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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

[2016 KBS 드라마스페셜] #6 <동정 없는 세상> 올바른 ‘19금’ * 드라마 의 결말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서 말하는 ‘동정’의 의미는 이것이다. “이성과 한 번도 성교(性交)를 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지키고 있는 순결. 또는 그런 사람.” 그런 동정(童貞)이 없는 세상, 풀어 말하면 순결을 지키지 않는 세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가면 이 드라마는 굉장히 ‘야할 것’만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드라마는 전혀 외설적이지도, 야하지도 않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서 흠칫하게 하는 장면, 단어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시종일관 밝고 유쾌하게 수능이 끝난 고3 동정 아이들의 세계를 그렸다. 어쩌면 ‘아이 동’에 ‘곧을 정’자를 쓴 곧은 아이들(童貞)의 이야기를 그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등장하는 곧은 아이는 차준호.. 더보기
[푸디세이아] 4. 나는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채로 독일. 맥주. 혼자. 항상 마음속의 이상향을 그리며 어디론가 떠나려고 하지만 정작 몸이 묶여 있을 때가 많다. 대개는 금전적 문제였지만, 금전적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자 이제는 마음이 닿는 목적지가 없다. 답답할 때마다 내일로 티켓을 끊고 어디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일 없이 바삐 몸을 놀려 기어코 반도를 이리저리 헤집어 놓는 방식으로 여행을 가는 것 역시 채울 수 없는 방랑벽이 주는 헛헛함, 그 때문이다. 반도인(半島人)은 외롭다. 김연수가 말한 ‘국경’의 정의 아래의 나는 제대로 된 일탈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진정한 의미의 ‘여행’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후일담을 들어보니) 출장차 워싱턴과 멕시코와 쿠바로 떠나셨던 교수님이 시험을 한 주 빨리 보신 탓에 주.. 더보기
[2016 KBS 드라마스페셜] #5 <평양까지 이만원> 스스로에게 정직해지기 * 결말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양까지 2만원이면 된단다. 얼토당토 않는 이 주장은 금세 묻히고 만다. 사실 이야기의 화제는 다른 곳에 있다. 은 가톨릭 사제가 되는 것을 그만두고 대리운전 기사로 살던 한 남자가 다시 자신의 삶에 빛을 밝히는 이야기다. 사실상 제목과 관련된 장면은 드라마의 내용을 잇는 도구에 불과했다. 제목은 그저 보는 이의 시선을 다양한 곳에 분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드라마 소개에 적힌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신학생이던 박영정(한주완 분)은 사제가 되는 날, 자신이 신부와 외도한 여성 신도에게서 태어난 아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충격으로 사제되기를 그만두고 ‘평양까지 이만원’이라는 구호의 대리운전 .. 더보기
[2016 KBS 드라마스페셜] #4 <즐거운 나의 집> 사이보그, 괜찮을까. * 이 글에는 의 결말을 비롯한 주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사이보그(cyborg). cybernetic과 organism를 합친 단어인 사이보그는 개조인간을 의미한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수많은 첨단기술의 발달로 사이보그에 대한 관심이 다소 줄어든 요즘, 이를 둘러싼 생명윤리에 대한 물음을 던진 드라마가 등장했다. 은 사이보그 남편과 그를 만든 아내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하지만 한줄 설명만큼 드라마의 내용은 단순하지 않았다. 천재 과학자 윤세정(손여은 분)은 자신이 만든 사이보그 남편 강성민(이상엽 분)의 삶을 모두 주관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성민의 기억이 상당 부분 조작됐다. 이어 예전 성민의 여자친구 손지아(박하나 분)이 나타나면서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성.. 더보기
[푸디세이아] 3. 유진과 낙원 안국에서 낙원상가, 명동까지 이어지는 길은 묘한 분위기들이 서로 중첩돼 있는 공간이다. 자본주의 문명의 정점과 철 지난 과거 사이로 수많은 시간이 지나간다. 천도교 본당과 운현궁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대로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가면 그 어디서도 보기 힘든 풍경들이 펼쳐진다. 거리를 걷는 대부분의 이들이 노인들이다. 장기 두는 이들과 서예 글씨를 쓰는 사람들 주위로 수많은 노인들이 모인다. 노인들이 다른 연령층보다 월등히 많은, 이 다소 기이한 풍경은 어쩌면 내가 아는 낙원의 매우 작은 조각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 특수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낙원상가 주변은 주변의 비싼 물가를 감안해보면 상당히 저렴한 편. 송해 ‘선생님’이 자주 들린다는 2,000원 남짓 국밥집들이 좁은 골목길을 끼고 쪼르르 모여 앉아있다.. 더보기
<내추럴 디스오더>가 정상성을 해체하는 방식(下) 2. 양방통행길에서 일방통행하는 카메라 - 옙센의 시선 이제부터는 앞서 살핀, 영화의 밑바탕 위에서 감독이 영화에 개입하는 지점을 살펴보겠다. 사실상 옙센의 손을 거쳐 탄생한 ‘완성작’으로서 는 여러모로 전형적이다. 편집방식뿐만 아니라 기-승-전-결의 무난한 전개방식, 그리고 영화가 최종적으로 다다르는 지점(연극)의 포맷을 영화 전반에 덧씌우는 방식 등. 특히 옙센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가리키고 무너뜨리려는 과정에서 앞선 작품들이 취했던 방법론을 그대로 가져오는 우를 범한다. 야코브의 불편해보이는 걸음, 움직임 등을 담은 컷과 ‘정상인’들의 버퍼링 걸린 듯한 움직임을 접합하는 구성도 그렇고 야코브가 직접 사람들에게 ‘정상성’을 묻거나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가 이런.. 더보기
[3인의 현상범들] #번외 모(부)성 [호래.txt] 나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고양이는 나를 싫어한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만나 온 고양이는 그랬다. 후미진 골목이나 길가에서 마주친 고양이들은 모두 내게 관심이 없거나 나를 무서워했다. 집에서 고양이를 한 번도 길러본 적이 없는 나는 고양이를 만나면 어쩔 줄 몰라 했고 고양이들은 그런 내가 어색한지 나를 항상 피했다. 그런데 바로 어제, 편의점에 가려고 밖으로 나섰다가 복도에서 작고 귀여운 고양이를 발견했다. 그 고양이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지 내게 먼저 다가와 다리에 얼굴을 비비며 애처롭게 울었다. 나는 고양이가 배가 고파서 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른 집으로 뛰어 들어가 고양이한테 줄 만한 것을 찾았다. 하지만 나도 먹을 것을 사러 편의점에 가려던 참이라 고양이가 먹을 .. 더보기
<내추럴 디스오더>가 정상성을 해체하는 방식(上) 는 불도저같다. 뚜렷한 의도를 견지한 채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 간다. ‘정상이란 무엇인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등 정상성을 둘러싼 질문들이 영화 곳곳에서 은연중에 드러날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건 너무 고리타분한 게 아닌가. 문학·영화·미술·음악 등 비스무리한 주제의식을 담은 작품들은 이미 곳곳에 너무 많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에는 ‘이 영화가 아니면 성취해내지 못했을 지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 이토록 빛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응시-시선’의 뫼비우스띠적 구조와 야코브 노셀의 ‘非시선(시선의 불가능성)’ 속에서 드러나는 중층성 덕이다. 그러나 이는 달리 말하면 이런 ‘상찬’에 감독 크리스티안 쇤더비 옙센이 끼어들 지점은 거의 .. 더보기
[푸디세이아] 2. 필사의 계절, 따뜻한 빵이 건네는 위로 게으르고 머리 나쁜 이가 결과물에는 항상 마음이 쫓겨서 시험기간에는 으레 중세의 민머리 수도사들 마냥 뻘뻘거리며 필사를 한다. 눈이 글을 담지 못하니 손으로나마 우겨넣을 뿐이다. 불안한 만큼 꾹꾹 눌러 담느라 샤프심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항상 똑, 하고 부러져 책상 주변엔 그 잔상들이 항상 포연 뒤 빈 탄피마냥 가득하다. 조급한 마음이 터질 듯해서 바람을 쐬러 나갈 때면 팔뚝과 손가락 마디가 욱신거린다. 벌겋게 달아오른 손가락이 똑 마음을 닮았다. 항상 턱에 받쳐야 폭식하듯 하니 공부가 어느 정도 됐단 것을 깨닫는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되어버렸다. 백야와도 같은, 망각과 기억 사이의 불안이 오히려 안심할 수 있는 척도가 된 역설적 상황에 시험기간은 항상 서릿발 같다... 더보기
[2016 KBS 드라마스페셜] #3 <한여름의 꿈> 아름다운 ‘얼굴’의 발견 단막극은 보통 ‘하나의 막’을 가진 극을 의미한다. 한 편 내외로 끝나는 짧은 드라마를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을 보고나면 단막극에 대해 ‘단순한 극’이라는 별칭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악인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김희원이 순진한 시골 농부로 등장해 화제가 된 드라마 은 기대보다 단순했다. 미혼부 황만식(김희원 분)이 딸 예나(김보민 분)의 출생신고를 위해 ‘새 엄마’를 찾아 나서는 설정, 만식의 돈을 노리고 접근한 다방여자 장미희(김가은 분)가 그들과 함께 지내다 서로를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그려진 것이 전부였다. 귀여운 부녀 사이에 철저히 남이었던 한 여성이 들어와 한 가족으로 되어가는 과정은 이미 다른 드라마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소재다. 한 가지 예로 유오성이 미혼부 역할을 맡았던 역..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