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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주말이다 영화야

반복과 변주를 이해하는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먼저 고백부터. 나는 이 영화를 계기로 처음으로 홍상수를 만났다. 그래서 이전까지 몇몇 사람들이 홍상수 예찬론을 펴도 솔직히 공감하지 않았다.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이 말을 꺼내는 이유는 자칭 홍상수 팬을 자처하는 분들의 비판이 두려워서다. 그래도 홍상수 감독은 다양한 해석을 좋아한다 했으니 지극히 주관적으로 그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어차피 이렇게 밑밥을 깔아도 비판과 비난은 있을 수 있다. 모두 환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를 감상할 때 그렇듯 나 역시 제일 먼저 제목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라지만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본 뒤 처음 느낀 감정은 혼란이었다. 내게 있어 이 영화는 적어도 ‘지금’과 ‘그때’, .. 더보기
광인狂人을 이해하는 영화, <사도>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먼저 근황부터.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과거의 나였다면 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이 말을 도저히 견딜 수 없다. 참 있어 보이는 말이지만 결국은 동어반복에 기댄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이미 일어난 일은 수습을 해야 한다. 그게 고의든, 실수든,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 일과 관계된 사람에 대한 예의다. 소통이 되지 않는 것만큼 막막한 일도 없지만 어제부로 나는 카카오톡을 삭제했다. 삭제의 이유는 여럿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차라리 그게 더 속 편할 것 같아서다. 막상 노란 창이 사라지니 문득 불안해졌다. 하지만 곧이어 온전히 내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다분히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런 와중에 본 영화가 였.. 더보기
<침묵의 시선>이 <액트 오브 킬링>에 비해 아쉬운 까닭 별 시답잖은 얘기부터. 내 책장에 몇 권 꽂혀있는 들뢰즈나 푸코, 지젝 등을 본 뒤로 나를 포스트모더니즘에 경도된 ‘확신범’이라고 확신한 친구가 있었다. 언젠가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친구가 내게 사소한 실수를 했고, 속이 좁았‘던’ 나는 쉽게 화를 풀지 않았다. 몇 번이고 나를 달래던 그 친구는 마침내 그 특유의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진심으로 미안해. 진심이야.” ‘진심’이라는 단어 하나에 풀릴 속이었다면 진즉에 풀렸을 터. 그럼에도 잠자코 있던 내게 지쳤는지 그놈이 이어 내뱉은 말은 조롱에 가까웠다. “아, 맞네. 요새는 진심을 믿을 수 없는 시대지.” 진심을 믿지 못하는 시대. 그 비아냥은 나를 향하면서도, 사실상 나와 그 친구를 둘러싼 포스트모던, 혹은 포스트모더니스트.. 더보기
같음과 다름에 관한 영화, <뷰티 인사이드>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모든 사랑에는 과정이 있다. 처음 손을 마주잡을 때의 짜릿함과 첫 키스의 달콤함은 연인 간의 심리적 거리마저 허물어 버린다. 마치 원래부터 함께 했던 사람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달콤함 다음은 익숙함이다. 너무나 익숙해져 버려서 그 사람의 마음이 항상 나랑 같을 것이라 생각하고, 상대방의 사소한 신호는 으레 무시해버리는…. 그런 과정에서 연인들은 서로에게 실망하고 다투고, 심할 경우 이별하기도 한다. 개성 가득한 사랑 영화 는 전형적인 사랑 영화다. 하지만 동시에 기존의 멜로물과는 조금 다른 특색이 있다. 특이점은 소재에서 찾을 수 있다. 주인공 우진(김대명 등)은 자고 나면 몸이 변한다. 얼굴만 변하는 게 아니라 나이도, 성도, 국적도 변하기 때문에 더 혼란스럽다.. 더보기
<나의 어머니> 어머니가 남긴 것 마르게리타(마르게리타 부이)에게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 그건 그녀의 ‘리얼리티’인데, 달리 말해 영화감독인 그녀가 연출한 영화가 곧 그녀의 의도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 그녀에게 리얼리티는 현실보다 우선하기도 한다. 그녀의 영화에서 공장장 역을 맡은 배리(존 터투로)의 운전씬. 운전하는 척만 하면 되는 배리는 직선 도로를 달리는 상황인데도 핸들을 좌우로 흔든다. 그 꼴을 보지 못하는 마르게리타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배리에게 실제로 운전을 시킨 것. 하지만 앞 유리는 카메라 세 대로 가린 상태다. 앞이 보이지 않은 상태로 운전을 하면서 대사를 치는 게 가능할 리 없다. 마르게리타의 현실감각은 리얼리티 앞에서 눈 녹듯 사라진다. 그런 그녀의 어머니 아다(줄리아 라차리니)가 노쇠해, 죽음을 앞두고 있.. 더보기
놀랄 만한 공포를 주지는 못했던 <퇴마: 무녀굴> 겁이 많은 이유로 공포영화를 굳이 찾아보지 않는다. 무서운 영화를 보는 것 자체는 상관없지만 문제는 영화를 본 이후다. 하루 종일 찝찝한 기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가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공포영화를 돈 내고 볼 만큼 좋아하지는 않지만 공짜로도 보지 않을 만큼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엉겁결에 보게 된 영화가 이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분명 매력적이었다. 비록 원작 소설을 보지 못했지만 원혼에게서 벗어나려는 금주(유선 분)가 처한 비극적 굴레와 그를 치유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퇴마사인 진명(김성균)의 독특한 치유법은 관객들에게 서늘한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정신과 의사면서 동시에 무당의 아들인 진명이 지광(김혜성 분)을 영매로 삼아 환자를 치료하는 첫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예측 가능한 공.. 더보기
<베테랑> 조태오는 악마인가? (2007)와 (2010) 사이는 류승완에게 이를테면 단절의 시간이었다. 이에 대해 주성철은 류승완만의 ‘오리지널리티’를 향하는 과정이었다는 주석을 달기도 했는데, 당시 류승완은 직접 그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이제는 내 취향의 전시뿐만 아니라 시대적 정서나 환경, 그리고 타이밍에 대한 고려도 중요하다고 여긴다. 더불어 내적으로는 언제나 장인으로서의 명품을 만들고 싶다.” 문화예술계 이곳저곳에서 ‘표절’ 문제로 화끈 달아올라 있는 지금. ‘오리지널리티’를 운운하는 것이 망설여지는 건 차치하더라도, 그게 ‘오리지널리티’든 ‘짜깁기’든 ‘오마주’든 ‘패러디’든지 간에 어쨌든 류승완이 이후 (2012)과 (2015)을 통해 확실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는 건 사실이니까. 말하자면 그의 변화란 액션 혹은 코.. 더보기
<암살>, 오락물과 시대극의 만남이란 아니나 다를까, 에 대해서도 수많은 상업적 걱정과 염려가 앞섰다. 심지어 어떤 기사에서는 지금까지 ‘일제시대’를 다룬 영화들의 저조한 흥행실적을 일일이 나열하며, 최동훈의 ‘천만’ 기록에 혹여 누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물론 상업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 (2004), (2006), (2009), 그리고 (2012)의 최동훈과 시대극의 만남이 어떻게 펼쳐질지 좀처럼 가늠하기 어려운 점은 있었다. 굉장히 개성적인 캐릭터들, 자극적이고 흥미를 유발하는 이야기. 이를테면 지금까지 최동훈의 영화는 철저히 만화적 상상력에 기반을 둔 오락물에 가까웠다. 그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캐릭터와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와 그의 영화를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동훈은 오로지 캐릭터와 이야기만으로 영화를 유려하게.. 더보기
<우먼 인 골드> 죽은 자와 죽지 않은 자 사이는 얼마나 먼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1980년의 광주. 그곳에서 처참히 죽어간 이들과, 그들과 연대한 시민들, 믿을 수 없이 아름다웠던 광주의 코뮌, 그리고 그들에게 총구를 겨눈 이들. 그런 것들을. 당시의 분위기나 냄새, 함성, 총성은 물론 광주에 발 디딘 모든 이들의 표정조차 나는 가늠할 수 없다. 짐작할 순 있으나,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나는 왜 광주에서 죽지 않았는가?” 1980년 5월을 지낸 이들은 둘로 나뉜다. 죽은 자와 죽지 않은 자. 죽지 않은 자에게 삶이란 죄책감의 연속이었다. 죽지 않아 사는 삶. 80년 광주에서 죽지 않은 이유를 끊임없이 되물으며 사는 삶. 80년 5월이라는 시간과 광주라는 공간 밖의 모든 존재들에게 삶은 곧 죽지 않음이었다. 그리고 2015년 7.. 더보기
나를 만나는 시간, <인사이드 아웃>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캐치볼을 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때 부자간에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길이 없다. 다만 당시 다섯 살 꼬마의 표정만큼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것은 확실히 기쁨이었다. 난데없이 어울리지 않게 웬 감성팔이냐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소개할 영화가 감성과 연관이 깊어서다. 은 감정을 환기하는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나의 오랜 기억들이 영화 속 장면들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며 영화를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라일리는 11살 소녀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기쁨’, ‘슬픔’, ‘소심’, ‘까칠’, ‘버럭’의 다섯 가지 감정이 존재한다. 그들은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움직인다. 다섯 감정의 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