므로, 다른 식으로 질문을 반복해볼 수 있다. 왜 그는 그녀와 사는가? 사랑해서? 계약한 관계니까? 도의적인 책임 때문에? 감성, 이성, 도덕. ‘납득’할만한 대답들이 주를 이룬다. 소위 ‘대중적’인 영화들도 마찬가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인물에게 감정이입하고, 눈물 흘린다. 하지만 는 이 모든 ‘상식’적인 대답에서부터 자유롭다. 달리 말하면, 불편하고 불쾌하다. 판타지와 현실을 넘나들고, 맥락의 끝마다 탈맥락적 과잉으로 치솟는다. 영화가 끝났는데 아무도 울지도, 웃지도, 심지어 욕을 하지도 않는다. 실소(失笑). 허탈한 웃음이 영화관 곳곳에서 터져 나.. 더보기
[바꼈스오피스] 2주차(1/11~1/17) * [바꼈스오피스]는 저희가 새로운 기준을 통해 제시하는 영화 순위입니다. 현행 박스오피스는 오로지 영화가 벌어들인 수익, 관객수 등 절대적인 수치를 기준으로 하여 순위를 매기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니까 [바꼈스오피스]는 일종의 ‘대안적 박스오피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새로운 기준에 맞춰 영화 순위를 다시 매긴 뒤 따로 코멘트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이 작업이 최대한 객관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기준이라는 것도 사실상 주관적인 가치 판단에서 벗어날 순 없을 텐데, 딱 거기까지를 주관적인 개입의 마지노선으로 삼으려 합니다. *** 현재 상영중인 모든 영화를 다 다루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불가피하게 ‘박스오피스’ 20위권 내에 있는 영화들만 다뤘습니.. 더보기
[바꼈스오피스] 1주차(1/4~1/10) * [바꼈스오피스]는 저희가 새로운 기준을 통해 제시하는 영화 순위입니다. 현행 박스오피스는 오로지 영화가 벌어들인 수익, 관객수 등 절대적인 수치를 기준으로 하여 순위를 매기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니까 [바꼈스오피스]는 일종의 ‘대안적 박스오피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새로운 기준에 맞춰 영화 순위를 다시 매긴 뒤 따로 코멘트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이 작업이 최대한 객관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기준이라는 것도 사실상 주관적인 가치 판단에서 벗어날 순 없을 텐데, 딱 거기까지를 주관적인 개입의 마지노선으로 삼으려 합니다. *** 현재 상영중인 모든 영화를 다 다루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불가피하게 ‘박스오피스’ 20위권 내에 있는 영화들만 다뤘습니.. 더보기
<이웃집에 신이 산다> 태초에 억압이 있었으니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태초에 억압이 있었다. 억압은 찰나에 모든 곳으로 퍼졌다. 억압은 무엇인가. 억압은 현상이다. 달리 말해, 시간과 그물의 불협화음이다. 그러므로 다시, 이렇게 시작해보자. 태초에 시간이 폭발했다. 광포한 시간은 뒤를 제외한(하지만 시간이 부재하는데 뒤란 게 있을 리 없다, 아무튼) 모든 곳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그 위로 그물이 깔렸다. 존재는 그물로 말미암아 태어났다. 촘촘히 짜인 그물은, 그러나 태초에 이미 짜여있었다. 그물에 대해 말하자면, 시작이 곧 끝이었다. 시간의 문이 열린 순간에 그물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물은 곧 존재였고, 존재는 그물로 하여금 존재할 수 있었다. 그물은 언어로서 가장 순수하게, 그리고 최초로 현현할 수 있었다. 끊어지지 않..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