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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주말이다 영화야

<우먼 인 골드> 죽은 자와 죽지 않은 자 사이는 얼마나 먼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1980년의 광주. 그곳에서 처참히 죽어간 이들과, 그들과 연대한 시민들, 믿을 수 없이 아름다웠던 광주의 코뮌, 그리고 그들에게 총구를 겨눈 이들. 그런 것들을. 당시의 분위기나 냄새, 함성, 총성은 물론 광주에 발 디딘 모든 이들의 표정조차 나는 가늠할 수 없다.

짐작할 순 있으나,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나는 왜 광주에서 죽지 않았는가?” 1980년 5월을 지낸 이들은 둘로 나뉜다. 죽은 자와 죽지 않은 자. 죽지 않은 자에게 삶이란 죄책감의 연속이었다. 죽지 않아 사는 삶. 80년 광주에서 죽지 않은 이유를 끊임없이 되물으며 사는 삶. 80년 5월이라는 시간과 광주라는 공간 밖의 모든 존재들에게 삶은 곧 죽지 않음이었다.

 

그리고 2015년 7월의 내가 있다. 솔직히 나는 80년, 그리고 광주에 아무것도 빚진 게 없다. 88올림픽 다음 해에 태어났으니 말이다. 내게 80년의 광주는 멀어 아득하다. 미안하지만, 내게 80년의 광주는 8월 15일만 되면 어딘지 모르게 음울해지곤 하는 아버지의 멜랑꼴리이며, <박하사탕>(이창동, 1999)에서 ‘돌아’가지 못해 죽음을 택하는 설경구의 표정일 뿐이다. 80년의 광주를 대하는 나의 표정은, 그리고 우울은 그만큼 80년의 광주에서 요원하다. 그만큼 나의 눈물은 언제나 아버지의 눈물보다 늦되다.

 

1. 살아남은 이에게 과거란 얼마나 요원한가

 

그러니까 과거를 돌아보는 존재들은 세 유형으로 나뉜다. 당시 그곳을 직접 경험한 이들, 그리고 같은 시점에 그곳에 없던 이들, 그리고 당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들. 하지만 첫 번째 존재와 두세 번째 존재 사이의 심연은 얼마나 깊은가. 죽어간 자들과 살아남은 자들(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 + 죽음 이후 태어난 자들) 사이의 화해는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의 숙원사업이었다.

 

지금껏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80년 광주를 소환해왔다. ‘87년 체제’라는 허울 아래서 정치가 제대로 풀지 못한 그네들의 한을 달래기 위해 문학은, 미술은, 음악은, 또 영화가 할애한 시간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억울함에 이승을 떠도는 귀신을 위한 위령제와 맞닿아 있다. 그게 어디 80년의 광주뿐이랴. 예술이란 ‘죽음에 저항하는 유일한 것’이라는 앙드레 말로의 말이 맞다면 모든 예술은 죽음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먼 인 골드>에서도 죽은 자들을 소환한다. 나치의 만행에 의해 죽은 유태인들. 하지만 그 방식은 <쉰들러 리스트>(스티븐 스필버그, 1993)나 <인생은 아름다워>(로베르토 베니니, 1997) 혹은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 2002)와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마크 허먼, 2008)과는 전혀 다르다. 앞서 유대인의 죽음을 다룬 영화들은 위에서 구분한 첫 번째 존재와 두 번째 존재, 즉 죽은 자들과 살아남은 자들 사이의 화해를 추구했다. 죽은 자들의 분노와 억울함을 위로하는 자리였다.

 

<우먼 인 골드>는 다르다. 영화는 두 번째 존재와 세 번째 존재, 그러니까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과, 죽음 이후 태어난 존재들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마리아 알트만(헬렌 미렌 분)과 랜드 쇤베르크(라이언 레이놀즈 분)은 각각의 유형을 대표한다.

 

마리아는 나치의 학살에서 도망쳐 살아남은 존재다. 그녀는 나치 치하의 오스트리아에 부모님을 남기고 남편과 함께 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녀는 나치에 의해 죽지 않은 존재다. 랜드는 또 어떤가. 그와 마리아는 먼 친척 관계다. 그에게 홀로코스트로 대변되는 과거란 ‘존재했었’을 어떤 시간일 따름이다. 그가 처음 등장하는 시퀀스를 살펴보자. 변변치 않은 변호사였던 그는 대형 로펌 면접을 보러 간다. 면접 자리에서 로펌 회장이 랜드의 과거를 묻는다. 그의 할아버지는 ‘무조성’ 작곡가로 유명한 쇤베르크였고, 아버지는 저명한 판사였다. 하지만 랜드는 그 질문에 가볍게 답한 뒤 자기를 어필하는데 급급하다. 즉, 그에게는 현재와 미래만이 중요하다.

 

그런 둘이 만난다. 마리아는 나치에서 몰수한 클림트의 그림을 되찾기 위해 변호사가 필요했고, 랜드는 1억 달러가 넘는 그림의 가치 때문에 마리아의 변호를 시작한다. 물론 마리아는 그런 랜드를 탐탁지 않아 한다. 그녀에게 랜드는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에 불과하다.

 

마리아와 랜드가 클림트의 그림이 있는 오스트리아에 도착한 시점부터 플래시백이 끊임없이 삽입된다. 그리고 그 씬 앞뒤에는 어김없이 마리아가 있다. 사실상 오스트리아에서 마리아의 시선은 곧 과거를 향한 시선이다. 이를테면 오스트리아는 그녀에게 과거의 장소이자 흔적일 따름이다. 랜드의 심경 변화는 전적으로 마리아에 대한 시선과 연결된다. 마리아의 말, 표정을 담은 쇼트 이후에 랜드의 표정 변화는 두드러진다.       

 

2. 살아남은 자들 사이의 교점 – 마리아는 왜 점점 과거에서 멀어지려 하는가

 

그러나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심연에 비해,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와 죽음 이후 태어난 자 사이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다. 말하자면 그건 시간문제다. 영화는 이런 지점을 정확히 짚는다. 오스트리아에서의 환수 실패 이후 마리아와 랜드의 관계는 역전된다. 과거를 살려내고자 했던 마리아는 과거는 과거로 묻으려 하고, 반대로 과거는 과거일 뿐이었던 랜드는 모든 걸 포기하면서까지 과거를 되찾는데 힘을 쏟는다. 이 영화의 핵심은 바로 이 역전의 순간에 있다.

 

그 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치의 만행과 마리아의 문화재 환수 운동 사이의 위화감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마리아는 나치의 만행과 자기 가족의 죽음을 내세우며 클림트의 그림을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말 나치의 만행이 마리아가 클림트의 그림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의 근거로 충분한가. 예컨대 마리아와 나치는 식민지 조선과 일본의 관계와 동일선상에 있는가. 그렇지 않다. 마리아와 나치 사이는 멀다. 그리고 그건 정확히 죽은 자와 죽지 않은 자 사이의 거리와 같다.

 

마리아에게 나치 치하의 오스트리아란 분노와 동시에 죄책감을 상기시킨다. 처음은 분노였다. 오스트리아로 가기 전, 그리고 가고난 후까지 그녀에게 오스트리아는 분노의 대상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이후 본격적으로 삽입되는 플래시백은 그런 그녀의 행보를 거스른다. 위에서 말했듯 플래시백은 마리아의 회상이다.

 

그런데 플래시백, 그러니까 마리아의 기억 속 오스트리아는 어떤가.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의 유럽과 비교해보자. 플래시백에서 그나마 잔인한 것은 길바닥 낙서를 지우는 유대인을 둘러싸고 비웃는 이들의 표정뿐이다. 그러니까 <우먼 인 골드>는 결코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했던 진정한 폭력을 형상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형상화하지 않은 것이라기 보단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 도망친 마리아의 기억에 그런 장면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혹, 그녀는 살아남은 죄책감에 죽은 자들을 애써 지운 것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녀에게 분노란 죄책감 앞에 약한 불씨일 따름이다. 오스트리아에서 LA로 돌아간 이후 갑자기 환수에 소극적인 태도로 변한 것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이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중재 회의에 그녀는 가지 않으려 한다. ‘더 이상 모욕 받고 싶지 않다’며. 결국 중재 회의에는 랜드 혼자 참여한다.

 

그런데 중재 회의에서 랜드가 막 연설을 시작한 순간 먼발치에 마리아가 나타난다. 뒷 자석에 앉은 그녀는 옆 사람에게 말한다. “지금까지는 나를 위해 해왔지만, 지금은 랜드를 위해 왔다.” 하지만 이 말이 내게는 달리 들린다. “지금까지는 나를 위해 해왔지만, 지금은 나를 벗어났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과 나치 사이의 거리감을 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꼭 그만큼 그녀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을 자신을 깨달은 이후에 말이다. 

 

 

*사진출처: 다음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