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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오래된 현재

[오래된 현재] #1 교보문고와 청계천 헌책방 거리

2016년 3월 11일, 서울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 8번 출구 부근 현대시티 아울렛에 대형서점 하나가 입점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브랜드 '교보문고'다. 방문객들에게 동대문은 주로 패션의 집결지로 여겨졌는데 서점이라니, 의외였다. 



깔끔하게 꾸며진 아울렛 한 편에 자리잡은 서점은 금세 성공했다. 오픈 첫 주말부터 방문객이 몰렸다. 하긴 동대문에는 꼭 옷가게만 들어가란 법은 없지. 책 읽을 곳이 많은 건 좋은 거니까. 


이야기를 넘기기 전에, 한 가지 더 의외의 사실이 있다. 교보문고가 입점하기 57년 전에 이미 동대문엔 책방 거리가 있었다. 교보문고와 1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는 곳이다. 이름하여 '청계천 헌책방 거리'. 이들을 만나기 전에 먼저, 교보문고의 매끄러움을 잠시 들여다보자. 

추위와 선선함이 애매하게 머무른 3월의 어느 평일 낮, 교보문고를 찾았다. 교보문고로 진입하기 전 가족, 연인들이 즐길 수 있는 월리 모형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라도 이곳을 찾는다면 오래 머무르고 싶을 것 같다. 

예상대로 교보문고는 깔끔했다. 한산한 분위기에 취해 곳곳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책을 종일 읽고 싶은 곳이었다. 이미 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활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눈길 끄는 책들이 잔뜩 전시되어있고, 깨끗하다 못해 매끈한 표지들의 향연을 보자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방문객들이 쉽게 책의 카테고리를 발견할 수 있게 감성적으로 풀어놓은 서가 소개도 인상적이었다. 

<그래도, 사랑>을 쓴 정현주 작가의 새 에세이, <거기, 우리가 있었다>가 눈에 들어왔다. 화제의 신작이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는 모습에 시선이 절로 간다. 6개월 가까이 지난 지금 저 자리에는 또다른 신작이 멀끔하게 띠지를 차려입고 빛나고 있겠지. 


어느 교보문고를 가도 흔히 만날 수 있는 매끄러운 광경을 뒤로 하고 난 1차선 도로를 건너 '거칠고 오래된' 거리를 찾았다. 이름에도 '헌'이 붙어있다. 22곳의 책방이 줄지어 있는 '청계천 헌책방 거리'다.  

몇 년 전 서울시에서 함께 진행한 간판 교체 사업을 통해 거리는 나름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멀리서도 이름들이 눈에 잘 들어왔다. 하지만 평일 낮 이곳의 거리는 역시 한산했다. 헌책들은 고시원 방 크기의 가게에 다 들어가지 못해 문밖으로 내놓아졌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도 우연히 지나는 해외 관광객 또는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헌책방 안에 자리 잡고 앉은 주인들도 행인들과 동년배로 보였다. 그들은 시선을 사방으로 옮기는 생소한 젊은이를 의심 반 기대 반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서점 밖에 놓인 책들은 태어나 처음보는 종류의 책들도 있었다. 일반 서점에서는 쉽사리 만나보기 힘든 그런 책들도 많았다. <고사성어 대백과> <풍수지리>와 같은 책들이 길가에서 또 다른 주인을 만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 서점은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책들이 따로 있었다. 한 책방은 기독교 관련 서적만을 취급했다. 어떤 곳은 외국잡지만을 모아놓기도 했다. 헌책방답게 손때가 잔뜩 묻은 나머지, 유물처럼 느껴지는 책들도 있었다. 가끔은 보물 같은 느낌을 주는 예쁜,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의 책들도 보였다. 매끈하게 진열되어 있던 교보문고의 책들과는 색다른 매력이다. 거칠고, 빛이 바랬고, 촌스럽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점들이 더 반가웠다. 

다행히도 헌책방 거리의 사장님들은 이곳에서 또다른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거대한 서점이 바로 옆에 들어와 걱정되지 않느냐는 우문에 오히려 그로인해 더 많은 고객이 헌책방 거리를 찾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현답을 남겼다. 새책과 헌책의 매력은 분명 다르다. 각각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다른 것이다.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는 한때 120곳의 서점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22곳으로 줄어들었다. 아흔여덟명의 사장님들은 떠났지만, 그들 역시 자신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힘을 내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곳에 남은 스물두명의 사장님들 역시 기운을 내며 계속 책을 팔고, 사고 있었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러할 것이다. 57년이 넘도록 매일을 충실히 살아온 것처럼 말이다. 


by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