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세이/여행

BIFF 여행 프롤로그

짧지만 긴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별밤은 오늘부터 시작되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들릅니다. 2박 3일의 일정으로 계획된 이번 부산여행은 사실 다분히 의도적(?)입니다. 여행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것, 둘째는 여유를 되찾는 것입니다. 어차피 이 글은 프롤로그인 만큼 불필요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각자의 바람을 담아봤습니다.

-2013년, 2년 전의 여름 끝이 기억난다. 제대를 앞둔 나는 영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BIFF 자원봉사자 모집에 도전했었다. 군인의 신분으로 말이다. 패기 하나로 도전한 자원봉사자 지원은 서류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다. 나름 면접을 예상해 휴가도 맞춰 나왔는데….

 

2015년 10월 1일, 2년이 지나 20주년을 맞은 BIFF를 향해 떠난다. 여행으로 가는 첫 부산이다. BIFF는 여전히 나를 불러주지 않았지만 예매하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다행히도!). 나는 블로거라는 이름을 달고, 취재라는 명분을 가지고 이번 일정을 준비했다. 

 

설레는 2박3일이 될 것 같다. 뛰어난 영화들을 모두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지만, 4편의 영화가 내게 알찬 영감과 흥분을 안겨줄 거라 믿는다. 총 10시간의 긴 새마을호와 버스의 여정도 아직은 젊은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10월의 첫 날, 해운대에서 맞이하게 될 영화의 밤을 기대해본다.

 

- 올해는 부산국제영화제가 20회를 맞는 기념비적인 해이다. 20년 동안 바쁘게 산 것도 아니면서 시월에 부산에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도 후회는 잠깐, 설렘은 가득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아 최대한 많은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사정상 삼 일만 머물게 됐다. 네 편의 영화를 추렸는데, 깐느에서 그랑프리를 탔던 <디판>(자크 오디아르) 한 편을 제외하곤 공교롭게도 중화권과 긴밀한 영화들이다.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와 허우샤오시엔의 <섭은낭>은 중화권 감독이 중화권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들이고, <지아장커:펜양에서 온 사나이>는 브라질 감독 월터 살레스가 지아장커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각 작품들에 대한 기대치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대상에 대한 다양한 시각차 또한 충만한 경험이 되리라 기대해본다.

 

락 - 내게 9월은 여러모로 잔인한 달이었다. 믿었던 사람이 등을 돌리기도 했고, 큰 기대를 했던 건 아니지만 꿈을 이루는 과정의 끝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맛보기도 했다. 솔직히 그래서 힘들었다. 그런데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지내보니 다 부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관계든 일이든 꿈이든 어느 것 하나 내 맘대로 되는 건 없었다. 어쩌면 내 멋대로 일이 잘 풀리기만 한다면 세상은 참 따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먹기도, 씻기도 불편한 곳에 가기 싫거니와 평소 걱정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행을 가기로 결심한 데에는 친구들의 역할이 컸다. 아마 혼자였다면 나는 분명 여행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이번 여행도 있었다.

 

처음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여행을 통해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다는 건 내 헛된 희망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불쾌하고 지루한 기억으로만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그래서 더 기대된다. 뭔가를 얻기 위해 가는 여행은 조금 밋밋하고 심심하다. 그것은 긴 인생에서 오직 좋은 추억만 남기려는 오만한 태도와 다를 게 없다. 내게 이번 여행은 뚜렷한 목표도 이정표도 없다. 좌충우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여행이라 더 기대되고 짜릿할 것 같다. 그저 영화를 보러갈 뿐이고 거기서 새로운 경험을 얻을 뿐이다. 그거면 됐다.

이제 10월의 첫날입니다. 부산은 더 추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간간이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부산국제영화제의 면면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별밤의 첫 여행기, 이제 시작합니다.

 

사진 출처: BI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