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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3인의 현상범들

[3인의 현상범들] #7 위대한 허구





[호래.txt]


사진가는 창문을 찍을 수 없다.

만약 낮-실내에서 창문을 찍으면 창문 밖 풍경이 카메라에 담길 것이고, 사람들은 그 풍경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창문을 통과한 이미지라는 것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만약 창문에 찍힌 지문이라든지, 창문에 비친 형광등을 사진에 담아 이것이 창문을 통과한 이미지라는 것을 알아채게 만든다면 사람들은 직접 현장에 뛰어들지 않고 안전한 실내에서 사물을 담으려는 작가의 태도를 질책할 것이다.

반대로 밤-실내에서 창문을 찍으면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찍힐 것이고, 사람들은 이를 자화상이란 의미로 해석할 것이다. 그렇다면 불투명한 창문은 대안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불투명한 창문이란 그 자체로 창문이 아니다.

 

그렇다면 창문그 자체를 사진에 담고 싶은 작가는 무얼 해야 하나.



[학곰군.txt]


건조하기 짝이 없는 날이다. 이런 날에는 매트리스를 꺼내다가 일광건조해야 제격이다. 해가 이렇게 짱짱하니 되려 우울해진다. 누가 비가 오는 날이 센치해진다고 말했는가. 그놈 자식은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놈일 것이다. 필시.

  채드가 메이저에서 사라진 지 꽤 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그날도 태양은 온화하게도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와 인터뷰를 하기위해 커피숍에 앉아있었다. 평소에 친분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를 응원했다. 괴물 클레이튼 커쇼가 메이저리그에 튀어나오기 전, 그리고 녀석이 아직 애송이던 시절까지. 다저스의 1선발은 채드 빌링슬리였다. 팀의 최고 선발투수만이 차지할 수 있는 바로 그 자리에 말이다. 그러나 채드가 클레이튼 커쇼나 저스틴 벌렌더 하다못해 1선발도 아닌 제프 사마쟈나 릭 포셀로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건 순전히 임팩트 때문이다.

  채드의 투구폼은 안정적이다. 두꺼운 하체를 기반으로 한 흔들림 없는 밸런스는 그가 1회에 초구를 던질 때와 99구를 던질 때 동일한 투구메카니즘으로 스트라잌을 꼽을 수 있게 한다. 물론 노모 히데오나 팀 린스컴처럼 간지가 폭발하는 역동적인 투구폼에 비하면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못했으니 기억에 없는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차라리 못했으면 최다패 선수로 기억을 했을 것이다. 늘 10승에서 13승 사이. 방어율은 3점 중후반. 삼진도 적당히 세자리수. 그는 어떤 것도 1등인 적이 없었고 그렇다고 못하는 것도 없었다. 직구도 변화구도 적당히 잘 던졌다. 모든 적당히 잘했다. 그래서일까 적당한 연봉을 받고 적당히 팀에 필요한 선수였다.

  잘 보이지 않는 꾸준함. 난 그래서 채드가 좋았다. 편집장은 내가 채드 빌링슬리와 인터뷰를 하겠다고 보고 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그 망한(망할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렇게 들었다. 실제로 수술 후 재기하지 못했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선수를 인터뷰해봐야 조회수가 얼마나 나오겠냐! 딴 사람 섭외해!'

  그렇지만 나는 굽히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이 전부 카이클이나 클루버나 디그롬 같은 투수들만 인터뷰한다면 채드 같은 선수는 평생 인터뷰 할 일이 없을 것이라며 박박 우겼다. 그리고 덧붙였다. 채드도 한 때 1선발이었다고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보냈던 질문지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눴다. 질문의 순서, 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에 대해 약간의 조정을 했다. 그는 오히려 황송해 했다. 자기 같은 잊혀진 마이너투수에게 이런 인터뷰가 올 줄 몰랐다며. 그의 겸손함에 미소로 답했다. 

  나는 물었다. 자신 있느냐고. 물론 인터뷰를 잘할 수 있겠느냔 맥락에서였다. 그렇지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언제든지 미트에 스트라이크를 꼽을 수 있습니다. 마운드에서 조만간 증명해보이지요."

  인터뷰는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이보다 더 멋진 말이 있을까. 저 한 마디를 매거진 첫 페이지에 대문짝만하게 써붙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도 안다. 채드의 인터뷰는 기껏해야 클릭조차 하기 힘든 후미진 곳에 배치될 것임을. 그리고 그가 당분간은 콜업될 일이 없다는 것을. 오늘은 다저스와 자이언츠의 4연전 마지막 경기. 선발투수 커쇼대 범가너. 나는 말 없이 주인이 잘 가꿔놓은 카페 정원을 바라본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비참한 날이었다. 채드 빌링슬리는 던질 공이 없어 손으로 커피나 홀짝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같은 지구의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둥지를 옮겼다. 빨간 옷이 영 어울리지는 않았다.



[소르피자.txt]


매주 두 장의 사진을 보고 글을 쓰고 있다. 어떤 사진은 보자마자 글의 내용이 떠오를 때도 있지만 어떤 사진은 사진을 바보같이 10분도 넘게 쳐다보고 있어도 무엇을 써야 할지 딱히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 중에 하나인데, 바로 전 사진이었던 도라에몽에 관해 A4 네 장을 쓰고 나니 힘이 빠진 것도 있고, 연속된 자소서의 작성으로 인해 글쓰기에 대한 피로감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마주한 사진. 기본적으로 이 사진에 대해 직설적으로 말해본다면, 도시에 있는 작은 정원을 찍은 것 같다. 규모가 크지 않다, 라고 예상한 것은 멀지않은 배경에 건물들이 늘어서있고 정원 안에 나있는 길이 원형이기 때문이다. 저 정도의 곡률이라면 정원의 크기는 농구코트 하나쯤의 넓이가 될 것이다. 또 나무가 몇 그루 심어져 있는데 모두 줄기가 가늘다. 그렇다면 저것들은 은행나무나 단풍이 아닌 중규모의 꽃이 있는 나무인 것 같다. 예를 들면 벚꽃 같은? 사진 맨 왼쪽에는 초점이 흐려진 채 찍힌 버드나무 비슷한 것이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근처에 물가가 있다는 것이고, 그건 작은 연못이나 화장실일 수도 있다. 그때, 어떤 한 노인이 화장실에서 나온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한 손에는 십 년도 더 되어 보이는 알루미늄 지팡이를 들고 있다. 옷은 누렇게 변했지만 짙은 색깔이라 표가 나지 않는다. 그는 정원 벤치에 앉아 주위를 둘러본다. 그의 머리 위를 날고 있는 비둘기 몇 마리가 마치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휴, 하면서 주머니 속을 뒤적거린다. 주머니엔 꼬깃꼬깃 접어둔 천 원짜리 몇 장이 전부다. 천 원이면, 맥도날드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가을로 변해가는 2016년. 이젠 바람도 꽤 추워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이 부르르 떨린다. 지진이 난 것도 아닌데, 이제 늙어버린 자신의 몸을 보며 다시 한 숨을 내뱉는다. 아무래도 밖에 오래있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맥도날드에 들어가 커피를 한 잔 사마시기로 결정한다. 매장의 직원은 딱 손녀의 나이쯤 같다. 그가 손녀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건 손녀가 일곱 살 때다. 커피를 한 잔 받아, 창가 쪽에 자리를 잡는다. 할애비 냄새가 나는 걸까. 그는 주위사람들의 불쾌한 시선을 느꼈다. 커피도 쓰고, 지금 이 순간도 쓰다. 그는 티타임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아까 그의 주위를 맴돌던 비둘기들이 다시 앞에 나타났다. 다섯 마리의 비둘기가 그의 몸으로 달라붙는다. 그리고 머리, 두 팔, 두 다리를 하나씩 부리에 물고 저 세상의 비행을 시작한다. 



[현상소.jpg]




[벼.txt]


1.


  또 서울시립미술관입니다.


  죄송하지만 여러분은 속으셨습니다. (아니면 말구요.) 이 사진에서 선명한 모든 것은 허구, 가짜입니다. 사진 왼편, 가장 흐릿하고도 가까이 찍힌 나뭇가지만이 실제입니다. 뭔 말이냐 하면, 이 사진은 한 거울(만큼 대상의 이미지가 명확히 맺히는 건축물) 앞에서 찍은 겁니다. 흐리멍덩한 저 나무를 제외한 모든 것은 거울이 '왜곡'한 이미지들이죠. 허상이라는 말입니다. 


  선명한 허구와 흐릿한 현실. 재미나지 않습니까?


2.


  그런데 말이야, 너 그거 알아?

  어.

  그래? 이 세상 인간 놈들이 다 구라쟁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몰라.

  아깐 안다며.

  아깐 알았고.

  그럼 이건 어때. 이 세상 사람 중에 참말 하는 미친놈은 단 한 자식도 없다.

  알 듯 말 듯.

  그래도 이건 확실히 모를 거다. 모두가 구라쟁이라는 말이랑, 참말 하는 놈이 하나도 없다는 게 같은 말이 아니라는 거. 

  그래.

  나는 말이야 이런 생각이야. 이 세상이 구라쟁이들로만 이뤄졌다는 말은 정말 끔찍해. 왜냐면 그 새끼들은 나쁜 새끼들이니까. 그런데 이 세상에서 참말 하는 놈이 하나도 없다는 것도 이것만큼 끔찍한 걸까? 그렇지 않아. 참말도 끔찍하거든. 예를 들어 니가 나를 존나 패고 싶어. 그래서 니가 나한테, 나는 너를 존나리 패고 싶어, 라고 말한다고 해보자. 그건 참말이지?

  어, 그러네.

  응. 그러니까 구라쟁이 새끼들이나 참말 하는 미친놈들이나 이 사회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생물이라는 건 매한가지다 이 말이지. 어디 그뿐이냐. 이 놈들은 만났다 하면 서로 싸우기 바빠. 니가 틀리네, 내가 맞네 하면서 분탕질들 하고 앉아있다 이거야. 사회에 도움이 하나도 안 되는 놈들. 그래서 생각해봤지. 이 세상에 정말 필요한 건 아주, 지극히,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걸. 예를 들면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잠이 오면 잠을 자고, 일을 시키면 일을 하고, 누가 울면 눈물 닦아주고, 누가 웃으면 옆에 가서 같이 웃어주고, 섹스를 하고 싶으면 섹스를 하는 사람 말야. 그런데 이 세상은 그렇지 않지. 배가 고픈데도 있는 밥은 먹지도 않으면서 밥이 부족하다며 난리 치고, 잠이 오는데 잠 못 이루고, 일을 시켜도 일 안 하고, 누가 울면 비아냥대고, 웃는 사람한테 가서 손가락질하고, 섹스를 하고 싶어도 자위나 하고 앉아 있는 새끼들이 넘처나. 으... 생각만 해도 토 나온다. 이 사회가 이 모냥 이 꼴이 되어버린 건 다 이런 개노무샤키들 때문이야.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로만 구성된 사회가 있다면 그곳은 굉장히 평화로울 거야. 그야말로 영구평화. 루소인지 칸트인지 로크인지 또라이인지 구라쟁인지, 어? 뭐 그 중 하나가 말한 대로. 너를 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가 보기엔 너도 평범한 축에 속하는 거 같아. 마음에 들어. 아직 시간 좀 남았나.

  어. 좀 걸리네.

  그럼 니가 모를 만한 얘기 하나 더 해줄게. 어디 책에서 본 이야기야. 옛날에 프랑스에서 시위가 일었어. 아마 1960년댄가 70년대였을 거야. 뭐 시위대들은 “임금 올려라” 이런 피켓들 들고들 서 있었겠지. 당연히 정부는 경찰을 파견했어. 그러니까 시위대와 경찰 분대가 대치하는 상황까지 이른 거야. 말하자면 선과 악의 대결인 셈이지.

  누가 선이고 뭐가 악인데?

  야, 지금까지 뭘 들었냐. 그건 중요하지 않아. 어떤 새끼가 선이고 어떤 또라이가 악이든 둘 다 쎔쎔이라고. 니 맘대로 생각하면 돼. 어쨌든 점차 시위가 격렬해지고 경찰은 이를 강하게 제지하는 과정에서, 뭐 그 순서야 반대일 수 있지만 어쨌거나저쨌거나 폭력사태가 벌어졌어. 시위대는 경찰에게 돌멩이를 던지고 경찰은 시위대를 사분오열시켜 뿔뿔이 흩어진 시위자들을 쫓았지. 그중에서 한 흑인 여자 시위자를 뒤쫓는 백인 경찰이 있었어. 그런데 하필 그때 시위자의 신발이 벗겨져버렸지 뭐야. 여기서 퀴즈. 그걸 본 경찰은 어떻게 했을까?

  이때다, 하고 잡았겟지.

  아냐. 경찰은 그 신발을 주워다가 시위자한테 줬어. 그러고는 옆에서 도망가는 또 다른 시위자를 쫓아 냅다 내달렸지.

  사랑인가.

  미친놈. 문맥을 못 읽네. 자, 들어봐. 구라쟁이든 참말 하는 놈이든, 선이든 악이든 간에 만나면 쌈박질만 날 뿐이야. 그런데 그 폭력이 멎는 순간이 있다, 이거야. 그리고 그 모멘텀은 아주 지극히 평범한 줴스처만이 연출해낼 수 있어. 앞서 달리는 사람의 신발이 떨어졌다. 주워서 건네줘야겠다. 이런 아주 단순한 판단이 폭력을 멈출 수 있는 거란 말이지. 

  응. 알았어. 잘 들었다. 자, 이제 시간 됐어.

  잠깐만. 하나만 더. 2차 대전 때 독일군이랑 프랑스군인가 어딘가랑 전선에서 대치 중이었는데 그 날은 크리스마스였어. 12월 25일. 서로 들입다 총질하면서 한창 앉아있는데 어디선가 캐롤이 울리기 시작했어. 어떻게 됐게?

  몰라. 이제 진짜 시간 됐어. 뒤돌아.

  귀청 찢어질 듯 울리던 총소리, 대포소리가 한 번에 멎었어. 고작 캐롤 하나가 전투를 멈춘 거라고! 대단하지 않냐? 평범이란 말이야, 이렇게 대단한 거야.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바로 이 평범성에서 나온다고. 

  응. 이제 뒤돌아서 저리 가.

  잠깐, 잠깐. 이제 얘기는 다 끝났고, 부탁 하나만 하자. 너를 보는 것도 이제 마지막인데 그래도 이 끝을 이렇게 씁쓸하게 맺을 순 없어.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해줘. 너는 나를 절대 싫어하는 게 아니라고. 너는 나를 사랑하고 좋아할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라도 나와 함께 할 수 있다고 말이야. 진심을 담아 웃으면서. 부탁해.

  그래. 나는 네가 좋아. 널 너무 사랑해. 평생 함께하자. 진실, 아니 진심이야. (웃음)

  고마워. (웃음.) 


  씨발.


탕! 그리고 다시 탕! 탕! 탕! 탕!


* 마지막 문장은 카뮈의 <이방인>에서 가져왔습니다.


3.

    


4. 


그러나 라캉 이래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진리 그 자체는 허구의 구조 안에 있다. 진리의 과정은 또한 새로운 허구의 과정이다. 따라서 새롭고 위대한 허구를 찾는 것은 궁극적인 정치적 믿음을 갖는 가능성이다.


또는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허구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위대한 허구가 없다면 궁극적 믿음과 위대한 정치는 없을 것이다―아마도 고유명 없는 허구를 갖는 것이다.


-모두 알랭 바디우, <투사를 위한 철학> 중에서



5. 


촌장 : 얘야, 이리 떼는 처음부터 없었다. 없는 걸 좀 두려워한다는 것이 뭐가 그렇게 나쁘다는 거냐?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이리에게 물리지 않았단다. 마을은 늘 안전했어. 그리고 사람들은 이리 떼에 대항하기 위해서 단결했다. 그들은 질서를 만든 거야. 질서, 그게 뭔지 넌 알기나 하니? 모를 거야, 너는. 그건 마을을 지켜 주는 거란다. 물론 저 충직한 파수꾼에겐 미안해. 수천개의 쓸모 없는 덫들을 보살피고 양철북을 요란하게 두들겼다. 허나 말이다. 그의 일생이 그저 헛되다고만 할 순 없어. 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고귀하게 희생한 거야. 난 네가 이러한 것들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만약 네가 새벽에 보았다는 구름만을 고집한다면, 이런 것들은 모두 허사가 된다. 저 파수꾼은 늙도록 헛북이나 친 것이 되구, 마을의 질서는 무너져 버린다. 얘야, 넌 이렇게 모든 걸 헛되게 하고 싶진 않겠지?

- 이강백, <파수꾼> 중에서(강조는 인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