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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미디어

광기어린 폭력은 명백한 테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안타까운 일이다. 대사는 한 나라를 대표해서 파견되는 그 나라의 얼굴이다. 그 얼굴에 깊은 생채기가 낫다. 자상을 입고 긴급히 몸을 피신하는 리퍼트 대사의 모습에 우리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그의 의연한 대처 역시 놀라웠다).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 최근 들어 눈에 띈다. 끔찍한 장면을 연출한 이는 김기종 씨다. 연일 언론에서는 그의 행적을 쫓았고 그 결과 그는 과거에도 몇 차례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 그는 주한 일본 대사에게 콘크리트 조각을 던졌고, 청와대 앞에서 분신자살 소동을 벌였으며, 박원순 서울시장 앞에서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이런 전력을 무시한 채 그를 단순히 문제적 개인으로만 바라보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가 진보단체로 분류되는 우리마당 대표로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김씨는 한 단체의 대표 자격으로 행사에 참여했고, (사전에 과도를 소지해 들어갔다는 점과 범행 전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점에서) 계획적인 폭력을 행했다. 그는 이후 조사과정에서 10일 전부터 범행을 준비했고, 미국 대사를 혼내주려 했다고 밝혔다. 한미연합훈련에 반대한다는 동기가 있었다. 요약하자면 그의 공격은 계획적이었으며 정치적 메시지(한미훈련 반대)를 전달하기 위한 명백한 의도가 있었다. 따라서 김씨가 벌인 범행은 충분히 테러로 규정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오늘(3월 6일) 한겨레는 <김기종의 행동은 ‘테러’일까요 ‘습격’일까요?>라는 제하의 기사를 내면서 김씨의 행동을 테러라는 개념으로 규정하기엔 부족함이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그 근거로 한겨레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내세웠다. 그에 따르면 테러의 뜻은 다음과 같다.

 

테러(terror) 「명사」
1. 폭력을 써서 적이나 상대편을 위협하거나 공포에 빠뜨리게 하는 행위. ‘폭력’, ‘폭행’으로 순화.
2. 『정치』=테러리즘.

 

테러리즘(terrorism)「명사」
정치적인 목적을 위하여 조직적·집단적으로 행하는 폭력 행위. 또는 그것을 이용하여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려는 사상이나 주의.

 

한겨레는 2번의 뜻으로 ‘테러’를 해석했다. 즉, 김씨의 행동은 조직적·집단적이지 않기 때문에 테러로 보기에는 그 요건이 충분치 않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접근법에 2가지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는 국립국어원의 ‘테러’ 규정이 언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테러’가 의미하는 바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느냐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테러는 심리학·군사학·경찰학 등에서 조금씩 미묘하게 규정된다. 예컨대 경찰학사전(법문사)에서는 폭력수단을 사용하여 적이나 상대방을 위협하는 행위로 정의된다. 또 군사용어사전(일월서각)에서는 특정목적을 가진 개인 또는 단체가 살인, 납치, 유괴, 저격, 약탈 등 다양한 방법의 폭력을 행사하여 사회적 공포상태를 일으키는 행위 등 테러의 유형으로는 사상적, 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한 테러와 뚜렷한 목적 없이 불특정 다수와 무고한 시민까지 공격하는 맹목적인 테러로 구분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둘의 공통점은 주체가 개인이든 단체든 관계없이 폭력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한겨레의 기사가 아쉽다. 테러라는 단어가 적합한지 제대로 검토하려 했다면 적어도 다른 정치학, 사회학, 신문방송학 등에서 어떻게 테러를 정의하는지 밝혔어야 한다. 필자가 대학(신문방송학과)에서 배운 테러의 개념은 다음과 같았다.

 

테러리즘은 어떤 목적을 위해 흔히 민간을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하여 충격을 유발하는 의도적 행위다. 폭력 행위 가운데 ⓵ 충격을 주기 위해 의도되고, ⓶ 종교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목표를 위해 감행되고, 그리고 ⓷ 고의로 비전투요원 즉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거나 그 안전을 무시하는 경우에 테러리즘으로 지칭된다(이효성, <통하니까 인간이다>).

 

리퍼트가 주한 미국 대사라는 점에서 민간인으로 분류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그는 비전투요원이다. 따라서 김씨의 범행은 ⓵, ⓶, ⓷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역시 테러를 규정하는 다양한 시각 중의 하나일 뿐이지만 표준국어대사전 하나로 김씨의 범행이 테러인지, 피습인지 가리는 것은 너무 단순한 분류법이 아닌가 우려된다.

어쨌든, 한겨레는 김씨의 테러를 ‘피습’으로 바라봤다. 그들의 시각이 그러하다면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일관성이다. 김씨의 테러가 ‘피습’이라면 그와 유사한 사건들도 ‘테러’가 아닌 ‘피습’으로 규정돼야 마땅할 것이다. 그래서 최근 일어났던 사건들을 기억해냈다. 그 중 가장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건 ‘신은미 테러 사건’이었다. 그래서 검색해봤다.

 

한국 사회의 저급함 보여준 ‘토크콘서트’ 테러

 

지난해 12월 11일 한겨레에 실린 사설 제목이다. 내가 알기론 당시 범행은 집단이 아닌 개인이 일으켰다. 한겨레의 오늘 주장대로라면 이 제목도 수정되어야 하지 않은가. 이 두 기사를 보며 나는 씁쓸했다. 토크콘서트에서 사제폭탄을 던진 이나, 미 대사를 향해 흉기를 휘두른 이나 무모한 폭력을 자행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한 치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해당 사설에서 한겨레는 볼테르를 인용하며 ‘일부 극단세력과 다른 견해를 밝혔다는 이유로 공격의 대상이 된다면 이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짓’이라며 토크콘서트 테러를 우려했다. 나는 이 시각에 깊이 동의한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테러를 일으킨 이번 사건 역시 똑같이 우려된다.

 

물론 한겨레의 기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보수언론과 정치권, 검찰의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경계심일지도 모른다. 이번 테러로 말미암아 또 다른 종북몰이가 일어날 조짐이 보인다면 그 경계 역시 충분히 의미 있을 것이다. 그러나 테러를 국어사전으로만 정의하고, 또 스스로 규정한 단어를 사안에 따라 다르게 적용시키는 것 역시 한겨레 스스로 경계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참된 언론일수록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야 하지만, 자체적으로 규정한 단어 쓰임새를 사안에 따라 다르게 사용할 경우 독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테러는 테러일 뿐이다. 과거 일제강점기와 달리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충분히 의견을 나누고, 자신의 사상을 (일부 제한적인 경우가 있지만) 표현할 자유를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테러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개인이든, 어느 집단에 소속되어 있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동기와 행동이다. 그런 점에서 김기종의 범행은 명백한 테러다.

 이번 사건으로 우리나라는 수도 한복판에서 외국 대사가 테러를 당한 위험국가라는 이미지를 떠안게 됐다. 한미관계 악화 가능성은 물론 테러로부터의 안전도 심히 우려된다. 테러는 일어나지 않아야 마땅하지만 테러가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응하고 대처하는가에 대한 대비도 심히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마크 리퍼트 대사 개인으로서는 이 사건은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의 빠른 쾌유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