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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뜨는 먹방&쿡방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 세 가지 매력

10시 프라임 시간대는 본래 드라마들의 주 무대다. 시청자들은 이 시간만 되면 TV 앞에 앉아 찐한 로맨스에 웃고, 잘생긴 혹은 예쁜 배우들의 클로즈업에 숨이 막혔고, 가슴 찢어지는 이별에 눈시울을 붉혔다. 평일 밤 10시, 드라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막강 콘텐츠다.

그런데, 월요일에는 조짐이 심상치 않다. 드라마 세상의 작은 균열을 내는 놈이 등장했다. 바로 JTBC의 갓 3개월쯤 된 먹방&쿡방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다. 지상파 드라마들 틈바구니 속에서 시청자들을 조금씩 조금씩 빨아들이고 있다. JTBC의 전략적 편성은 적중했고, 급기야 냉장고를 부탁해는 JTBC의 효도 예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신(新) 먹방&쿡방 예능이다. 그런데 널리고 널린 먹방, 쿡방들과는 이 프로그램은 조금 다르다. 단순히 멋들어지게 요리하거나, 맛있게 먹는 장면들만 담아냈다면 시청자들은 박수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먹방&쿡방 예능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선하다는 평이 자자하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먹방&쿡방 이상의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항상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냉장고를 부탁해의 매력은 무엇일까?

 

셰프들의 캐릭터 발견

 

본디 셰프들의 이미지는 시청자들에게 굳어져 있었다. 묵묵히 주방에서 혼자 씨름하며 접시에 혼을 담는 사람? 드라마 파스타를 봤다면 주방에서 늘 예민해 있어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잘 내는 사람? 요리 프로그램을 즐겨 봤다면 이름표를 뜯으며 으름장을 내놓는 아주 근엄한 사람?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냉장고를 부탁해의 등장하는 셰프들은 지금까지 시청자들이 품고 있던 셰프들에 대한 편견들을 보기 좋게 깨부수고 있다. 그들은 근엄하지도 않고, 다가가기 힘든 존재들도 아니다. 오히려 동네 이웃집 아저씨들처럼 참 편안하고 인간미 넘친다. 셰프라는 직업에 담긴 무게감을 쏙 빼니 8명의 이름이 보였고, 각자의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허쉐프’ 최현석과 웹툰 작가 김풍은 셰프 캐릭터의 개척자라고 해도 될 만큼 충분해 보인다. 최현석 셰프는 셰프들의 근엄한 모습을 비웃는 양, 과도한 요리 동작을 선보이거나 허세성 멘트를 일삼는다. 업계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그지만, 최고와는 걸맞지 않는 그의 돌발적 행동이 어쩐지 재밌다. 그리고 김풍은 셰프라는 직함을 달았지만, 요리를 대충 대충한다. 대충의 미학이라고 했던가? 주방에서 허둥대며 설렁 설렁 요리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면 즐겁고, 또 별 기대 안 했던 그의 요리에 게스트들이 칭찬을 연발할 때면 반전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냉장고는 사연을 싣고

 

스타들의 집에서 냉장고를 직접 스튜디오로 공수해 온다. 트럭에 실려 온 냉장고는 셰프들의 날카로운 눈을 피하지 못하고 낱낱이 까발려진다. MC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냉장고를 캐내고 그 와중에 유통기한이 지난 야채, 정체 모를 소스, 먹다 남은 야식 등이 등장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냉장고를 들출수록 이야기는 풍성해진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냉장고는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준다. 어제 방송(2월 10일)에서는 허경환의 냉장고가 공개되었는데, 오랜 자취 생활의 흔적들이 냉장고 속에 담겨 있었다. 혼자 사는 남자이기에 요리를 잘 해 먹지 못하고 주로 나가서 먹는 터라 허경환의 냉장고에는 쓰지 않은 식재료들이 뭉텅이로 쌓여 있었다. 그리고 헤어진 여자친구의 흔적들이 냉장고 곳곳에 숨어 있어 슬픈 사연들도 튀어 나오곤 했다.

 

근래 보기 드문 따뜻한 요리 대결

 

승리를 하면 가슴에 별을 다는 원칙이 있기는 하나 사실 무늬만 대결일 뿐 그들의 대결은 결코 잔인하지 않다. 진다고 해서 다음 번 참가할 기회가 박탈당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의 요리를 존중하는 가운데 대결이 이뤄지고, 요리를 평가하는 사람이 전문가가 아니라 그냥 냉장고의 주인이기 때문에 대결에 그렇게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그리고 대결 상황에서 조금 헤매다 싶으면 다른 셰프가 도움을 건네는 등, 협력하는 유니셰프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즉,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차용한 대결 방식은 그들의 캐릭터의 각을 잡아주는 요소일 뿐이지 날카로운 대립각을 조장하진 않는다. 사람이 먼저인 대결은 어느 누구도 해치지 않고 따뜻하기만 하다.

 

냉장고를 부탁해의 세 가지 매력을 살펴봤다. 매력을 뜯어보니 결과적으로 냉장고를 부탁해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셰프라는 직함을 가진 8명의 사람들을 헤아려보고, 냉장고를 열어 보며 그 사람에 대해 보다 알게 되고, 결코 잔인하지 않은 요리 대결에서 따뜻한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냉장고를 부탁해가 월요일 드라마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법은 쿡방&먹방 위에 사람을 얹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진출처 : JTBC