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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사회

낮 기온 37도, 취업 기숙학원, 초4병…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는 걸까

서울 낮 기온이 37도란다. 욕지거리가 절로 나는 더위다.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너무 화가 나니 종종 예보를 틀리는 기상청을 탓한다.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그럼에도 이 사회는 각각의 상황에 맞게 굴러간다. 누군가는 전기세가 저렴해 에어컨이 빵빵한 회사로 급히 뛰어들고, 누군가는 야외에서 더위를 그대로 맞닥뜨리며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낸다. 이러나저러나 이들이 하는 말은 같을 것이다. “세상이 미쳤다. 이토록 더운 걸 보니…” 


물론 더위의 근본적인 원인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이를 만든 장본인 또한 우리다. 따지고 보면 원인은 우리에게 있다. 그러니 누구를 함부로 탓하기도 어렵다. 그저 해결책을 고심할 뿐. 



‘범인은 우리 자신이었다’로 밝혀진 지금의 더위처럼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도 모두 원인이 있다. 아무리 특수해 보이는 사례라 해도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원인이 보인다. 여기 2016년 8월의 이상(異常)한 더위만큼 이상한 일 두 가지가 있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흘러가게 될지 의문을 품게 하는 일들이다. 그 원인을 한 번 들여다보자. 


“아침 8시에 등원(登院)할 때 휴대폰을 제출하고, 밤 11시까지 학원이 정한 스케줄대로 공부한다. 규칙도 엄격하다. 이 학원 내부에는 '음주 적발 시 벌금 10만원과 학원 퇴출' '사랑 고백 시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벌금 10만원과 성공 시 둘 다 퇴출' 같은 벌금 목록이 붙어 있다. 이 학원에서는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친해지지 않도록 서로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번 원생' 식으로 번호로 부른다” 


위에서 제시한 문단은 22일 발행된 조선일보의 기사의 한 부분이다. 어떤 곳을 설명하는 것 같은가? 수능을 앞두고 각오를 다지는 재수학원의 이야기 같지 않은가? 


하지만 놀랍게도, 이 기사는 수능을 앞둔 n수생들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다. 기사 제목은 “[NOW] 연애하면 퇴출… 취준생들 '기숙학원' 간다” 취업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가는 기숙학원을 소개한 기사다. 


소개한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마치 전에 같은 부분을 읽은 기분이었다. 6~7년 전 대입이 전부였던 때, ‘재수학원은 이런 곳’이라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 기사를 찾다 그런 내용을 본 것 같았다. 그만큼 과거의 기숙학원을 다룬 내용과 2016년 마주한 취업 기숙학원의 내용은 다르지 않았다. 유일하게 달라진 건 그곳에 들어가는 사람이 재수생에서 취업준비생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번엔 반대로 가보자. 앞서 소개한 기사는 10대 후반->20대 초중반으로 연령대가 바뀐 이야기라면 이번에는 10대 중반->10대 초반으로 연령대가 내려간 이야기다. 


최근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선 "'중2병(사춘기가 오는 중학교 2학년 무렵 공격성이 높아져 주변과 갈등을 겪는 현상)'이 아니라 '초4병'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중략) 초등학생 학부모들이 많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아이가 어느 순간 자신의 휴대폰을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거나 민감하게 반응하면 초4병을 의심해 봐야 한다' '자녀에게 어떤 말이 성희롱·언어 폭력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미리 알려줘야 한다'같은 '초4병 대처법'이 공유되고 있다.


위에 기사는 어떤가. 역시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 몇 년 전만해도 인터넷에는 ‘중2병’이 유행했다. 이제는 ‘초4병’이란다. 이번 기사도 조선일보가 지난 8월18일에 송고한 내용이다.


기자는 초4병이라는 신조어가 될 근거로 학교 폭력 피해 실태 조사 결과를 들었다. 올해 교육부의 조사에 따르면 학교 폭력을 경험했다는 학생 3만8700명 중 68%인 2만6400명이 초등학생이란다. 피해 초등학생들 중에서도 4학년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게다가 폭력을 경험한 비율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충분히 초등학교 4학년을 특정지어 우려를 제기한 점이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이들을 ‘병’으로 단정 지은 건 섣부른 언어 선택으로 느껴진다. 


어찌됐든 신문은 세태를 반영한다. 몇몇 기사들을 토대로 볼 때(조선일보를 비롯해 몇몇 언론들은 지난 5월 ‘대2병’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냈다) 2016년의 대한민국은 지금 병들어 있다. 초등학교 4학년도, 중학교 2학년도, 대학교 2학년도 병들었다. 취업준비생은 공무원 준비와 약학대학·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제약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병들어가는 사회를 소개하는 기사를 읽다 보면 자괴감에 빠진다. 이제까지는 대입을 해내기 위해 재수생들이 산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기숙학원에 들어갔다. 그것도 거액의 비용을 지불하고 말이다. 그런 재수생들이 대입에 성공하고 나름 즐겁게 학교를 다녔다. 아니 즐겁게 다녔는지도 잘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취업난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을 테니까. 


그래도 한 번 고생했으니 좋은 날이 올 법도 한데, 왠지 그때의 재수생들이 그대로 취업 기숙학원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취업 기숙학원 기사는 기숙학원에 전전하는 20대의 삶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하는 듯 했다. 재수학원-취업 기숙학원까지 나왔으니, 이제 다음은 뭘까? 사내 기숙학원-노년 대비 기숙학원까지 등장하려나?


중2병의 모습이 초등학생들에게까지 넘어갔다는 기사도 마찬가지다. 과거 중2병은 모든 인생의 선배들이 겪어온 사춘기를 비틀어 부르는 정도의 단어였다. 이제는 성장이 빨라져서인지, 미디어 습득 나이가 어려져서인지 몰라도 중2병에서 나타날 법한 일들이 초4들에게 일어난다는 주장이 일어났다. 생물학적으로 성장 단계가 변해 사춘기가 일찍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드는 의문은 이런 문제되는 상황들이 초등학교 4학년 연령대에서 그치고 말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으로 사춘기 시작 나이가 어려졌다고 한들, 중학교 2학년들의 삶이 과거와 달라졌을지 확신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문제 상황이 많이 발생하는 연령대가 옮겨지는 것이 아니라 확대되는 것이 아니냐하는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다. 


초4병 기사를 읽고 나서는 머잖아 ‘유치병’이라는 단어를 기사에서 쓰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일었다. 방금 쓴 문장이 정말 나의 ‘쓰레기’ 같은 생각이었길 바라는 마음이다. 


스스로의 자유를 제약하기까지 어려움에 빠진 청춘들, 스스로의 자유를 주체 못해 방종하게 된 어린이들. 대한민국 사회는 점점 극단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글의 서두에서 분명히 이면을 보고 원인을 밝히겠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원인을 명쾌히 찾아내지 못했다. 너무나도 많은 요소들이 이 사회를 꼬아버렸다. 다만 실마리처럼 보이는 것은 많은 요소들이 ‘구조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점이다. 


이제는 더 이상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구조적인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힘을 맞대어 고민하길 바란다고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 더불어 이 문제의 중심에 서있는 이들 또한 혼자서만 이겨내려 하지 말고 정말, 정말로 연대할 곳을 찾아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 두 명만 모여도 좋다. 혼자보다는 두 명이 강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전한다는 것에 자괴감이 들지만 나 자신이 하는 다짐으로라도 글을 남기려 한다. 나는 더 이상 ‘연애하면 퇴출’인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 


by 건 


사진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