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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사회

편의점에서 '건강한 삼시세끼', 직접 도전해봤다

지난해 EBS 교양프로그램 ‘하나뿐인 지구’는 편의점 음식에 대한 실험 하나를 했다. 4명의 지원자를 받아 5일간 편의점 음식만 자유롭게 먹게 했다. 실험 결과 3명의 건강이 심하게 악화했다. 원래 채소 중심의 식단을 챙겼던 1명만 나빠지지 않았다. 육류 중심의 자극적인 도시락이 문제였다는 걸 확인한 제작진은 한 편의점 브랜드와 함께 ‘건강 도시락’을 기획했다.

올해 편의점 도시락의 화두는 ‘건강’이다. 간편함, 저렴함, 그리고 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날로 상승하고 있다. 편의점 도시락의 시장규모는 2014년 이후 해마다 1000억원 이상 늘어나는 중이다.

 

하지만 편의점 도시락에 대한 신뢰도는 여전히 높지 않다. 시장조사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33.5%만이 “도시락 제품을 믿고 먹을 수 있다”고 답했다. 10명 중 8명(79.2%)이 “바쁜 현대인에게 도시락은 꼭 필요하다”고 답한 것과 상반된다. 바빠서 어쩔 수 없이 편의점 도시락을 먹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건강하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지난 6월, 이틀간 주요 편의점 브랜드(△CU △GS25 △세븐일레븐 △미니스톱)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구매해 총 6끼를 먹었다.

◇ 삶은 달걀, 샐러드 등 가벼운 아침...모닝 두부 등 메뉴 다양해
평소 아침식사로 빵과 커피를 주로 먹었던 나는 이틀간 삶은 달걀 2알, 과일야채샐러드 음료, 옥수수 샐러드 등 새로운 제품을 시도했다. 이밖에도 편의점에는 아침 메뉴로 모닝 두부, 샌드위치 등이 제공되고 있었다.

 

음료까지 포함한 식사비용은 평균 3000원대였고, 열량은 200kcal 내외였다. 다만 달걀 2알의 경우 콜레스테롤이 264.8mg으로 성인 하루 권장 섭취량(300mg)의 88%를 차지했다. 샐러드 음료의 당도 16g으로 하루 권장 섭취량(50g)의 30%를 넘는 수준이었다.  

 

◇ 맛·가격이 기대 이상이었던 편의점 도시락...영양·공급 면에서는 한계
대부분의 편의점에서는 화제가 된 건강 도시락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주로 육류 중심의 도시락이 배치돼 있었다. 건강 도시락을 대신해 먹었던 '두부조림 도시락'(사진 왼쪽 위)과 '7첩반상'(사진 왼쪽 아래)에서는 짠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먹을 때는 맛있게 먹었지만 식후 입안에 짠 기운이 한참 맴돌았다.

 

반면 몇 군데의 편의점을 돌아다닌 끝에 발견한 건강 도시락의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육류 반찬이 따로 없었던 '전주비빔밥'(사진 왼쪽 중간)과 건강을 앞세운 '닭가슴살 도시락'(사진 오른쪽)은 좀 더 편안하게 먹을 수 있었다. 특히 닭가슴살 도시락에는 닭가슴살에 양념이 곁들여져 있어 퍽퍽하지 않았다.

 

4개 도시락 가격 모두 4000원 이하로 저렴한 편이었다. 하지만 영양성분 표시 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GS25의 닭가슴살 도시락은 유일하게 열량뿐 아니라 단백질, 지방, 나트륨 등의 영양성분을 표시했다. 세븐일레븐의 두부조림 도시락에는 열량만 표기되어 있었다. 나머지 도시락에는 열량조차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건강 도시락의 경우 구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닭가슴살 도시락의 경우 1인 가구가 밀집된 오피스텔 근처 편의점에서만 찾을 수 있었다.

편의점 음식 리뷰로 올리는 글마다 10만명이 넘는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파란별윤정' 에디터도 "온라인에서 이슈가 된 제품을 체험하기 위해 편의점을 찾았을 때 헛걸음한 적이 많았다"며 "항상 제품을 찾기 위해 5~10군데 이상의 편의점을 돌아다녔다"고 밝혔다.

 

cf) 이 글은 이전에 써두었다가 공개하지 못한 기획이었다. 분량 제한으로 인해 이틀 동안 있었던 일을 더욱 깊게 다루지는 못했다. 혼자서 밥을 먹으며 편의점에 앉아 식사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뜯어보고, 일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살아가느라 이곳을 찾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제 편의점 도시락은 인기를 넘어 보편화되었다. 나 역시도 혼자 식사하기 애매한 상황에 놓이면 편의점 도시락을 찾곤 한다. 그러나 건강한 삼시세끼를 기대한 것에 비해 내 속은 도시락을 건강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도시락을 이틀 간 먹으면서 엄마, 또는 누군가 따뜻한 손길을 담아 넣은 밥이 그리웠다. 나는 아직 세련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가기에는 조금 느린 것 같다. 이 글을 위해 여러 대화에 응해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다.

 

사진 출처 : 직접 촬영

 

by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