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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미디어

미간만 찌푸리게 만든 성인잡지 표지

9월호 <맥심 코리아> 표지를 보고 불쾌해졌다. 모델로 나온 배우 김병옥의 모습이 악독해 보여서가 아니라 트렁크에 실린 여성의 하체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뇌리에 남은 건 김병옥이 아니라 트렁크에 실린 여성의 다리였다. 표지의 중심은 분명 김병옥인데 여성의 다리에 존재감이 희미해져버린 기막힌 상황이다.

좀 더 거칠게 말해서 표지에는 김병옥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는 온데간데없고 그냥 전형적인 성범죄자의 얼굴만 상징적으로 남아 있다. 김병옥으로서도 별로 달갑지 않을 표지임이 분명하다. 그는 수많은 악당을 연기했을 뿐이지 실제 악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대체 <맥심>은 무슨 생각으로 저런 표지를 전면에 내세울 생각을 했던 걸까.

 

성범죄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자 <맥심>의 이영비 편집장은 전문을 통해 해명했다. 그는 “화보 전체의 맥락을 보면 아시겠지만 살인, 사체유기의 흉악범죄를 느와르 영화적으로 연출한 것은 맞으나 성범죄적 요소는 화보 어디에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화보 전체를 보지 않았지만 만약 다른 화보들도 표지와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면 ‘성범죄적 요소가 없다’는 말은 동의하기 어렵다.

있는 그대로 사진을 보자. 트렁크는 사람을 태우는 공간이 아니라 짐을 싣는 공간이다. 그런데 그 안에 여자가 들어가 있다. 여기까지는 그냥 넘어간다고 치자. 신발을 벗은 채 두 발이 청 테이프로 묶여있는 여자의 다리가 의미하는 맥락은 무엇인가? 그것이 납치인지, 시체유기인지 디테일은 알 수 없고 궁금하지도 않지만, 표지를 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흉악범죄 또는 성범죄를 연상하게 된다.

 

화보 위로는 ‘THE REAL BAD GUY’라는 키워드를 교묘하게 배치시켰다. 사진은 누가 봐도 범죄자의 모습인데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나쁜 남자’란다. 편집장의 말대로 “범죄의 한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면 카피 역시 좀 더 범죄의 의미가 강하게 드러나는 ‘CRIMINAL’이 적당하지 않았을까? ‘나쁜 남자’는 악당으로도 해석되지만 한국에서는 ‘착한 남자’와 구별되는 남성의 매력이 함축된 단어이기도 하다.

 

<맥심>이 범죄자와 ‘나쁜 남자’를 구분하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걸 역으로 이용했다고 보는 게 더 맞다. 자극적인 것은 분명 필요하지만 이번엔 너무 나갔다. 무엇보다 해당 화보가 극적인 효과를 위한 연출이었다 하더라도 ‘잡지의 표지인데 뭐 어때?’라는 식의 발뺌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잡지의 대표얼굴이기 때문에 표지를 선정할 때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맥심은 그런 세밀함을 간과했다.

 

해당 잡지가 여성을 비하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 논란은 그보다 더 심각한 차원의 문제다.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잡지에 여성을 트렁크에 납치한 남성이 멋진 ‘나쁜 남자’처럼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인은 차치하더라도 청소년들의 성 인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까 걱정이다. 사진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간을 찌푸렸다는데, 도대체 <맥심>은 이런 표지를 왜 채택했는지 의문이다. <맥심>의 기발함은 응원하지만 도가 지나친 기발함은 기괴함과 같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by 락

 

*사진 출처: <맥심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