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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사랑이란 이름의 콩깍지와 끝. 그리고 <내 여친은 지식인 3부>

 

<내 여친은 지식인> 시리즈의 대망의 피날레. 미국 유학을 가는 것에 마냥 심란해하던 공대남 김문하는 여자친구 인문녀 임채영의 집 앞에서 혼자 5도짜리 과일소주를 마시며 기다린다. 한참을 심란해하는 문하 앞에 나타난 것은 전 여자 친구였던 4살 누나인 선배. 오랜만에 본 그는 직장인이 돼 있었고, 헤어질 때만 해도 세상이 무너지고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문하는 그 이별 후에도 자신이 생각보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그가 떠나고 그 장면을 지켜보던 채영과 문하는 살짝 티격태격. 하지만 주요한 갈등은 여전히 채영의 미국 유학 문제다. 문하는 다시 한 번 채영을 잡고, 그런 채영은 마음 속으로 흔들리면서도 단호하게 미국에 갈 의사를 밝힌다.


 

결국 소원 들어주기라는 다소 뻔한 연애 드라마적 전개를 보여주는 커플. 첫 번째 소원으로채영은 문하의 집에 가지만 내일까지 내야 하는 리포트는 넘을 수 없는 굳건한 벽이 되어준다. 이게 뭐냐고 칭얼대며 문하와 달래는 채영의 대화는 곧 그들의 예전 데이트들에 대한 회상으로 이어진다. 뭔가 현실적으로 기억하는 채영과 달리, 모든 기억들을 이상적이고 환상적인 것으로 바꿔서 기억하는 문하. 그 괴리감이 주는 기이한 느낌을 안고 문하는 인문학 스터디로 향한다.

 

그 어느 때보다 이질적이고 극적인 느낌이 나는 스터디 현장에서는 콩깍지 같은 사랑, 아토포스와 인간의 욕망이론 등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설명들이 이어진다. 1화에 나왔던 롤랑 바르트가 다시 등장하고, “인간은 말해지는 것”이란 대사와 함께 라깡의 이론이 전면에 부각되기도 한다. 이는 문하에 의해 시뮬라크르 등 전 회에 나왔던 개념들과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 대놓고 어렵게 설명한 이론을 문하를 통해 다시 설명해달라고 함으로써 비유의 차원으로 내려오기도 한다. 그렇게 스터디 구성원들은 사랑을 무의식의 차원이어서 일종의 질병일지도 모른다는 말로 설명하기도, 사랑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의 차원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주이상스라는 개념을 통해 사랑을 죽고 싶을 만큼의 충동이 일어나게 하는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철학은 사랑을 말하지만 그 모든 말들은 사실상 사랑을 부정하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의 의지로 떨쳐낼 수 있는 굴레가 아님을 동시에 설명하면서 말이다.

 

어정쩡하게 끝난 스터디 후 다시 만난 문하와 채영은 대화를 나누고, 결국 헤어진다. 여전히 서로 사랑하지만, 헤어지는 것이다. 문하는 말한다. 너를 이해하기 위해 그렇게 3번 정도 나간 스터디의 말들을 자신은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사랑해서 하지 않았던 것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일들로 바뀌었다. 그렇게 채영을 이해하지 못해 이해하려 했던 문하는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이해의 차원에서 채영을 위해 이별을 택했다.

 

무언가 어정쩡하게 마무리 된 느낌이지만, 사람의 삶이란 그렇게 인문학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 결국 <내 여친은 지식인>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적인 사랑도, 연극같은 인문학도 결국은 온전하고 완벽한 이해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차원에서, 우리 스스로 선택할 때 그것은 우리의 것이 된다. 남는 아쉬움과 그리움은 계속되는 현실에서 사소한 습관으로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여친은 지식인> 시리즈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새로운 시도였기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도 분명 있었다. 예컨대 어색하게 오글거리는 느낌은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적응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3회라는 짧은 극 안에 현대 철학의 개념이 다 녹아 들어가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란 느낌을 받았다. 연애의 끝에 대한 설명 같은 스토리라인 역시 뭔가 불친절하단 생각을 영 지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내 여친은 지식인>은 그 괴리와 어색함을 딛고 인문학과 철학이 남의 얘기가 아닌 바로 너와 나, 우리의 얘기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는 계속된다고 말이다.

 

여전히 인문학 스터디를 하고, 머리 스타일은 바꿨지만 채영과 만날 때의 습관이 남아있던 문하에게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그 전화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시청했던 우리로선 발신인을 알 수 없는 그 전화처럼, 인문학도 그렇게 우리에게 전화를 건다. 그 모든 대답을 우리의 상상에 맡긴 채.

 

By. 9.

 

* 사진 출처 : PD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