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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푸디세이아

[푸디세이아] 12. 시장과 마지막 만둣국

명절이며 제사 때마다 시장을 간다. 이사를 온지는 채 오년도 되지 않건만, 시장만 따라 나온 것이 10번은 훌쩍 넘긴 것 같다. 많이는 안 산다고 하면서도 과일과 야채, 너무 커서 걱정인 밤, 썰어놓은 가래떡, 식혜, 제사용 과자 등등을 사고 나면 두 손 가득 짐을 들어도 다 못 들 때가 많다. 명절 때만 되면 온가족이 다 뛰쳐나와 고기를 파는 정육점에서 이번엔 찜갈비용 LA갈비를 3kg나 산 대신, 큼지막한 가오리나 먹음직스런 민어는 사지 않았다.

 

간소하게 본다고는 하지만 오가는 시간만 3시간 가까이 걸리는 길. 시장통에서 갓 튀겨내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어묵과 뻥튀기 등을 사서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나눠먹으며 느릿느릿 집으로 온다.

 

짐을 다 내리고 냉장고에 넣고 보니, 만두를 덜 가져온 것을 그제서야 깨닫는다. 이런.

 

 

놓고 온 만두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꼬불꼬불한 골목길에 이름도 간판도 없는 노점에서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 한 분이 번갈아가며 느릿느릿 빚고 있던 시절부터 떼를 써가며 그 얼마 안 되는 아이들을 빚어진 대로 전부 다 가져오기 시작했던 때부터 사오던 것들이다. 그 사이 노점은 잠시 사라져 가족 모두를 걱정하게 만들었다가 가게로 변해서 나타났다. 여전히 할머님은 온종일 만두를 빚고, 사람들은 오며가며 빚어지고 있는 만두만을 탐낸다. 막 빚어진 아이들은 채 마를 시간도 없이 검은 봉투 속으로 떠밀려가듯 사라진다.

 

만두를 좋아하는 우리집은 10개들이로 묶어놓은 얼려놓은 만두를 6개를 산 후 점심으로 만둣국을 먹고도 그렇게 식사 중에도 옆에서 한참 빚어지고 있는 만두들을 탐내 20개를 다시 주문해놓았는데, 하필이면 그 막 빚어놓은 귀한 만두를 놓고 온 셈이다.

 

아마도, 가지러 가게 되지 않을까. 이번이 마지막일 테니까.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아마도 다음 명절 때가 되면 그리워질 것이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지만, 아마 다시는 떠나지 않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도시를 떠난다. 눈에 익히고 귀로 듣고 몸으로 기억했던 도시에서의 삶과 영영 떠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간만에 정을 주었던 도시와의 기억 모두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이제 다시 몸을 일으켜 낯선 곳으로 가야만 한다. 그렇다고 다시 몸을 옮기는 그 곳 역시 정착지가 아니다. 삶은 다시 알 수 없는 미래로 향한다. 명절 때마다 으레 살 것이 당연시되던 만두를 이젠 살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온 것처럼 온전한 기억을 쌓을 수 없는 시간들이 다시 시작된다.

 

혼자 웅얼거리듯, 20년 후에 이 만둣국을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를 묻지만 대답을 들을 수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은 다시 침묵 속으로, 기억의 저편으로. 유목하듯 밀려가는 삶은 다시 그렇게, 다만 그럼에도 모든 인류가 살아있을 그 순간까지 반복될 명절처럼.

 

 

 

By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