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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주말이다 영화야

나를 만나는 시간, <인사이드 아웃>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캐치볼을 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때 부자간에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길이 없다. 다만 당시 다섯 살 꼬마의 표정만큼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것은 확실히 기쁨이었다.

 난데없이 어울리지 않게 웬 감성팔이냐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소개할 영화가 감성과 연관이 깊어서다. <인사이드 아웃>은 감정을 환기하는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나의 오랜 기억들이 영화 속 장면들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며 영화를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라일리는 11살 소녀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기쁨’, ‘슬픔’, ‘소심’, ‘까칠’, ‘버럭’의 다섯 가지 감정이 존재한다. 그들은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움직인다. 다섯 감정의 움직임에 따라 라일리의 핵심기억이 만들어지며 기억저장소에 보관된다. 핵심기억들은 제각각 성격의 섬으로 보내져 개인의 성격을 구축한다. 사람의 감정변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유쾌하게 풀어낸 픽사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잊고 지낸 나의 사춘기

 

10대 라일리의 경험과 감정은 보편적이었기 때문에 쉬이 공감할 수 있었고, 자연스레 잊고 지냈던(잊으려 했던) 기억들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특히 라일리가 정든 미네소타를 떠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겪는 낯섬과 두려움은 어릴 적 낯선 동네로 이사 경험이 한번이라도 있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감정이었다.

 

‘기쁨’과 ‘슬픔’이 사라져버린 상태, 다시 말해 ‘소심’과 ‘까칠’, 그리고 ‘버럭’ 내지르는 분노만 남아 있는 난감한 상황이 라일리에게 찾아온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자연스레 나의 사춘기를 떠올렸다. 지나치게 소심하고, 이유 없이 까칠하며, 한번 화가 나면 도무지 참아내지 못했던 반항의 시기. 어렴풋이 떠오르는 사춘기의 이미지를 영화는 선명하게 풀어냈다. 나의 사춘기 역시 영화에도 표현되었듯 기쁨도 슬픔도 없던 시기였다.

 

라일리가 부모에게 반항할 때의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반항심 가득했던 사춘기의 모습을 라일리를 매개로 환기할 수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주목한 건 라일리를 바라보는 라일리 부모의 시선이었다. 특히 세심하게 아이의 상태를 살피는 라일리 엄마의 모습이 눈에 두드러졌고 자연스레 나는 나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내 부끄러워졌다.

 

디테일이 힘이다

 

사실 사람의 마음을 다섯 가지 감정으로 나누고 그들에 의해 인물의 성격과 기분이 결정된다는 설정은 무척 흥미롭지만 동시에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겉과 속을 모두 다 보여주는 방식은 좋지만 자칫 잘못하면 둘 다 어정쩡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의 가능성은 지루함이다. 사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의 감정 상태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뻔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결코 지루하지 않았고, 나는 그것이 영화를 제작한 이들이 인간심리에 대해 철저히 연구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특히 피트 닥터 감독의 공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가 처음 이 영화를 기획한 데에는 그의 딸의 영향이 컸다. 어릴 때 마냥 밝았던 아이가 11살이 되자 조용하고 내성적으로 변화된 데에 의구심을 갖고 영화를 기획했다(어쩌면 라일리의 실제 모델은 닥터 감독의 딸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3년간 감정과 기억의 구조를 설계하는 데 몰두했고, 2년의 시간을 더 들여 5년 만에 영화를 내놓았다. 그래서 영화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소소한 감정들이 핵심기억을 만들고 그 기억들이 인격을 형성한다는 발상이 인상적이다.

 

‘기쁨’과 ‘슬픔’이 감정 컨트롤 본부로 돌아가면서 겪는 무용담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서사를 이룬다. ‘꿈 제작소’ ‘상상의 나라’ ‘잠재의식의 세계’ 등에서 ‘기쁨’과 ‘슬픔’의 눈에 비치는 모습은 우리 기억 속의 자화상이다. 라일리가 점점 행복했던 추억들을 잃어가면서 종국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맞이하는 장면은 너무도 애잔했다. 그 애잔함은 아마도 내게도 어느 틈엔가 잃어버린 추억들이 있어서일 것이다.

 

들러리 같았던 ‘소심’과 ‘까칠’

 

영화는 디테일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소녀 라일리의 감정을 주도적으로 조종하는 이는 단연 ‘기쁨’이다. 주로 감정 컨트롤 본부의 가운데 자리에 위치해 있다. 반면 아버지의 감정을 조종하는 중심에는 ‘버럭’이 있고, 어머니의 감정은 ‘슬픔’이 주도한다는 설정이 기발했다. 특히 화를 잘 참지 못하는 아버지와 차분하면서도 예민하게 아이의 상태를 살피는 어머니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는 장면이 유쾌하게 그려졌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있다(사실 내가 굳이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영화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소심’과 ‘까칠’은 영화 초반과 중반, 종반에 걸쳐 두루두루 등장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재미 요소를 담당한다. 물론 그들의 감초 역할은 중요하다. 영화 전반의 분위기를 지나치게 무겁지 않게끔 완화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쉬운 건 그들의 역할이 아닌 그들의 출현이다.

 

소심함과 까칠함이 드러나는 장면은 영화 초반에나 조금 등장한다. 이후에는 대체로 ‘기쁨’과 ‘슬픔’이 사라진 상황에서 ‘소심’ ‘까칠’ ‘버럭’이 그들의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기쁨’과 ‘슬픔’의 대체 용도로 활용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대체 역할이  사춘기 소녀의 성격 변화를 드러내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기쁨’과 ‘슬픔’이 양가적이듯, ‘소심’과 ‘까칠’도 어떤 케미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는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라일리가 방황하는 일련의 과정은 라일리의 감정(기쁨과 슬픔)이 길을 잃고 헤매는 여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사람은 기쁨만을 추구한다고 행복해질 수는 없다. 슬플 때 눈물을 억지로 참아내기보다는 실컷 쏟아내야 비로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기분이 울적할 때는 오히려 슬픈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이 더 나은 것처럼 말이다. <인사이드 아웃>은 카타르시스의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낸 영화 같았다.

 

돌이켜보면 다섯 살의 기쁨만이 전부였다면 나는 여전히 철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을 것 같다. 울어야 할 때 울고 화를 내야할 때 화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사춘기를 온전히 버텨낼 수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내 안의 다섯 감정은 끊임없이 마찰하며 기억을 만들어낸다. 우리 안의 억압된 감정들, 그리고 잊고 지냈던 기억들을 마주하고 싶다면 <인사이드 아웃>을 챙겨보길 권한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