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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지극히 주관적인

지극히 주관적인 2016년 1월 개봉 기대작 세 편

이 글을 보는 여러분, 2015년 힘들었던 일은 다 털어버리고, 2016년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빕니다!

영화도 많이 보시길. 저는 당장 오늘 조조로 영화 보러 갑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많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헤이트풀 8> - 1월 7일 개봉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산장. 각기 다른 이유 길 위를 떠돌던 ‘증오의 8명’이 모인다. 레드 락 타운으로 죄수(제니퍼 제이슨 리)를 이송해가던 교수형 집행인(커트 러셀), 현상금 사냥꾼(사무엘 L. 잭슨)과 보안관(월튼 고긴스), 그리고 먼저 산장에 와있던 연합군 장교(브루스 던), 이방인(데미안 비쉬어), 리틀맨(팀 로스), 카우보이(마이클 매드슨). 만만치 않은 8명이 모인 산장이 잠잠할 리 없다. 독살 사건이 발생한 뒤, 산장의 밤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깊어 가는데...

 

지극히 주관적인 관람 포인트)

 

1. 8/10, 끝을 앞둔 모든 건 소중하다.

 

끝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아쉽다. 쓸데없는 감상이라도 어쩔 수 없다. 치고 박고 싸우던 정적(政敵)마저도 연극의 끝, 커튼콜에서는 서로 손잡지 않던가. 쿠엔틴 타란티노가 10번째 영화를 마지막으로 은퇴한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다. <헤이트풀 8>은 그의 8번째 영화가 될 것이다. 이제 두 편이 남은 셈이다.

 

솔직히 그의 영화들이 나의 취향을 저격하거나, 나를 황홀에 빠지게 한 건 아니었다. 다만 영화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강한 개성은 그 자체로 ‘쿠엔틴 타란티노 표’ 영화의 존재이유였다. ‘무심한 경외’랄까. 이를테면 노벨상을 탄 물리학자에 대해 나는 별다른 관심을 갖진 않지만, 어쨌건 그는 이 세상의 빛이자 소금인 건 분명한 것처럼 말이다.

 

괜스레 그의 전작들을 죽 돌려봤다. 때론 그의 스타일에 거듭 경탄을 하기도, 때론 미처 알지 못했던 그의 표식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7편의 영화는 많으면 많다고 할 수 있지만, 3편만을 앞둔 7편이란 그렇게 짧을 수 없다. <헤이트풀 8>을 보고 나면 2편이 남는다. 2시간 30분이 넘는 러닝타임이지만,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 까닭이다. 아쉬움과 소중함. 어찌 기대작으로 꼽지 않을 수 있을까.

 

2. 혼란통에서 혼란함 제거하기

 

사실상 8명이 주연이다. 조연이 없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조연은 말 그대로 주인공의 옆에서 보조적 역할을 한다. 초점이 명확히 주인공으로 쏠린다. 한두 명의 주연과 여럿의 조연으로 인물이 배정된다면, 영화는 질서정연하고 명료해진다.

 

주연이 자그마치 8명이나 되면, 불가피하게 초점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거기다 8명이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개성을 내뿜는다면, 더더욱. 여기서는 감독의 뛰어난 재능이 요구된다. 큰지막한 물건들을 여행가방에 넣을 때, 어떤 순서나 방식으로 넣느냐에 따라서 가방 지퍼를 잠글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갈리는 것처럼.

 

더구나 <헤이트풀 8>의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른다. 달리 말해, 시간이 ‘현재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로’와 같은 식으로 왔다 갔다 하지 않고, 그대로 쭉 흐른다. 8명이 주인이며, 거기다 한 장소에 ‘갇혀서’ 진행되는 영화에서 이러한 방식을 택한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영화는 말 그대로 ‘감독의 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쇼트들은 감독의 자의적이며, 결정적인 선택의 결과가 된다.

반대의 경우와 대비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를테면 주연과 조연이 나오는 신이 있다고 해보자. 조연은 ‘감히’ 주연의 위치를 넘보지 않는다. 여기서 쇼트의 분할은 생각보다 ‘구조적’이며, 감독의 권한이 미칠 여지가 많지 않다. B를 죽이려는 A가 있다면, 조연은 그것에 반대하거나 동조할 것이다. 주고받는 것만큼 명료한 구조도 없다.

 

반면에, 주연 8명이 나오는 씬에서 쇼트의 분할은 전적으로 감독의 권한이다. 이를테면, B를 죽이려는 A, C를 죽이려는 B, D를 죽이려는 F 등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주연들 중 누구를 카메라에 담을 것인가 하는 고려는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일 수밖에 없다. 만약 시간의 흐름을 비선형적으로 하거나, 공간을 나눈다면 감독의 고민은 줄어들 것이다. 같은 시간에 진행된 여러 주연의 모습을 (시간의 역행을 통해) 보여줄 수 있거나, 다른 공간에 있는 주연들을 병렬적으로 나열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쿠엔틴 타란티노는 쉬운 길을 두 번이나 거부한 셈이다. 그럼에도 우려보다 기대가 큰 건, 정말이지 쿠엔틴 타란티노만의 성취 때문이리라.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 1월 14일 개봉

 

부상당한 자신을 땅에 묻고, 아들을 죽인 동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복수는 무엇일까.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레버넌트>)는 19세기 아메리카 대륙, 사냥꾼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실화에 기반한다. 회색곰에게 습격 당해 사지가 찢긴 휴 글래스. 비정한 동료 존 피츠 제럴드(톰 하디)는 아들 호크를 죽이고, 휴를 땅에 묻는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휴는 존의 뒤를 쫓기 시작하는데...

 

지극히 주관적인 관람 포인트)

 

1. 복수는 얼마나 처절할까?

 

기묘하게도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떠오른다. 두 편인데, 이유는 다르다. 일단, <복수는 나의 것>(2002). 이 영화가 떠오른 건 두 가지 점에서다. 일차적으로 ‘복수’를 다뤘기 때문이며, 복수의 행위가 지독히도 끔찍하고 잔인했기 때문이다. 과연 <레버넌트>가 <복수는 나의 것>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복수극을 다룰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더구나 휴 글래스는 ‘죽음에서 돌아온 자’이지 않은가. 죽음도 두렵지 않은 이의 복수를 어떻게 형상화했을까? 그 들끓음을 우리 관객이 느낄 수 있다면 성공일 것이다.

 

다른 한 편의 영화는 <올드보이>(2003)이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다 복수를 소재로 하고 있긴 하지만, 이 영화를 고른 건 그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올드보이>는 2013년에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 되었다. 감독은 무려 스파이크 리. 하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이 해프닝은 결코 명망 높은 감독이라고 해도 어떤 영화든 다 성공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비록 오래전이지만, 정성일의 말에 따르면 단 하나의 실패작도 남기지 않은 감독은 단 한 명뿐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비록 작년에 본 영화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선뜻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전작, <버드맨>(2014)를 지목하겠지만, 그 이유 하나만으로 <레버넌트>가 훌륭한 영화일 것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그런데 <레버넌트>에 대한 프리뷰들이 심상치 않다. 이거, <버드맨>과 상황이 유사하다. 기대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2. 영상미, 그리고 엠마누엘 루베즈키

 

거기다 이번에도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감독이라니. <그래비티>(알폰소 쿠아론, 2013)에 이어 <버드맨>으로 아카데미에서 연속으로 촬영상을 거머쥔 그가 <레버넌트>에 참여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번엔 ‘특히’ 영상미에 신경을 썼단다. 영화 촬영 전, 이냐리투와 루베즈키가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는데,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요동친다.

 

1. 영화 속 시간의 흐름대로 촬영할 것
2. 인공조명은 사용하지 않을 것
3. <버드맨>처럼 하나로 매끄럽게 연결된 롱샷에 도전할 것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설레발이라도 괜찮다. <레버넌트>로 이냐리투는 2015년에 이어 2016년에도 최고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 될 수 있을까.  

 

 

<쿠미코, 더 트레저 헌터> - 1월 14일 개봉

 

인구 3,500만명이 살아가는 대도시 도쿄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쿠미코. 어느 날 그녀는 동굴 속에서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발견한다. 그 이름하야, <파고>(조엘 코엔, 1996). 영화에서 눈밭에 묻히는 돈가방을 보고, 쿠미코는 법인카드를 훔쳐 미국을 향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람 포인트)

 

메타영화, 그 자체로도 매력적인

 

<쿠미코, 더 트레저 헌터>(<쿠미코>)에는 매력적인 요소들이 많이 있다. 현실과 판타지의 만남, 일본과 미국의 만남, 독특한 캐릭터 등. 그중에서도 코엔 형제의 영화 <파고>의 역할이 그렇다. <파고>는 영화 속 영화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쿠미코>의 서사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미에서 <쿠미코>는 영화에 대한 메타적 위치에 있다. <파고>라는 영화와 상호작용을 하는 영화인 것이다. 영화팬으로서 이런 설정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영화에 대해 말하는 영화에는, 어느 정도 영화광으로서 영화감독의 애정이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화찍는 영화광. 그들의 속내를 듣는 게 그리 흔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by 벼

 

*사진출처: 다음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