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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지극히 주관적인

지극히 주관적인 6월 개봉 기대작 세 편

갑갑한 유월이 찾아왔다. 머지않은 기말고사가 끝나면 방학이다. 방학인데 왜 갑갑하냐고? 지금까진 나한테도 방학은 단꿈이었다. 짧지 않은 꿈은 늘 짧았다. 벌게진 팔뚝과 그 위에 말라붙은 침만이 내가 헤매이지 못한 꿈 밖 시간들을 보증하듯, 방학 이후 남는 거라곤 삭제된 알람 어플과 새까맣게 탄 팔둑, 혹은 두둑하니 불어난 살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방학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맞다. 막 학기가 끝나간다. 이제 대학교를 떠나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시기가 왔다. 어쩐지 마지막 방학까지 남은 시간이 금방 갈지도 모르겠다. 단꿈처럼. 어쩌면 지금껏 시험공부를 유예하고 있는 것도 다 얼마나 길지 모를 방학을 맞이하기 두려워서가 아닐까. (물론 팔 할은 변명이지만.)

 

갑갑한 유월에도 단꿈처럼 여러 영화들이 개봉한다. 변하는 시간이 무색하게, 늘 그 자리를 지키는 존재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안인가. 언젠가 당신 넘어지고 쓰러져 발 디딜 곳 하나 없을 때에도 그네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테니까. 변하는 건 일부다. 당신이 바로 당신이기까지 언제나 함께 해온 것들은 결코 시간이나 나이, 학교, 방학, 그런 것들이 아니다. 그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자, 나이를 함께 먹어가는 부모님이며, 잘 지워지지 않는 생채기다. 그리고 바라건대, 영화도 늘 그 자리에 있어줄 것이다. 

 

 

<쥬라기 월드> (6월 11일 개봉)

 

‘쥬라기’라는 말만 들어도 설레던 때가 있었다. <쥬라기 공원>을 본 뒤, 밤마다 불 꺼진 거실 너머 화장실을 가지 못해 전전긍긍했던 게 자그마치 초등학생 때였다. 그건 큼지막한 티라노사우르스가 간이 화장실에서 볼일 보던 인간에게 낭패를 보게 한 씬이었다. 어릴 적 동경했던 수많은 공룡들을 거대한 스크린에서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심지어 누구보다 ‘쎌’것만 같았던 공룡이 ‘공원’에 갇혀있다니! 영화 속 사람들은 공룡에 비해 외견상 한없이 초라했지만, 정신력과 용맹함은 공룡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후 겁 많던 초등학생에게 동경의 대상은 ‘인디아나 존스’로 바뀌었다나 뭐라나.

 

2001년 3탄 이후 14년만에 ‘쥬라기 공원’ 시리즈가 돌아왔다. 그뿐만 아니다. 유치했을지언정 더할 나위 없이 솔직했던 나의 옛 감정도 오랜만에 예열되고 있다. 아마 <쥬라기 월드>가 개장하는 날에는 빛바래고 이제는 낯설어진 기억이 천연색 스크린과 맞물려 화려한 불꽃을 수놓으리라.
  
지극히 주관적인 관람포인트)

 

1. 끝내주는 CG를 선사할 수 있을까?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강점은 아무래도 마치 실재하는 것 마냥 공룡을 구현해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때 나는 어렸으니까. 눈앞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이고 진실이라고 굳게 믿던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시기는 오래 전에 지났다. 심지어 이제 나는 모든 메시지가 미디어를 통하는 순간(즉 모든 것들은) 불가피하게 왜곡된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CG 기술도 그 사이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듭해왔다. 비록 예전처럼 내가 스크린 속 공룡들에 기겁하고 현실과 혼동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도, 당시의 감정을 어렴풋하게나마 다시 느끼고 싶다.

 

2. 상상을 어떻게 재현해낼 것인가?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또 다른 성취는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던 상황, 이미지들을 재현해냈다는 데 있다. 위에서 말한 간이 화장실 씬도 그렇지만 애초에 그림책에서 보거나 꿈속에서나 보았을 법한 공룡들이 마치 진짜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되고 움직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물론, 그동안 수없이 많은 영화에서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변신로봇, 외계인, 히어로 등. 그렇다고 <쥬라기 월드>에서 현실화할 상상이 고갈됐을 리 없다. 이번 편에선 어떤 상상력을 스크린 위에 수놓을지 기대해보자. 

 

 

 

<엘리펀트 송> (6월 11일 개봉)

 

정신과 의사가 돌연 사라졌다. 그를 최후로 목격한 환자와 동료의 흔적을 좇는 또 다른 정신과 의사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들. 이렇게 기본적인 상황 설정만으로도 <엘리펀트 송>은 충분히 매력을 내뿜는 영화다. ‘진실’을 좇는 자와 ‘진실’을 아는 환자. 영화는 짐작건대 진실과 거짓 사이의 대립, 허언과 그 속에 가려진 진실 사이의 어긋남을 전면화할 것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람포인트)

 

1. 미묘한 감정선을 어떻게 표현해낼 것인가?

 

예고편만으로 영화를 짐작하는 건 마치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겠으나, 지금으로선 단서가 그것뿐이다. 추측건대, 영화는 대부분 정신과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어질 것 같다. 예고편만으로도 둘의 미묘한 갈등과 긴장관계가 충분히 드러난다. 차분한 이미지의 브루스 그린우드와 발랄하고 광기어린 이미지의 자비에 돌란의 대조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둘을 중심으로 영화가 전개된다면, 당연히 두 연기자의 감정선이 중요하리라. 더구나 영화에서 제시된 상황상 서사가 흥미롭고 복잡 미묘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결국, 두 배우가 미묘하게 전개될 감정선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영화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 자비에 돌란!

 

감독이자 배우 자비에 돌란이 오랜만에 배우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사실 아직까지 나는 그의 연기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올해 들어 개봉했던 그의 연출작 <마미>를 본 게 전부다. 비록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영화는 음악이나, 화면의 변화, 분위기, 설정 등 여기저기서 감독 자비에 돌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번 영화에서 비록 그의 몸짓과 표정, 억양 등을 처음 볼 테지만, 그렇게 낯설 것같지는 않다. 만약 예상대로 그의 연기가 익숙하다면, 나는 자비에 돌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는 곧 영화로서 존재하고, 영화에서야 그는 비로소 존재하는 셈이니까. 거기다 정신병자 역할이라니! 탁월한 연기를 기대해본다. 

 

 

 

<미스 줄리> (6월 18일 개봉)

 

금지된 사랑은 불멸의 소재다. 흔히 금기는 욕망보다 늦되다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상 둘의 인과관계는 모호하다. 욕망은 금기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왜, 쉽게 말해, ‘하지 말라’고 하면 평소에 별 관심 없던 것인데도 괜히 하고 싶어질 때가 있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금기란 곧 욕망이고, 불가능한 사랑은 그 자체로 욕정이다.

 

백작의 딸과 하인이 불가능한 사랑에 빠진다. 심지어 하인은 약혼자가 있는 몸이다. 영화의 갈등은 전적으로 저 ‘금기’ 때문에 발생한다. 금지된 사랑이란 안주가 아니라 불안이며, 정적이지 못해 끊임없이 흔들린다. 거기다 금기는 너무나 압도적이라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사랑은 금기 앞에서 비에 젖은 새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을 따름이다. 금지된 사랑은 블랙홀과 같이 불가피한 욕정이지만, 동시에 사랑 그 자체는 오롯하지 못하여 쉽게 부정된다. 하룻밤을 보낸 뒤 미스 줄 리가 존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 시작하는 건 이 때문이리라.  

 

지극히 주관적인 관람포인트)

 

욕정과 제시카 차스테인

 

<엘리펀트 송>과 마찬가지로 <미스 줄리>도 두 인물의 관계가 영화를 이끌어나간다면 무엇보다 둘의 감정선, 즉 욕정을 얼마나 섬세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해내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대화나 표정은 물론이고 카메라 앵글, 음악, 미장셴 등에서 어떻게 터질 듯한 욕망이 묻어나오는지 확인할 수 있으리라. 예고편에서는 내내 미스 줄리와 하인 존 사이의 애끓는 감정이 여러 장치들을 통해 정적으로 배어나왔다. 기대가 한층 더 높아졌다.

 

거기다 개인적으로 캐스팅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초적이면서 어딘가 의뭉스러운 이미지의 콜린 파렐도 그렇지만, 특히 제시카 차스테인의 섹슈얼한 이미지는 미스 줄리 역에 딱 알맞지 싶다. 얼마 전 봤던 <모스트 바이어런트>에서 그녀는 갱단 보스의 딸 역을 뛰어나게 소화해냈다. 강인함과 가녀림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녀는 팜므파탈이었다. <미스 줄리>에서는 더욱 ‘섹시’한 그녀를 볼 수 있길.

 

 

*사진출처: 다음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