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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정치

북핵 해법, 급회전으로는 각이 나오지 않는다

설 연휴 간 날아간 인공위성(?)으로 인해 수면 아래서 부글부글 끓고 있던 한반도가 다시 분주해졌다. 각국 정상들 간 긴급한 전화 통화가 이어지고 그동안 줄곧 부인돼오던 사드(THAAD) 배치 논의가 활발해진 데 이어, 한국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라는 극단적 조치들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그 와중에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차가 발생하면서, 북핵 문제 관련 6자회담 구성원들 사이의 반목도 심화될 징조를 보이고 있다. 미사일 한 방에 그동안 쌓여있던 잠재된 모순들이 마치 활화산처럼 폭발하고 있다. 그 와중에 개성공단 폐쇄라는 유탄을 맞은 개성공단기업협회만 망연자실한 상태다. ‘그 놈의 미사일’ 때문에 한반도를 넘어 온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결국 이번 인공위성 사태 역시 북핵 문제의 큰 연장선상 아래 있다. 북이 이번에 쏘아올린 인공위성 기술은 탑재물을 핵탄두로 바꾸는 순간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로 변한다는 점 이 모두의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란 핵 문제가 어느 정도 타결이 돼가면서 해법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던 북핵 문제의 해결은 더욱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됐다. 이제 핵 문제는 일본을 넘어 미국까지도 발등의 불이 되었다. 북핵 문제의 늪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문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들의 모임 격인 전(前) 6자회담 구성원들 사이에서 이견을 넘어 갈등의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사드의 배치를 협의하겠다고 한미 양국이 발표하자마자 중국 당국은 김장수 중국대사를 초치하는 등 강력 반발했다.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체 기술이 러시아의 도움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국정원에 발표에 러시아 정부는 우리 정부에 증거를 제시하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한국의 조치들에 대해 미국과 일본이 지속적인 지지를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반목은 한미일과 북중러 양극간의 대립으로 심화될 가능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자랑이었던 균형외교 정책 전체가 완벽한 실패로 귀결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 역시 복잡해졌다. 급작스런 개성공단 폐쇄 조치는 한국 사회 내 갈등 요소로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당장 여당과 두 야당의 의견 차이부터 극명하다. 124개에 달하는 개성공단기업협회 역시 정부의 조치에 당혹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파견되어 있는 인력과 완제품, 기자재 등의 귀환 문제 역시 발표 후 대책 마련의 방향으로 진행되는 중이다. 북한에 1000여억 원에 이르는 자금 수단을 끊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는 설명이지만, 하루가 지날수록 개성공단과 관련된 피해 예상 규모는 1조원에서 5조원에 이르기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정부의 강수들이 비록 정부 당국의 절박한 심정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그 실효성이 떨어지는데 있다. 사드 배치의 경우 북핵 문제 해법의 하나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당장 한반도에 떨어질 핵 미사일을 방어하는 것에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결국 사드의 궁극적 방어 대상은 일본, 더 나아가 미국을 향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사드 배치를 강행할 경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중국은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 대비 차원이라는 이름 아래 중국 역시 미국의 감시망 영역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사드 배치의 초점이 결국 중국을 향해있다고 생각하는 중국 당국의 입장에서는 사드 배치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조치다. 사드 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우리 당국의 입장은, 중국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중국과의 외교적 관계가 악화될 것은 명약관화다. 자칫 잘못하면 미중 양국 간의 갈등의 전면에 강제로 끌려갈 수밖에 없게 될지도 모른다.

 

개성공단 폐쇄에 따른 실제적인 북한 경제 제재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 역시 한계다. 현재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개성공단 폐쇄 뿐이다. 남북 관계의 경색 이후로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점차 잃어가던 상황에서 공단 폐쇄 결정은 그 최후의 보루까지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장 북한이 몽니를 부려 개성공단 내의 한국 체류 인원들과 재산 등을 억류하는 상황이 빚어져도, 지금 상황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더욱 강력한 조치조차 없는 것이 현 실정이다.

 

북한 핵 도발에 맞서 우리가 할 수 있던 강력 조치가 대북 확성기 조치 확대였고, 그마저도 북한의 ‘대 확성기 방어 전략’에 의해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 공단 폐쇄의 타당성과 경제적 손실에 대한 대책 마련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감행된 최후의 수단마저 미미한 효과만 남긴 채 끝나버리게 되면, 이후 북한의 도발에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향후의 남북 관계 개선과 경협에 대한 우려를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불과 몇 년 전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통일 대박론”이 한국 사회에 대두됐고 최대의 업적으로 중국과의 “균형 외교”가 제시돼왔었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지금의 상황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처는 그 모든 업적들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는, 사이드등도 제대로 키지 못한 채 핸들만 급작스럽게 돌리는 급회전에 불과하다. 우방국이라고 여겨지는 미국과 일본의 지지만으로는 현재 한국이 처한 북핵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북한의 예상 행보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 극약 처방만을 반복할 경우 사건의 전개가 어떠한 식으로 흘러가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도, 책임질 수도 없다. 전쟁도 불사하자라는 말을 분노한 국민이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국가의 유일한 방침이 되어선 곤란하다.

 

“잃어버린 10년”을 얘기하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가 대북 휴민트를 상실했기에 지금과 같은 문제들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 말대로 휴민트마저 상실한 상황에서 대북 협상을 위한 최소한의 신뢰의 교두보까지 끊어버리게 된다면, 남북 문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잃어버린 20년, 아니 100년이 될 지도 모르는 것이다.

 

감정적으로는 통일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할 수 있지만, 현 상황에서 한반도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미래 산업을 결국 통일 이후에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위험한 인식이다. 설사 통일까지 염두에 두지 않는 다해도, 대북리스크를 지금과 같이 안고 있는 상황에서의 국제 경쟁력은 제한적이다. 최악의 경우는, 전쟁이란 극단적 상황 속에서 국가의 기반마저 흔들릴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의 미래는 북한과의 관계의 영향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중국 러시아와 대립각까지 세워가면서까지 하는 압박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더 큰 위협에 대한 대응책은 어떻게 찾을 것인가. 단순히 미국에 의지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일련의 정책들이, 과연 언제까지 파괴력을 가질 수 있을까.

 

북한의 돌발적인 행동들에 끌려갈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강 대 강 전략으로만 맞서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정책 기조가 되어선 안 된다. 북한의 믿는 구석이 결국 구 공산권 국가들,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에 있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전략들은 오히려 문제 해결에 있어 꼭 필요한 중국과의 관계만 악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북 압박은 결국 중국의 적극적 협조가 이어질 때 실효성을 거둘 수 있고, 그러한 협조의 기반은 결국 중국 러시아 등과의 신뢰 관계 형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현재 우리 정부의 행보는, 그러한 최소한의 상식조차 남아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개성공단 역시 마찬가지다.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 경협 사업들이 안정성을 가지고 점차 확대되어 나갈 때, 통일은 물론 이번 사태와 같은 북한의 극단적 행동들에도 실제적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영향력이 생긴다. 북한의 절대적 약점이 결국 경제력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북한 경제에 한국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의 폭이 넓어질수록 한국의 정치적 억제력 또한 강해지기 마련이다. 당장의 개성공단 폐쇄를 통해 우리가 북한을 압박할 수는 있지만, 개성공단 상실 이후로는 북한과의 협상력은 지금보다도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신뢰 관계는 유지해야, 향후 북한에 대한 남한의 경제적 영향력을 키울 여지가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궁극적 방법이 결국 경제에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북핵 문제의 해결은 운전과 같다. 급하다고 해서 급회전을 거듭한다고 한들, 문제 해법의 ‘각’이 나오진 않는다. 오히려 사고의 가능성만 커질 뿐이다. 북한에 대한 적극적 제재를 위한 ‘하드 파워’적 정책을 취하더라도 그 이면에서는 동시에 ‘소프트파워’적인 정책들이 동시에 이뤄지는 ‘투 트랙(Two-Track)' 정책이 필수적이다. 한미일이라는 기존의 파트너십에 만 기댈 것이 아니라 중국, 러시아의 협조를 구하기 위한 보다 기민한 균형적 대응 방안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 그것만이 강대국들 사이의 이해관계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는 한국의 국제 사회에 대한 영향력과 힘을 키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감정적 대응에 휩싸여 허둥지둥한 초보운전자의 모습 대신, 보다 냉철하고 영리한 한국 정부의 노련한 운전을 보고 싶다.  

 

by 9.

 

* 사진 출처 : YTN,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