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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정치

유승민의 자진사퇴가 답일까?

단단히 뿔이 난 듯하다. 메르스 때문에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야당이 내놓은 국회법 개정안을 들어준 여당 원내대표가 마음에 들 리 없다. 아무리 그래도 배신이란 말까지 써가며 과도한 위압감을 줄 필요까지 있었나 싶다. 박 대통령의 발언 이후 주말 일부 종편 채널에는 자칭 애국보수주의자라는 이들이 나와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이 정도면 대통령의 발언은 효과 만점이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유 원내대표는 몸을 낮췄다. 공개적으로 사과했고, 앞으로 당청관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솔직히 그가 왜 사과를 했는지 진정으로 사과할 마음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사과에어떤 확실한 잘못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대통령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것? 야당과 각을 세우지 않고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것? 그게 잘못이라면 여당 원내대표는 있으나 마나한 자리임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청와대 입장에서야 유 원내대표가 사과를 했더라도 물러나는 걸 바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친박계가 아닌 것도 그렇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기존 친박계 의원들의 영향력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거리낌이 있다. 그래서 유 원내대표의 사과에도 청와대와 친박계가 기존 입장을 철회하지 않는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당내 비박계의 영향력에 제동을 걸기 위한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 정도 남은 상태에서 이대로 친박계의 연성화를 내버려둘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의 입장은 무엇인가? 흔히들 정당의 목적은 정권 창출에 있다. 결국 다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최선의 전략을 짜는 것이 정당의 인사 시스템이(여야 한)다. 따라서 유승민을 버리고 박 대통령을 선택하고 따르는 것이 차기 선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된다면 그들은 과감히 그 선택을 할 것이다. 반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합리적으로 다음 선거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선택하는 것이 정당의 생존 법칙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나 당직자들이 이 같이 기본적인 정치 매커니즘을 모를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답은 간단하게 나온다. 지금 대통령의 지지율을 보면 30%에서 오락가락거리고 있다.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반면 유승민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에 비해 소통과 혁신 이미지가 강하다. 의원총회에서 재신임을 받을 정도로 동료 의원들의 지지도 미미하지 않다. 그런데 그분의 뜻과 맞지 않다고 내친다면 그것이야말로 새누리당의 오판 아닐까.

 

새누리당의 지지자가 아닌 사람이기에 나는 이런 글을 쓰는 데 거리낄 게 없다(마치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에 작가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과 같다). 여당의 오판은 곧 야당의 기회다. 그러나 그동안 너무 많은 기회들을 놓쳤던 새정치연합이기 때문에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쓴 데에는 답답함이 컸다. 뜻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격하는 정치, 그것을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을까?

 

*사진 출처: 연합뉴스,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